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군가에게 오래된 수첩의 메모처럼 어떤 용기가 되기를, 위안이 되기를, 의지가 되기를...

ⓒ 스위트꿀

 

[문화뉴스 MHN 문수영 기자]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사회에서 소외된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는 신간이 있다. 바로 신인 작가 한정현의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이다.

소설 '줄리아나 도쿄'는 연인으로부터 심각한 데이트폭력을 당하다 한국어를 잊어버린 한주를 주인공으로 한다. 한국 문학을 공부하던 그는 한국에 있을 이유를 더 찾지 못하고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언어인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유키노는 자신을 옥죄는 애인 한수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게이다. 서로가 사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임을 알아본 둘은 돈을 합쳐 안전과 공간을 마련하기로 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서로에게 '김밥 끄트머리'가 되어주고, 서로를 위해 '제자리에 있어'주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어느 날, 유키노는 말없이 한주를 떠난다.

폭행으로 모국어를 잃은 한주, 게이인 유키노 외에 한수의 어머니는 미군의 폭력 때문에 떠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청소부고, 미혼모가 키운 김추는 관심받지 못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자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성 정체성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한주와 유키노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듯, 한일의 역사 또한 분명히 다름에도 겹쳐 보인다. 

미혼모와 성매매 여성들의 삶, 성소수자와 혐오의 양상, 전공투(1960년대말 일본에서 진행된 학생운동)와 클럽을 나란히 놓고 살펴보는 문화연구자의 시선. 이 소설은 1970∼19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과 현재를 사는 그 자식들의 삶을 교차해 보이며 과거와 현재,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그 안 사람들의 삶을 같은 궤적 위에 그려본다.

소설 제목이자 1991∼1994년 사이 일본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끈 클럽 '줄리아나 도쿄'는 등장인물들을 한데 모이게 하는 장치다. 한주, 유키노, 김추는 각각 식당에서 우연히 본 가요 프로그램, 서랍 속 오래된 사진 한 장, 어머니의 회상을 통해 이 클럽과 연결돼 꿈 같던 한 시기를 추적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의미를 발견한다.

고통스러운 삶을 힘겹게 이어가는 소외된 이들을 그려냈지만, 작가의 시선은 늘 따뜻하다. 작가는 마음의 허기를 느껴도 이것이 있다면 늘 든든하게 채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선택한 적은 없으나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되어버리는 상처의 경험은 그 사람을 과거에 묶어두지만, 그런 상태는 허기와도 같아 영원히 굶주릴 수는 없다. 연대의 공복감, 그것이 틀림없이 채워질 수 있다는 작가의 굳은 믿음은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도 온전히 전달된다.

자신의 어머니가 젊은 날 수첩에 적은 '선택, 책임' 등의 단어를 보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 작가는 '작가의 말'에 "나처럼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소설이 그 누군가에게 내가 발견했던 오래된 수첩의 메모처럼 어떤 용기가 되기를, 위안이 되기를, 의지가 되기를 바라본다"고 적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