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밤은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드는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브로콜리 너마저가 노래하는 '밤'은 '가로등 불빛 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야할 정도'로 견딜 수 없는 밤이며, '아침 해가 날아들기를 기다리며' 뒤척이는 혼란스러운 밤이다. 더위가 채 다가오기 전, 저마다의 이유로 잠 못 드는 사람들을 위해서 브로콜리 너마저는 달콤한 꿈처럼 이들의 머리맡에 살며시 찾아온다.

 

   
▲ 브로콜리 너마저 여름 장기공연 '이른 열대야' 포스터.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른 열대야'는 2011년 시작해,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여름 장기공연이다. 2013년부터 휴지기를 가지다가 올해 네 번째로 열렸다. 이번 공연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7일까지 진행됐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5일간 3주에 걸쳐 진행되어, 총 15회의 공연이었다.

 

   
 

'이른 열대야'는 수요일, 목요일, 일요일은 좌석제로, 금요일, 토요일은 스탠딩 공연으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셋 리스트는 물론 공연의 콘셉트도 서로 달랐다. 건반이 인상적인 '손편지'로 시작된 좌석 공연은 '다섯 시 반', '할머니' 등의 잔잔한 곡으로 감성을 촉촉이 적셨다. 반면 스탠딩 공연은 풀 밴드 구성의 '졸업'으로 문을 열어, '이젠 안녕', '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과 같은 록킹한 느낌의 곡들로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물론 '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울지마'와 같이 많은 사랑을 받는 곡들은 모든 회차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약 1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지난 5월 이들의 첫 EP앨범 '앵콜요청금지'가 재발매된 것을 기념하여, 브로콜리 너마저는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앨범의 수록곡들을 연주했다. 이를 위해, 향기는 당시 사용했던 일명 '복숭아' 기타를 가져오기도 했다. '말'의 보컬은 향기가 맡았으며, '앵콜요청금지'는 살랑살랑 꽃 같은 건반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예전부터 이들을 알았던 팬에게는 추억을 곱씹어보게 하고, 그렇지 않은 팬에게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덕원(왼쪽)은 "덕질은 영혼의 풀무질"이라며, 커버곡 '기억해줄래'를 통해 젝스키스 이재진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1/10'과 같이 브로콜리 너마저의 주요 레퍼토리 곡들이 이어지며, 공연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됐다. 연주에 몰입한 멤버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눈을 감으면 균형 잡힌 밴드 사운드가 온몸을 꽉 채우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1/10'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흰색 샤막이 내려오고, '막차'의 시작과 함께 샤막 위에 꽃 고보(조명에 장착해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기구)가 장착된 조명이 연출됐다. 이 위에 덕원과 향기의 실루엣이 더해져, 색다른 분위기의 '막차'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른 열대야의 시작과 함께 발매된 신곡 '천천히' 때는 또 다른 버전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으며,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에서는 지난 이른 열대야의 스케치 영상이 눈앞에 펼쳐져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스크린과 샤막을 사용해 자유자재로 영상을 활용하는 모습에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공연 1주차의 첫번째 앵콜곡인 '류지열차'를 부르고 있는 류지(오른쪽)와 흥을 담당하고 있는 향기(가운데), 건반을 연주하고 있는 잔디(왼쪽).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유행어처럼, 이번 공연은 팬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와 같았다. 원하는 대로 좌석과 스탠딩을 고를 수 있는 것부터,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콘셉트, 매 주 다른 첫 번째 앵콜곡, 매일 진행됐던 사인회까지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준비된 포인트들이 가득했다. 관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고, 자칫 장기공연이 지루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알찬 기획의 공연을 무심하게 건네는 모습에서, 덕원의 말마따나 브로콜리 너마저가 팬들과의 '밀당'에 탁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중 가장 신나는 곡 '청춘열차' 때는 미러볼을 사용한 덕분에, 관객들의 흥이 최고조에 달했다.

공연은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유기체다. 각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각각의 공연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일반적인 공연은 한번 지나가면 끝이지만, 장기공연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연이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좌석 공연에서 첫 주에는 앉아서 노래하던 덕원이 2주차부터는 평소처럼 선 채로 공연했으며, 새로운 수건 MD '잔인한 타월'을 홍보하는 잔디의 멘트는 시간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첫 공연은 처음이라 어설픈 대로, 마지막 공연은 마지막이라 아쉬운 대로 좋은 것이 장기공연의 매력이다. 가령, 잔디의 '잔인한 타월' 홍보가 두 번째 공연 때 덕원이 어쿠스틱 기타를 튜닝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시작됐다는 것은 그 공연에 오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이처럼 각 공연의 에피소드와 서로 다른 분위기에 매력을 느끼는 관객들은 15번의 공연 중 여러 차례 함께했을 것이며, 이것이 향기가 마지막 공연 때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를 부르기 위해 객석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왈칵 눈물을 흘린 이유일 것이다.

 

   
▲ 브로콜리 너마저 멤버들이 포토타임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올해의 '이른 열대야'는 그동안의 브로콜리 너마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서툴렀지만 오직 그때만 가능했던 감성이 담긴 '앵콜요청금지' 앨범부터 당시엔 큰 도전이었던 2011년의 '이른 열대야', 잔잔하지만 뜨거운 열기가 넘쳤던 2012년의 '이른 열대야', 뜻하지 않게 긴 작별인사가 되었던 2013년의 '이른 열대야'까지. 이 모든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브로콜리 너마저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번 공연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컴백한 지 1년 차,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주고 있는 브로콜리 너마저가 앞으로도 팬들과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는', 긴 춤을 춰나가길 바라본다.

 

[글]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사진] 스튜디오 브로콜리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