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에 지친 이들을 위한 위로…… 단지 작가 인터뷰

   
▲ '단지'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문화뉴스] 침묵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있다.

이를테면 알지 못하는 고통들에 관한 것이다. 내게 미지의 영역이며 낯선 대상이라면 섣부르게 입을 열지는 말 것. 필자는 어디선가 일러졌던 이 말을 접했던 순간,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원리로써 이해했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태도가 요구되는 장면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드물다.

웹툰 '단지'의 작가는 '남존여비' 가정 학대의 피해자다. 필자는 '남존여비'라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용어를 직접 체험해본 적이 없었다.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내게 '남존여비'란 "그런 것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지는 대상에 불과했다. '남아선호'라든지, 알고는 있는 현상과 경향에 대해 "알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인지했던 것 중 하나는, "딸은 여자니까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보낼 수 없다. 본가에서 떨어져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 시집갈 때 몸값이 떨어진다."라는 말이었다. 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명백하게 실재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또는,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

웹툰 '단지'는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몰랐던", 누군가에는 "없는 것처럼 치부됐던" 세상을 이야기한다. 작가 단지는 '남존여비'에 기반한 가정 학대의 피해자로서 독자들 앞에 나선다. 작가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지'의 이야기는 작품과 동일한 작가의 이름처럼, 작가의 이야기인 동시에 수많은 단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웹툰 '단지'는 지난 2015년 연재를 시작한 이후 2016년 현재, 시즌2를 연재 중이다. 그간 이 작품은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요즘 시대에 이런 일이 가능할 리 있나. 자작이다.", "나는 작가와 같은 피해자이지만 잘 이겨냈다. 작가는 왜 가족들의 이야기를 파는가."와 같은 비난이 '단지'를 향했다.

하지만 '단지'의 반응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목소리라면, 역시 또 다른 단지들의 말이다. "위로를 받았다.". 자신의 아픔을 들춰내는 것뿐인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일견 의아하게 생각된대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은 세상의 '단지'들이, 그들이 아는 세상에서 연대하는 방식이었다. 나의 아픔은 분명히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며, "나는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외침.

   
▲ '단지'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그렇다면 '단지' 아닌 이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연대란, 경험한 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알지 못하는 고통이 낯설다면 먼저 말하는 대신 천천히 입술을 다물리게 하자. 맞물린 입술 안쪽으로 말이 사라진 뒤에 놓이는 침묵 곁으로는 어떠한 사유가 놓인다. 내 세상에 무엇이 없었고,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에 대한 자각, 그리고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시즌2에 돌입한 '단지'는 이야기의 저변을 확대해 '남존여비' 이외의 가정 학대 사례들에 대해서도 접근한다. 매화의 사연 하나하나는 빠짐없이 충격적이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연을 보내온 주인공들에게 "말하는" 행위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단 그들은 말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

   
▲ '단지'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그러므로 다음의 고통은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 놓여 있다. 알지 못한다면, 알게 됐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고통스러운 타인의 이야기는 "나"로부터 무엇으로 시작될 것인가. "알지 못했던" 이들과 "실재하는" 이들 사이의 연대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단지'가 '단지'의 세상 안팎으로 제시한 연대. 그 연대의 방식에 관해서 듣는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ㄴ 레진코믹스에서 '단지'를 그리고 있는 단지라고 한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아닐까 한다. '단지'를 그리기로 결심했던 계기는 무엇인가.
ㄴ 원래 타 플랫폼에서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가 2014년 겨울이었는데, 당시 담당자님이 내가 준비하던 작품을 재미없다고 많이 몰아붙이셨다. 그러면서 계속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네가 하고 싶은 얘기를 그리면 이렇게 재미없을 수 없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가슴 속 깊이 묻어 뒀던 단지를 그리기로 마음먹게 됐었다. 어릴 적 아픔이 언젠간 작품으로 승화돼서 나오겠거니 했었지만, 이렇게 날것으로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아마 영감을 주는 정도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날것으로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당시에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 나를 자극시키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었던 담당자님, 그리고 때마침 독립을 하면서, 독립을 해도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음을 인지하게 됐던 기회를 가졌던 것. 이상의 두 가지 이유가 있었고, 곧 '단지'를 그린 계기가 됐다.

'단지'를 보다 보면, '단지'를 그리는 과정이 단지 작가에게도 위로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환점이라고 해야 할까. 한결 편해졌다고 느끼는가.
ㄴ 그렇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단지'를 그리는 동안, 그간 피하고 싶어 했던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태 정리되지 못한 감정과 생각이 이번 기회에 정리될 수 있었다. 아마 '단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유부단하게 갈팡질팡하며 가족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연재 이후 작가 본인이 달라진 부분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ㄴ 음. 앞 질문과 같은 대답이 나올 것 같다. 가족에 대한 마음 정리가 됐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예전엔 그저 불편한 감정에 휩싸여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이상 그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고 나를 희생하며 지나갔었다. 지금은 평화로운 상태에서 옛날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며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서 더 이상 가족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아니, 가족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 '단지'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현재 '단지'의 2부가 연재 중에 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모두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연들이 왔는데, 어떻게 선정했는지 궁금하다.
ㄴ '단지' 시즌2는 다양한 방면의 가족 갈등을 그리고 싶었다. 아동학대, 여아 차별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가족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게 본연의 단지의 주제이기도 하고.
여튼, 다양한 방면의 얘기, 예를 들면 성폭력, 극단적인 물리적 폭력, 친족끼리의 법정분쟁·고소 등 해당 분야에 대한 사연을 분류하여 만화로 표현이 적합한 사연자와 접촉했다.

