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9일 초연하는 연극 '데블 인사이드'의 김광보 연출가, 김태훈 배우 인터뷰

 

 

   
지난 23일 대학로에서 연극 '데블 인사이드'의 김광보 연출가(오른쪽)와 김태훈 배우(왼쪽)를 만났다

[문화뉴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악마 하나쯤 가지고 있다"

작가 데이빗 린제이-어바이어(David Lindsay-Abaire)의 한 마디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음 달 9일 초연 개막을 앞두고 있는 스릴러 코미디 연극 '데블 인사이드'의 김광보 연출가와 김태훈 배우를 지난 23일 문화뉴스 기자들이 만났다. 베일에 싸여 있는 스릴러 코미디 연극의 내막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연극 '데블 인사이드'는 퓰리처상(래빗 홀, 2007), 뉴욕 드라마 비평가상(굿 피플, 2011)을 받은 작품이고, 현재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희곡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데이빗 린제이-어바이어의 첫 번째 작품이다.

연극은 침수된 도시, 넘쳐나는 쓰레기, 사람을 물어뜯는 굶주린 개,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혼재된 최악의 혼란 속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비극을 그리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우연과 과장되게 비극적인 요소들로 오히려 처절할 정도의 코미디 톤을 유지한다. 인간 개개의 내면에 깃든 '악마'적 모습들을 발견하기 원하는 이 연극, 관객들은 어떤 마음으로 관극을 준비해야 할까? 관극에 앞서 김광보 연출가와 김태훈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데블 인사이드'는 스릴러, 공포, 코미디가 혼재된 연극이라고 알고 있다. 이 새로운 조합을 어떻게 완성시킬 예정인가?

ㄴ 김광보 연출가 : 연극적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설정돼 있다. 극한 상황에 몰려있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의 과장된 자기연민으로부터 나오는 소통의 부재. 처해져 있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어처구니없이 이뤄진다. 여기서 파생되는 웃음도 있고, 상황이 주는 긴장감도 있는 소재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장르라서 다소 힘들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 무대도 '미니멀리즘'에 기반하는가?

ㄴ 김광보 : 그렇다. 빈 무대에 테이블 두개 의자 두 개밖에 없다.

 

'미니멀리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에 대한 신뢰감이 전제돼야 하는 것 같다.

ㄴ 김광보 : 그렇다. 극단 맨씨어터에 대한 신뢰감이 있다. 벌써 세 번째 작업이다. '프로즌', '은밀한 기쁨',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 워낙 잘하는 극단이다 보니까 호흡이 잘 맞는다.

 

시놉시스 홍보문구에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홉 등 러시아 근대 문학의 대가들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물에 잠겨가는 거대한 섬 뉴욕'이 있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홉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이며? 왜 러시아 근대 문학가들을 앞세우게 됐나?

ㄴ 김광보 : 등장인물 중에 '칼'이란 인물이 있다. 러시아 문학을 강연하는 교수다. 그는 자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처럼 환상의 상황에 처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브래드'라는 인물을 지켜보면서 그 인물을 살해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교수다. 플롯이 '죄와 벌'과 유사하다.

 

 

   
 

김태훈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 '칼'이라는 역할을 맡았다. 무자비한 생각과 악몽에 시달리는 '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ㄴ 김태훈 배우: 얼마 전에도 대본을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인데, 보면 볼수록 칼은 슬프고 안쓰러운 사람이다. 이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됐냐고 생각해봤다. 그의 광적인 부분이 성격으로 내재된 것이라 짐작해볼 수도 있지만, 그가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버려졌다는 사실도 그 원인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세 살 때 길거리에 버려진 그는 오페라를 보고 나오던 한 노부부 밑에서 자란다. 어느 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부터 삶에 대한 치열하면서도 집착적인 측면이 있을 것 같다.

