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 연극 '햄릿'

   
 

[문화뉴스] 온몸으로 박수쳐도 아깝지 않은 연극을 만났다. 무대와 관객, 그리고 배우만으로 꽉 채워진 연극이었다. 원로들의 연극이 연로하지는 않을까 고민했던 지난 우려는 관극의 순간과 이후, 아주 부끄러운 것이 됐다.

故 이해랑 연출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번 연극 '햄릿'은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에 의해 꾸며졌다. 24회 수상자 박명성 프로듀서와 13회 손진책 연출, 16회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를 비롯한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였으며, 배우들은 15회 전무송, 6회 박정자, 7회 손숙, 19회 정동환, 20회 김성녀, 10회 유인촌, 8회 윤석화, 18회 손봉숙, 21회 한민구가 캐스팅됐다.

 

   
 

캐스팅부터 이목을 끌었던 이번 연극 '햄릿'은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기획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의 프로듀서인 신시컴퍼니 대표 박명성은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과 현장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원로 배우들의 연기 경력을 합쳐 보니 대략 400년이더라"고 말하며, 원로배우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기획부터 무대, 조명, 음향까지 제작진의 노련한 연출력과 거장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력이 만나 굉장한 작품으로 탄생됐다. 국내 프로시니엄 극장을 대표하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본래의 대규모 객석을 포기하고 이들이 택한 무대는 '돌출 무대'였다. 해오름극장의 본래 객석을 가리고 무대 위에 간이 객석을 만든 것이다. 무대가 객석을 향해 돌출된 형태의 이 무대 구조는, 고대 그리스 극장에서 유래됐으며, 이후 중세 영국의 엘리자베스 극장을 통해 본격적으로 형식이 자리 잡게 됐다. 관객들의 입체적인 시야와 음향이 확보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음성은 또렷하며 심지어는 웅장하게 들리곤 했다.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공연을 가득 채우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현명하게 발현된 무대구조였다.

 

   
 

배우들의 숙련된 발성은 무대와 객석을 꽉 채우고 있었다. 더구나 9인의 배우가 햄릿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동시에 맡았다는 설정은, 거장 배우들의 젊은 시절 연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극중 호레이쇼(김성녀 扮)가 광대들의 연습을 조율하며 "행동은 대사에, 대사는 행동에 맞게……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라 외치는 부분은 공연을 이끌어나가는 배우들 전반을 묘사할 수 있는 대사이기도 했다. 평균 66세의 노배우들은 고민하는 청년 햄릿,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결정체 오필리어 등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소화해냈고, 남성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박정자, 김성녀, 손봉숙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뒤바뀐 성별에 대한 의식을 잊게 만들었다.

 

   
 

특히나 박정자 배우의 폴로니어스 역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탄탄한 고전을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톡톡히 보여줬다. 간사하고 어리석은 신하 폴로니어스를 특유의 저음 톤과 가벼운 딕션으로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낼 뿐 아니라,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높은 이해, 그리고 이번 공연 특성의 이해를 깊게 이해한 배우 박정자의 힘으로 유쾌하고도 익살스럽게 꾸며냈다. 박정자의 폴로니어스는 거장들의 아우라에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무게감을 균형적으로 맞춰주는 역할이었다. 관객들은 폴로니어스의 한 마디 한 마디부터 그의 죽음, 박정자가 다른 역할로 등장하는 순간까지 유쾌한 웃음을 머금곤 했다. 조연으로서의 정체성과 셰익스피어를 읽어내는 시선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배우였다.

20대의 햄릿을 60대의 유인촌이 맡았으며 장장 4시간이 소요되어야 할 공연이 약 2시간 30분으로 압축됐다는 사실. 과연 원로배우들의 단축된 무대는 고뇌하는 청년 햄릿의 대장정을 살아 숨 쉬는 공연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햄릿의 고뇌는 청년의 고뇌를 넘어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만나야 하는,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끝없는 제의를 치러야 하는 인간 모두의 고뇌였다. 모든 의식을 치루고, 한 편의 연극을 내려 놓으며, 햄릿은 죽어가며 호레이쇼에게 말한다. "이것은 나의 무대, 나의 연극. 배우는 나고, 관객은 자네야."

 

   
 

이렇게 연극 '햄릿'은 끝이 나고 무대의 배경이 됐던 막은 올라갔다. 그 뒤로 펼쳐지는 뜨거운 조명과 드넓은 객석. 9명의 배우들은 관객들이 실존하는 현재의 객석이 아닌, 이제 막 막이 오르고 있는 텅 빈 객석으로 나아간다. 무대를 끝마친 배우들의 뒷모습, 그리고 그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마주한 관객들은 기립을 멈출 수가 없다. 수없이 호명되지만 여전히 잠들어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을 살아있는 연극으로 만들어낸 그들의 뒷모습은 존경스러운 거장 배우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key000@mhns.co.kr
[사진]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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