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을 닮은 'TV 로봇'들이 '백남준 쇼'에 전시 중이다.

[문화뉴스] 


"백 선생님은 예술을 왜 하십니까?"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백남준 작가가 한국 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단순히 미술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충격과 자극을 줬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한 위성을 사용한 작업 등 '우주 오페라'라 불린 작품들은 청년작가들에게 테크놀러지 아트에 관심을 이끌게 했다. 그는 한국 미술계에 포스트모던 아트를 간직한 주역으로 아직도 우리 곁에 가까이 남아 있다.
 
올해는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의 서거 10주기가 되는 해며, 7월 20일은 그의 생일이다. 백남준의 생일에 맞춰 다양한 행사들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그 현장으로 따라가 봤다. 먼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 특별전 '백남준 쇼'를 살펴봤다. '백남준 쇼'는 기존의 직선적인 구조 전시장과 달리 우주선을 연상케 한 DDP에서 열렸다.
 
   
▲ '인피니티' 방에 전시된 'M200'.
 
그 이유에 대해 전시를 주관한 백남준문화전시산업전문회사 관계자는 "백남준 선생님은 지금도 우주를 여행하고 있을 것만 같고, 우주선 형상의 DDP에 다시 나타난다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0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 100점, 임영균 작가가 촬영한 백남준 사진 43점 등 총 143점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예화랑의 김방은 대표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반 고흐 하면 '별이 빛나는 밤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모나리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백남준의 대표작이 뭘까 하면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백남준의 걸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마스터피스를 완성하기 위해 걸어온 인생 여정을 따라 총 다섯 개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첫 번째 방에선 인류와 과학기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길 원한 백남준 작가의 희망을 담았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이 줄지어 관객들을 반긴다. 1989년 구형 텔레비전과 라디오 케이스와 모니터 등으로 만들어진 '다비드'도 그중 하나다.
 
   
▲ 백남준이 퍼포먼스 당시 부셨던 바이올린이 전시 중이다.
 
두 번째는 '노스텔지어'로, 그가 남긴 수많은 예술적 퍼포먼스의 흔적들, 작품 구상을 위한 스케치, 드로잉, 그의 정신이 담긴 손글씨가 가득한 작품이 소개된다. 여기의 백남준의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순간에 함께했던 임영균 사진작가의 기록 사진들과 우리가 접하지 못한 백남준의 오브제가 공개된다. 백남준이 1989년 샬롯 무어만과 함께한 퍼포먼스 때 사용된 바이올린과 2000년 뉴욕 구겐하임 전시 퍼포먼스 때 사용된 조각난 바이올린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을 주제로 연출된 세 번째 방은 인간미 넘친 작가 백남준을 회상하며,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몇 안 되는 샹들리에 작품이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벽에 걸려있는 작품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영상 작품들은 특이하게도 하늘을 쳐다보면서 감상하게 되다.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이 연출했는데, 'TV 첼로'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인상 깊다.
 
네 번째 방의 주제는 '인피니티'로, 백남준이 1991년 만든 'M200'을 볼 수 있다. 모차르트 서거 200주기를 기념해 만든 것으로, 전시 관계자는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나고 200년이 지났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는다. 천재 예술가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음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인피니티'라는 주제로 삶의 찬란함과 영원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네 번째 방은 작품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거울에 투영되고 반사된 연출로 선보여진다.
 
   
▲ 백남준의 1993년 작품 '거북'.
 
마지막 방은 '이데아'다. 백남준이 꿈꾼 '이데아'(IDEA)는 그의 상상과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예술에 대한 생각과 열정을 작품으로 현실화한 것이었다. 백남준 예술 인생의 클라이맥스에 만들어진 1993년 작품 '거북'은 그의 정신과 삶에 대한 사랑, 치열함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전시관계자는 "이데아의 방이 인간이 태어나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게 되는 이상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거북'과 'N200' 등 40여 작품은 레이니어그룹 홍성은 회장의 소장품이다. 홍성은 회장은 "현재의 스마트폰을 수십 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백남준의 창의성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백남준은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지만 저평가됐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를 새롭게 알아가면 좋겠다"고 인사말을 남겼다.
 