그가 버려진 '길거리'가 주는 상징성이 있다. 쉽게 말하면 그는 '거리의 아이'였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기는 힘들겠지만, 굉장히 자기 것에 대해 강한 소유의식이 있을 것 같다. 칼이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의 아내 '릴리'의 말을 들으면, 칼은 처음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집착이 강해져서 광적이기까지 하고 아내를 자기 소유화하려는 집착적 증세를 보이게 된다. 그러면서 아내가 칼과 헤어지고 싶어서 도망가려던 게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릴리가 칼을 피해 하이킹을 갔다가 큰 바위가 떨어져서 다리에 끼게 되고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자기 다리를 자르고 도망을 간다. 그때 어떤 남자를 만나 도움을 요청한다. 칼이 아내를 찾으러 가고 말이다. 릴리는 도움 청한 남자에게 '저 남자(칼)에게 돌아가기 싫으니 도와달라'고 한다. 그래서 그 남자는 칼에게 '자기가 여자(릴리)를 산산조각내서 먹었다'고 이야기하고, 릴리가 칼에게로부터 도망갈 수 있게 도와준다. 칼은 릴리의 남편이기 때문에 릴리를 죽였다고 말하는 남자를 그가 말한 대로 똑같이 죽인다. 산산조각내고 다리를 자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기 아내를 도망가게 둔 히치하이킹 무리를 쫓아다닌다.

굉장히 엽기적이고 광적인 사람인데, 칼이 정말 불쌍해 보였다. 극단적인 조울증 증세가 드러나는 사람이다. 분노 등의 감정조율이 안 된다. 그런 점을 의사나 다른 제3자가 그의 모습을 겉으로 볼 때, '악마가 깃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약간의 피해망상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맡은 인물이기 때문에 배우의 입장에선 (더 이해가 된다. 그는) 조그마한 일에 더 크게 생각하고, 상황이나 대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없다. 다리 하나가 무너져도 세상이 망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실제로 그런 상황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칼은 상대가 그런 의도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이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도와주던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칼에 대해 피해망상이 강하고, 누군가 수군거리면 '누가 나를 해하는 게 아닐까'라 생각하는 사람으로 봤다. 그래서 갈수록 이 남자가 불쌍하고 안쓰럽다. 자기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찾으러 가지만, 자기에게는 사랑이겠지만 타인이 볼 땐 스토커이고, 악마가 깃들었던 모습으로 보였을 수 있다. 나는 거꾸로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칼이 가장 정상적인 인물 같다. 개인적으로, 다들 조금씩 이상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캐서린도, 릴리도 그렇다. 모두 극작술에 의해 비틀어진 인물들이다.

 

 

   
 

도스토옙스키에 빠져 사는 교수 '칼'은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에서도 어느 작품에 빠져 사는 걸까? 본인에게 도스토옙스키란? 어떤 의미인가?

ㄴ 김태훈 : 칼은 딱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 같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랬다. 세상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지배하는데, 자기는 거기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중에 정말 절대 권력도 아닌 그저 전당포의 한 노파가 빈곤한 자를 홀대하는 것을 보며, '저런 사람을 죽이는 게 무엇이 죄냐, 오히려 이 사회의 정의를 일으키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시작한다. '그것이 상대적 강자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나 이 사회의 약자를 도와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사실 히틀러의 생각과 같다. 유태인을 없애는 것이 자기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 히틀러처럼, 칼은 그런 인물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보다 사회에서 정의실현에 대한 자기 합리화된 고민을 했다면, 칼은 배타적 입장에서 자기 목적을 실현하는 쪽이었다. 칼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이 강했다. 그것을 보고 타인은 악마같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포스터 카피에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악마 하나쯤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적어도 칼이라는 인물에게 있어서 '악마'라는 측면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 같다. 자신의 욕구나 사랑, 희망에 의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지키는 사회의 보편성, 도덕성, 일반성의 선을 넘어가는 것이 충분히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칼은 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이 여자를 보호해주겠다. 너는 밖에 나가면 안 된다'라는 식의 사고를 품게 된 것이고, 이게 그를 '악마'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토막 살인도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된다.

다른 인물들도 대본에서 엽기적이고 괴기스럽게 표현된다. 그게 결국 '괴기스러워, 나는 악마야. 나쁜 놈이야'를 연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 자기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다 그런 요소가 있고, 나 또한 있을 것이다. 나이 먹으면 고집스러운 게 있다고 하는데, 그게 타인이 볼 때는 그 고집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악마적 고집으로 보일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악마적 요소는 다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자기 욕구, 희망, 사랑을 지키는 것이 강해지는 것이다.