너무 이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작품에서는 다루지 못할, 인상 깊었던 사연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ㄴ 음……. 너무 자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찬, 어떤 한 사연이 있었다. 사연자 분이 여자분이셨는데 계모에게 여러 가지 학대를 당하다, 미성년자일 때 계모에 의해서 결국 유흥업소에까지 나가게 되셨다. 그 유흥업소에서 알게 된 언니도 사연자를 도와주는 게 아닌 이용해 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그러다 결국 미성년자를 유흥업소에 보낸 게 경찰에 걸려 계모와 친부가 잡혀 들어가고. 사연자가 원하지 않지만 결국 그들을 풀어주는 데 동의한, 그런 사연이 있었다. 현재는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고 계신다는 사연이었는데, 결국 그리지 못했다.
모르겠다. 그분의 이야기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게. 내 표현으로 그 분의 인생이 어느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왜곡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물론 다른 분의 사연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사연자 분의 이야기는 그런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리지 못했다.

'미X넷'에서 비슷한 사연들을 통해 겪고 있는 폭력에 대해 자각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단지'는 위로인 동시에, 그런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지'를 보는 또 다른 '단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ㄴ 가정에서의 학대는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생활"이 됩니다. 대부분은 자신이 당하는 것이 "학대"인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힘든 게 그저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안의 분위기가 그렇게 말한다. "네가 그렇게 구박받고 미움받는 건 네가 병신 같아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아파도 그게 내 잘못으로 아픈 줄 안다.
근데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내가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내가 힘들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내 잘못이 아니더라. 나는 피해자야.
어떤 이들은 아픈 마음 자체를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는 걸 알아야 하고, 그게 무엇 때문에 아픈지, 정말 나 스스로의 문제인지 타인에 대한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단지'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는 댓글이 없는 시스템이다. 모르고 있다가, 어, 이런 반응이 있구나, 하고 놀라는 장면들도 있었을 것 같다. '단지' 페이스북이나 다른 매체를 포괄해서, 특히 인상 깊었던 반응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ㄴ 우선 같은 경험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나 혼자만의 경험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놀랐다. 공감에 대한 고마움과 아픈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반대로 '단지' 같은 가정사를 전혀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가 나이가 30대면 80년생이란 건데. 그 시대에도 남녀차별이 있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라는 식의 댓글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사연을 보내주는 독자들의 연령대를 보면 10·20대가 제일 많다. 어느 시대에든 있다.
그리고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나는 그런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났는데, 너는 아무것도 안 하고 익명 뒤에 숨어서 가족 욕이나 하고 있냐. 비겁하고 한심하다."라는 리플도 있었다.
마치 자기가 더 힘들었고 너의 그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뉘양스를 품고 있는 그런 댓글이 몇 개 있었다. 글쎄. 작품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 '단지'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단지'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은가.
ㄴ 나의 과거를 보상받게 해준 작품.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작가 생활에 고민을 하게 해주었다. 차기작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단지'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가. '단지'에 대한 계획은.
ㄴ 시즌2는 총 5.5명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 분당 3회를 소비하니깐 앞으로 몇 회 정도 남았을지……. 대충 계산이 된다. 분량이 더 늘어 날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위와 같이 정해졌다. 시즌2를 끝내면 '단지'는 완전히 마무리된다.

'단지'를 통한 목표라면 어떤 걸까.
ㄴ 가족에게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해보기. 상대방에게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멀어지면 나만 후레자식으로 남겠지. 그래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단지를 그리게 된 거다. 시즌1을 통해서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 '단지'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올해의 계획은 무엇인가.
ㄴ '단지' 시즌2를 마무리하고, 에필로그도 마무리하고. 올해 후반기에는 차기작을 구상할 생각이다. 지금도 간간이 고민하고 있는데 연재 중에는 깊게 고민하기가 힘들다.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차기작으로 새로 연재에 들어가고 싶다. 그게 목표다.
참, 연재가 끝나면 여행도 좀 다녀보고 싶다.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는데 아직도 빈 페이지다.

팬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ㄴ 제 만화를 보고 계신다면 대부분 단지들이겠죠. 고마워요. 단지들. 내 만화에서 위로받는 그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합니다. 제 만화는 "정답"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게 질문하는 독자님들에게 모든 답변을 해드리지 못하고 있어요. 어설픈 답을 하느니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고. 진짜 저도 모르겠어서 답변을 못 해 드린 부분도 있어요. 단지는 독자님들께 "이런 방법도 있어."라고 말하는… 만화입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말해드릴 수 있어요.

"너는 그런 취급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며, 네가 느끼는 감정이 옳다. 아픔을 외면하지 마세요."

문화뉴스 김미례 기자 prune05@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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