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어른이 더 좋아할 만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다시 보며 설 연휴 보내자!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위의 포뇨' 포스터

[문화뉴스 MHN 문수영 기자] 기나긴 설 연휴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지만, TV에서는 함께 보기에 부적절한 영화가 방송되기도 하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 제대로 시청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애니메이션 중에 잔잔하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3개를 소개한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현재 2030세대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치히로의 부모님을 구하는 모험기를 담은 이야기다.

치히로가 새로 이사한 집으로 가던 어느날, 치히로의 부모님은 낯선 마을을 발견한다. 그 곳에서 펼쳐져 있는 음식을 먹는 엄마와 아빠, 치히로는 그런 엄마와 아빠가 불안하기만 하다. 이 낯선 마을을 둘러보던 치히로는 부모님을 찾아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부모님을 찾으려 해도 부모님은 보이지 않는다.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 밤이 되자 귀신들이 나타나고 치히로는 그들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친다. 믿기 힘든 현실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녀 앞에 등장한 하쿠. 그는 이 마을에서 온천을 관리하는 유바바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도움으로 엄마와 아빠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왜 치히로는 센이 된 것일까. 과연 치히로는 무사히 엄마와 아빠를 구해 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을 만큼 단조롭고 쉽게 풀리는 영화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성매매에 관한 이야기임을 생각하고 보면 어른들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영화이다. 성매매 업소라고 해석되는 온천 성과 그 곳에서 일하는 모두가 가명을 쓴다는 점 등 다양한 포인트들이 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설 연휴를 맞아 아이와 함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진짜 메세지를 느끼는 것은 어떨까.

ⓒ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하울의 움직이는 성

얼마 전 색감과 사운드를 보충해 재개봉한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역시 2030세대가 많이 본 영화이다. 이 영화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늦게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노래들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사랑을 받기도 했다.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소피와 하울이 진정한 자유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소피는 집안 대대로 해오던 모자가게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동생은 본인의 자유를 찾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동생이 부럽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한 소피는 군인들에게 봉변을 당하려던 순간 하울을 만나게 된다. 하울과 함께 마법같은 시간을 함께 한 소피는 하울이 계속 생각나고, 모자가게에 들어선 소피는 영문도 모른 채 마녀에게 저주를 받아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한 순간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피는 절망의 시간을 보내다 마법의 성을 마주한다. 그 곳은 하울의 집. 악마 캘시퍼의 제안을 받고 소피는 그 곳에서 지내게 되는데, 소피가 저주를 풀고 하울과 함께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영화 역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정체성을 가졌을 때에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 없이 주어진 삶을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가기만 하는 소피는 할머니로 변해버리지만 그녀가 정체성을 찾고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자신의 주장을 할 때에 점점 젊어지게 된다. 이런 변화는 소피뿐 아니라 하울에게도 나타나는데, 촉망받던 마법사인 어린 하울은 악마인 캘시퍼에게 본인의 심장을 주며 자유를 얻었으나 깃털이 덮인 괴물이 된다. 즉, 하울은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런 하울도 소피로 인해 점점 변화하고 악마와의 계약을 끝낸다. 진정한 본인을 찾아가며 계약 없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다시 한번 정체성을 다져보는 의미로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추천한다.

ⓒ '벼랑위의 포뇨' 스틸컷

벼랑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중에서는 최신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영화 '벼랑위의 포뇨'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으로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상미와 색감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팬들이 '벼랑위의 포뇨'를 사랑하기에 충분하다. 영화 '벼랑위의 포뇨'는 호기심 많은 물고기 소녀 포뇨의 여행기를 담았다.

물고기이지만 사람의 얼굴을 가진 인면어인 포뇨는 해파리를 타고 육지로 올라오지만 그물에 휩쓸려 유리병 속에 갇히는 위기에 닥친다. 그런 포뇨를 구해준 것은 바로 소스케. 소스케는 포뇨와 한동안 생활한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엄마를 따라 소스케는 포뇨와 함께 요양원에 놀러가는데,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들은 포뇨의 존재를 보고 큰 재앙이 닥칠것이라 한다.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얼마 뒤 소스케 마을에는 쓰나미가 덮친다. 그 해일은 도망간 포뇨를 잡기 위한 포뇨의 아빠가 일으킨 것이다. 과연 소스케는 포뇨와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위험천만한 포뇨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벼랑위의 포뇨'는 삶과 죽음에 대하는 메세지를 전한다.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포뇨의 등장 전후로, 더 자세하게 말하면 쓰나미가 일어나기 전후로 달라진다.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기 전에는 휠체어에 앉아 몸을 의존하던 할머니들이었지만, 쓰나미가 마을을 덮친 이후 할머니들은 자유롭게 몸을 움직인다. 즉, 할머니들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 외에도 소스케와 소스케의 엄마가, 그리고 쓰나미의 등장으로 대피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인지하는 것 등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야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말하는 것도 달라진다.

앞선 영화들과는 달리 영화 ‘벼랑위의 포뇨’는 그 해석이 난해하다. 이번 연휴에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나만의 해석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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