 

작가인 데이빗 레인지-어바이어의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악마 하나쯤 가지고 있다"는 말이 인상 깊다. 인간 개개의 내면된 악을 건드리는 것이 연극의 방향 같다. 배우들이 자신의 악마를 마주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배우들은 실제로 그런 과정을 함께 거쳤는가?

ㄴ 김광보 : 특별한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다. 상황에 집중하라고 얘기했다. 상황 속에서 충돌해 나가는 게 연극이기 때문에 별다른 과정을 제시하기 보다는, 본질에 충실하라고 이야기했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해 공감대를 느껴야 캐릭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말들은 하지 않았다. 이 연극은 극한 상황에 처해져 있는 인간들의 본연의 모습, 어떤 상황에 도달했을 때 튀어나오는 악마적인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나는 그런 모든 것들이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오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살인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김광보 연출과 김태훈 배우는 서로가 보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나?

ㄴ 김태훈 : 연출님을 처음 뵀던 게 2000년 거창연극제에서였다. 공연 보고나서 잠깐 인사를 했는데, 아마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 거다. 이후 김광보 연출님 볼 때마다 '한번 같이 하셔야죠'라고 인사 겸 바람을 전했었다. 드디어 이번 작품에 만나게 됐고, 굉장히 기분 좋게 작업하고 있다. 언젠가는 꼭 만나고 싶은 연출가였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이 아쉽다.

그동안 연출님 작품을 거의 다 봤다. 연출님은 그 반대일 것이다. 연극 '에쿠우스' 말고는 내 작품을 거의 못 보셨을 것이다(웃음). 연출님에 대해 감히 이야기한다면, 굉장히 깔끔하시다. 심플하고 명확하다. 연극 '헨리 4세' 같은 경우는 이야기 자체가 복잡하고, 고전이고, 장소의 변환도 많다. 그래서 잘못하면 주객전도가 되어 볼거리만 있고, 전개에 대해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할 우려가 큰 작품인데, 연출님이 연출한 '헨리 4세'는 시대적이나 형식적인 모습을 절대 놓치지 않으면서도 연출이 전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전하고 있다. 나이를 이제 조금 먹으니까 배우 입장에서 대한민국 연극계에 이런 연출가가 계속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연극계 대표하는 연출가들이 오래오래 계속 작업하셨으면 좋겠다(웃음). 이게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ㄴ 김광보 :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작업한 배우이기 때문에 이번에 만난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에쿠우스'를 보고 나서 이번 작업을 같이 하면서, 아직까지도 소년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배우라고 봤다. 이 좋은 모습을 아직까지도 잘 간직하고 있는 배우다.

 

 

   
 

초연이다. 관객들에게 관람 포인트를 전해 달라.

ㄴ 김광보 : 이 작품은 여러 부분에서 제가 해보지 않은 장르였기 때문에 해매고 있긴 하다(웃음). 특별한 포인트라기 보단 어차피 연극이라는 것은 서사를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 분들도 당연히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연극 '데블 인사이드'가 어떤 연극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ㄴ 김태훈 : 연출님의 방향대로 맞춰 가겠지만, 배우로서의 바람이 있다. 요새 '웃픈'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됨을 발견한다. 웃픈 현실이라고들 하는데, 이 작품이 단순히 무섭지만서도 코미디 요소로 인해 웃기기도 한, 즐겁고 재밌는 코미디로 끝나는 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품이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지, 어쩌면 내 안의 욕구가 곧 악마적 욕구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요새 분노조절이 안 되어 난폭운전, 보복운전을 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그런 부분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악마적 모습이다.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악마를 예쁘게 다스리고, 잘 타이르고 같이 손잡고 친구처럼 길러갔으면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ㄴ 김광보 : '데블 인사이드'라는 제목은 곧 '내 안의 악마'라는 뜻이다. 인간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 즉 공연을 보면서 '만약에 내가 저런 극한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돌변할 수 있을까'하고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연극이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극한 상황에 처해져 있다 보니 다 뒤틀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의 뒤틀림을 그저 타자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나라면 어떤 모습일까 하며 한 번 반추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관객들이 실컷 웃고 난 후 그런 생각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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