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솔직해서 짠한 그녀에게 공감하는 우리 vs 사랑했지만 자존심이 먼저였던 어리석은 그들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미오jy3308@mhns.co.kr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학교 때 오해영이 둘이었어요. 다른 오해영은 되게 잘 나갔어요.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도는 줄 알았는데, 걔 옆에만 가면 난 그냥 들러리. 그런데 만약에,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걔가 된다면,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난 걔가 되기를 선택할까?  안 하겠더라고요. 난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랐던 거지. 걔가 되기를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기를 바라요. 여전히"

주옥같은 명대사를 만들어내며 20~30대 여성의 사랑을 받는 드라마'또 오해영'.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여주인공도 대스타급 배우가 아니었고, 그저 지나가는 한 편의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여겨졌던 '또 오해영'이 이만큼의 영향력을 갖게 될 줄 알았을까?

'오해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하지만 그녀는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픈 평범한 바람이 계속해 좌절되는 인생을 살아왔는데, 바로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동창 때문이다. 특출나게 모자랄 것은 없는 그녀일지 모르나, 너무나도 잘난 동명이인의 동창으로 인해 해영은 학교에 다니는 내내 '예쁜 오해영'이 아닌 '그냥 오해영'이라 불린다. 왕따를 당하는 것만이 큰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이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고, 모든 이의 시선과 관심은 그녀에게만 향하며, 세상이 내게는 무관심하고, 나는 그저 들러리이자 '그냥'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얼마나 무력하고 상처가 되었을까. 잘나가는 오해영이 '금해영'이라면, 잘나가지 못했던 그냥 오해영은 '흙해영'이라 일컬어진다.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우리네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대단한 경제력의 부모를 만난 '금수저'들에 비교되어 '흙수저'로 비유되듯 말이다.

그녀들의 악연은 고등학교 졸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금해영과 떨어져 대학에 가고,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해영은 나름의 밝고 털털한 성격으로 어필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그래서 과거를 극복한 듯, 회사에서 '아우…내가 학교 다닐 때 말이에요. 그런 애가 있었지 뭐에요?'라며 금해영에 대한 얘기를 추억담으로 이야기하고, 동창들을 만나 '야, 내가 예쁜 오해영이 아니라 실망했냐?'라며 웃어재낄 정도가 되지만, 그런 그녀의 인생에 다시금 금해영이 찾아온다. 그것도 여전히 예쁘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밝고 싱싱하며, 승진에서 누락된 대리인 나와 비교되는 '회사에서 공을 들여 모셔온, 새로 결성된 TF팀의 최연소 팀장'으로. 참 가혹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결혼 전날 뻥- 차인 후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애써 힘을 내어 살아온 해영에게, 조금씩 스며들어 이제는 새로운 사랑이라고 여겨지는 남자가 찾아왔는데, 그가 실은 금해영과 결혼할 뻔했던 전남친이란다. 거기까지도 오케이. 뭐든 소화 가능한 밝음과 이겨냄의 대명사 해영은 그게 내 사랑을 가로막을 방해막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웬걸, 자신의 결혼이 깨졌던 건 내 약혼자가 변심해 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금해영과의 결혼이 깨진 것에 앙심을 품었던 '지금의 내 새로운 사랑'이 내가 그 금해영인 줄 착각해 내 약혼자를 망하게 하고, 내 결혼을 깼던 거란다. 뭐 이렇게까지 기구한 운명이 있나 싶어진다.

2016 '또 오해영'vs 2005 '내 이름은 김삼순'

극중 해영의 모습은 어쩐지 낯익은 여러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중 단연 대표적이라 생각되는 것은 바로 11년 전 방영했던 '잘난 것 없는 평범한 여주인공'의 대명사,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삼순 역시 자신의 이름에 한이 맺힌 평생을 살아왔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나름의 꿈이 있었으며, 외모가 아닌 성격으로 자신을 어필한다. 삼순과 해영은 얼마나 닮았고, 어떻게 다를까. 무엇보다 참 솔직해서 귀여운 둘이다. 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일에 분노할 만도 한데, 이들은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가 자신의 신조인 것처럼, 스스로의 감정에, 사랑에 솔직하다. 그래서 더 좋다. 11년 전 30세였던 삼순이었지만, 결혼연령이 좀 더 높아진 최근의 세태가 반영된 것일까? 2016년의 해영은 32세가 되었다. 나이가 다소 상승되긴 했지만, 결혼이 인생의 화두이고, 주변 사람들의 간섭과 압박을 받는 30대 여성이라는 공통점은 여전하다. 삼순과 해영은 모두 '조금 부족한 듯 해서'더 사랑스러운 여자들이다. 이 부분에서는 아직도 별 거 없는 평균 이하의 여자가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는 우리의 판타지가 조금도 달라지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씁쓸한 마음이 들지만, 완벽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있을 턱이 없으니 어쩌면 불가피한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남주인공은 어떠한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진헌보다 2016년 '또 오해영'의 도경(에릭 분)은 훨씬 완전하지 못하다. 진헌도 아픈 옛사랑을 간직한 남자이고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도경은 멀쩡한 외모와 직업적인 전문성을 제외하고는 어쩌면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해영보다도 더 처참한 남자이다. 너무나 사랑하고 의지했던 아버지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들을 본인의 소유로 생각하며 남편의 재산을 모두 말아먹고도 틈만 나면 아들의 돈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뜯어가는 어머니, 실연당해 매일같이 술독에 빠져 사는 독특한 성격의 누나, 철없는 배다른 남동생, 그리고 결혼 당일 아무 설명 없이 식장에 나타나지 않고 자신을 바람맞힌 사랑했던 여자까지. 그래서 그는 잘 웃지 못하고, 쉽게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을 계속 밀어내기만 하는, 어찌 보면 참 불쌍한 남자다. 그래도 2005년 진헌에 비해 2016년 도경이 더 나은 점은 있다. 27세에 부모의 돈으로 차린 레스토랑 사장이었던 진헌. 하지만 도경은 어릴 적 존경하고 의지했던 아버지의 직업을 꿈으로 생각해 이어나갔고, 36세 나이에 다소 까칠하긴 하지만 인정받는 음향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적어도 그냥 금수저가 아닌 자기 손으로 인생을 일구어내고 개척한 열심히 사는 남자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희진과 2016년의 금해영도 많이 닮았다. 남주인공의 옛 연인인 이들은 27세에서 32세로 나이가 상승하였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각자만의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를 떠났고, 또한 그를 잊지 못해 제멋대로 돌아와 다시금 그를 흔들어 놓는다. 둘은 모두 남자들의 선망 대상이 될만한 아름답고 야리야리한 외모를 지니고 있고, 그녀들의 사정을 들어본다면 또 나름의 상처가 있어, 완전한 악역으로 그녀들을 미워할 수 없어진다. 수면 위에서 우아하게 떠 있기 위해 물 아래서 보이지 않게 발짓을 하는 백조처럼, 자신들이 가진 상처를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애쓰며 스스로 인생을 꾸려온 그녀들을 어떻게 쉽게 욕할 수 있을까. 여주인공인 삼순과 해영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 위치를 말해준다면, 그들의 라이벌이 되는 희진과 금해영은 여자들이 선망하는 대상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2016년의 금해영은 서울대를 나와 유학을 간 재원으로, 해영과 같은 나이에 팀장으로 스카우트되어 온 능력 있는 여자다. 남자친구와의 탁구 대결에서조차 열심히 해, 꼭 한번 그녀를 이겨 청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여자. 더 이상 그저 어리고 예쁘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희진과 같은 여자가 선망의 대상이지 않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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