임영균 사진작가는 "백남준은 인간적으로 너무 순수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예술가적인 측면에서는 시대를 뛰어넘은 사람이다"라고 회상했다. 임영균 작가는 백남준과 20여 년간 가까이 지낸 바 있다. 임 작가는 "백남준이 만약 지금도 살아있다면 또 어떤 걸 만들어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 최종범 작가가 준비한 헌정작도 전시된다.
 
한편, 최종범 작가는 '삼성 퀀텀닷 SUHD TV'를 이용해 백남준 작가에 대한 헌정작을 준비했다. 여기에 백남준의 1985년 작품인 'TV뷰작'을 '삼성 SERIF TV'로 새롭게 전시 중이다. 당대 최신 기술력과 혁신적으로 협업한 그의 정신이 2016년에도 오롯이 이어지겠다는 것이 백남준문화전시산업전문회사의 설명이다.
 
발걸음을 옮겨 DDP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종로구 창신동 백남준 기념관 부지를 방문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오후 5시 30분부터 기념관 조성사업의 발대식 '헬로우 백남준'을 열었기 때문이다. 
 
백남준기념관 조성 사업은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창신·숭인 지역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백남준 작가의 집터가 있던 창신동 197번지 소재 한옥을 매입하고 서울시립미술관이 조성 및 운영을 담당해 추진 중인 사업이다. 그동안 음식점으로 쓰였던 단층 한옥이 건축가 최욱에 의해 설계되어 최종 올해 11월 완공을 목표로 해체와 보수를 거치는 리모델링 과정에 있다.
 
   
▲ (가운데 왼쪽)박원순 서울시장, (가운데 오른쪽)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백방으로 안녕하세요'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이번 발대식 '헬로우 백남준'은 백남준의 생일잔치이자 기념관 조성사업의 시작과 경과를 알리는 신고식이며 동시에 사업의 무사 완공을 기원하는 기념식이다. 현대예술과 문화전통, 사이버공간과 창신동 커뮤니티를 잇는 이번 행사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김영종 종로구청장, 백남준 작가의 이종사촌인 고옥희 씨 등 인사들이 참석했다.
 
발대식은 백남준의 예술적 영향에 오마쥬하는 후배 예술가들의 축하 공연과 퍼포먼스가 동반되는 예술 행사로 시작됐다. 뮤지션이자 시각예술가인 백현진이 악사 7명과 함께 기념관 안팎과 창신동 골목길,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색소폰, 트롬본, 클라리넷, 피리, 생황, 태평소, 퉁소 등 10종의 동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길놀이 '백방으로 안녕하세요'로 발대식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의 사업경과보고와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등 인사들이 축사를 남겼다. 축사 이후 조형예술가 김상돈은 창조와 파괴를 하나로 본 백남준의 키워드와 참여적 조형성을 유쾌하게 재해석한 고사 퍼포먼스 '百+Paik'을 문화계 인사, 창신동 주민들과 함께 진행했다.
 
   
▲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이 고사를 올리고 있다. TV 안에 돼지가 있는 것이 이채롭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리모델링 이후, 올해 말 공식으로 개관을 앞둔 백남준 기념관은 현대 예술의 거장 백남준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고 특히 작가에게 저장된 1930~40년대 종로, 동대문 일대의 문화적 기억과 훗날 음악, 전자, 시각예술을 통섭한 거장 백남준의 예술세계가 맺는 관계를 찾아보는 상설전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에선 20일부터 내년 2월 19일까지 '뉴 게임플레이' 전시를 진행한다. 백남준 아트센터 서진석 관장은 "현대미술 작가의 작업부터 대중적 게임까지 약 40여 점을 볼 수 있다"며 "인터렉티브 미디어 기반의 게이밍 작업은 백남준 오마쥬, 정치적 게임, 현대미술 작업, 해킹 등 다양한 소주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관객들은 이 게임에 직접 참여하여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백남준 아트센터 전경.
 
본지와의 인터뷰 당시 서진석 관장은 "백남준은 유일하게 예술계에서 서양사상과 동양사상을 가장 조화롭고 수평적으로 융합시킨 유일한 작가였다. 단지 플럭서스 운동(1960년대 초부터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의 일부가 아닌 이상의 또 다른 독립적 작업세계를 구축한 작가였다. 또한, 이러한 그의 예술업적과 유산을 한국의 후배 미술인들에게 가장 많이 물려주셨다"고 전했다. 이번 여름, 그의 정신이 오롯이 전달되는 전시들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