[문화뉴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더욱 많은 이들이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지정한 '문화가 있는 날'이다. 27일 문화가 있는 날을 맞이해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상암동에서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찾을 수 있는 공간기획 강연이 열렸다.

'공간 닥터스'는 공간기획 중에서도 버려진 공간에 주목하는 기획자들, 일명 '공간 회춘 전문가들'의 강연이다. 문화창조융합센터 'O Creative Lecture'의 일환인 프로그램으로, 오후 12시 상암동 CJ E&M 센터 1층에서 열렸다. 연사로는 '문화역 서울 284' 예술감독 신수진, '행화탕 프로젝트' 기획자 서상혁, 이원형, '빠빠빠 탐구소' 대표 빠키가 참석했다. 여기에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모더레이터로 함께했다.

 

   
 

연사 네 명은 모두 오래된 공간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끈 공간 기획자다. '문화역 서울 284'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주요한 장소였던 옛 서울역을 복원하여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시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해 많은 관람객의 주목을 끌었다. '행화탕 프로젝트'는 아현동의 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목욕탕 '행화탕'에 10명의 기획자가 '기획단 61311'로 모여, 지역 커뮤니티, 예술 프로그램 등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빠키는 '서울 어반 프로젝트'를 통해 이태원 도깨비 시장, 당고개, 을지로 등의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넣는 기획자다.

 

   
 

각자 다른 색깔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방식도 서로 달랐다. 먼저, 신수진은 '창의성'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익숙하거나 평범한 것들의 '색다른 조합'이며, '서울역 284'라는 공간과 다양한 융복합 예술 프로젝트의 만남도 이러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색다른 조합에 이끌려, 관객들은 단순히 작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진 특유의 분위기를 함께 즐기러 온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사람들을 공간으로 이끄는 주요 요소"라며, 미술관 등에 널리 퍼진 '셀카인증 문화'에 대한 통찰을 덧붙였다.

'문화역 서울 284'는 사적 제 284호로 등록돼, 국가에서 관리하는 장소다. 이에 대해, 신수진은 공간의 공공성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인 만큼 관람객 중심의 시각으로 프로그램을 구상해야 하며,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공간의 결에 맞는 대관 프로그램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는 단순한 기획자가 아닌 공공 기관의 운영자로서의 고충이 느껴졌다.

 

   
 

'행화탕 프로젝트'의 두 기획자에게 공간은 '알몸의 사람'이다. 언뜻 보기엔 특이점이 없는 알몸의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만의 표정, 몸짓, 흉터를 확인하는 일, 그에게 말을 걸어 성격, 말투 등을 알아가는 일, 더 나아가 친구, 가족, 생활 등 그를 둘러싼 환경, 맥락을 파악하는 일.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누군가를 알아가고 한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 그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는 것이 공간기획이라는 것이다.

건물은 사유재산이긴 하지만, '행화탕'은 수많은 이들이 드나들면서 그들의 세월이 묻어있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기획단 61311'은 아현동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랑받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로 '협업'을 얘기하는 것도 사람과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이들의 기획 철학에서 비롯된 부분일 것이다.

 

   
 

빠키는 서울어반프로젝트의 사례를 통해, 지역주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이태원 도깨비시장 같은 경우 시장에 있는 할머니들은 벽화를 그리거나 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천막을 설치해주고, 악취 나는 거리를 청소해주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빠키는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되는 관 주도형의 도시재생 사업을 비판한다. 특히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주로 진행되는 벽화사업은 "사람의 피부톤, 이목구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두꺼운 화장을 하는 것"과 같다며 비판했다.

대신 그의 공간기획은 무너져가는 지역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리고 그 공간에서 자신이 느낀 점을 고유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으로 표현해낸다. 공간기획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며,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비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점심식사를 포함해서 1시간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비해, 각자의 기획 철학이나 현재 기획의 트렌드
등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모더레이터 차진엽은 공간기획자가 아닌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 강연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다. 단순히 사례만 소개하는 보여주기 식 강연과 차별화되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좋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사진] 마이크임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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