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들개이빨 인터뷰

 

   
▲ '먹는 존재'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문화뉴스] 웹툰 '먹는 존재'는 얼핏 제목만 봐서는 이른바 "먹방"을 다루는 작품처럼 여겨진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먹는" 존재로서의 일면은, "존재"를 묘사하기 위한 과정으로 위치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맛있는" 이야기임에는 변함이 없다. 음식을 곁들인 주인공 '유양'의 이야기는, 그 음식들처럼 맛있다.

주인공 유양의 행보는 일반적이지 않다. 사실, 어떤 서사의 주인공이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을 가지고 있는 건 드물다. 눈에 띄므로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유양 자체의 독특함에 대해서도 주목을 해야겠지만, 작가 들개이빨이 유양을, '먹는 존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관한 문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먹는 존재'의 진행은 주인공만큼이나 독특하고, 범상치 않다. 보편적인 슬픔으로 빠져들다가도 완만하고 허무한, 그래서 더 타당하게 느껴지는 결말로 귀결되기도 한다. 뻔하게 짐작했던 게 머쓱해지도록 의외의 길을 제시한다. 

그 '잘 걷지 않는 길'의 토양이 되는 그들의 창작자, 들개이빨의 말을 듣는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ㄴ 만화 그리는 들개이빨이라고 한다.

최근 '먹는 존재'가 완결됐다. 완결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ㄴ 최소 반년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퍼질러 놀고먹고 자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다. 그간 미뤄두었던 '먹는 존재' 단행본 작업, 에세이 작업, 차기작을 위한 취재를 하면서 연재 동안 망가진 심신을 회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 '먹는 존재'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원래는 고시생 신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레진코믹스 데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ㄴ 고시생 신분…… 애써 잊고 있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쓰레기 같던 시절이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놓고 자유롭게 만화를 그릴 요량으로 고시에 도전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지겹고 고된 수험생활에 조금도 적응하지 못했다. 수험서 밑에 소설과 만화책을 깔아놓고 대여섯 시간 동안 읽고, 밥값 아낀다고 밀가루를 사서 직접 수타면을 뽑고 앉아 있고, 시간을 날린 죄책감과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에 산에 올라가서 울고. 당연히 시험만 봤다 하면 큰 점수 차로 낙방했다. 몇 년을 허비하고 고시를 포기했다.
수험 생활에서 탈출한 건 좋았지만 막막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고, 만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밥벌이는 이 일 저 일 전전하며 대충 입에 풀칠하고 지냈는데 막상 필생의 꿈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만화 일은 차일피일 미루고 게을리했다. 제대로 도전했다가 재능 없음이 만천하에 알려지면 정말 죽고 싶을 것 같았다. 그냥 블로그나 인터넷 익명게시판에 낙서랑 잡문을 끄적대고 소일하는 차원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있었다. 간혹 소규모 매체에 연재할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쭈그러드는 저를 지켜보던 친구가, 자기가 운영하는 웹진에 만화를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 편한 마음으로 수락하고 그린 게 '먹는 존재'였다. 37회쯤 연재했을 때 레진코믹스에서 연재요청이 왔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만화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만화는 어떻게 공부했는가.
ㄴ 공부라면 지긋지긋해서 그런지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만화에 접근하니 전혀 공부가 안되더라. 심심하면 연습장에 낙서를 했고 좋아하는 소설, 에세이, 만화를 반복해서 읽었고 쓰고 싶은 대사와 화면 연출을 머릿속에서 계속 굴려보기를 좋아했다. 지금 와서는 그림연습을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하고 있다. 만화가 단순히 그림만으로 구성된 대중예술은 아니라 해도 내공 깊은 화풍이 만화가에게 큰 자산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속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 '먹는 존재'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먹는 존재'는 어떻게 구상되었나. '먹는 존재'는 음식을 소재로 취하면서도 이른바 "먹방" 장르와는 달리, 음식을 서사를 풀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 왜 음식과 사람을 연결짓기로 했는가.
ㄴ 별생각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음식 얘기 사람 얘기 뭐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그걸 어떻게 잘 엮으면 재밌게 그릴 수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 정도만 있었다.

'먹는 존재'의 특징이라면 맛깔 나는 음식 묘사를 빼놓을 수 없다. 등장인물들이 먹는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음식에 관한 장면을 그릴 때 특히 즐거웠을 것 같다.
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음식 그릴 때가 가장 괴로웠다. 인물은 비교적 내가 편한 대로 단순화해 그려도 대사나 연출을 통해 매력을 부여할 여지가 있지만 음식은 아니지 않나. 딱 봐서 맛없어 보이면 실패다. 사실 연재 시작 전엔 '어차피 음식 만화 같지 않은 음식 만화를 그리게 될 텐데 못생긴 음식만 줄곧 등장하는 것도 웃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그런 식의 충격 효과를 오래 끌고 가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음식 만화의 "본분"을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매화 등장하는 음식을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 그리게 됐다. 공들인 것치곤 결과물이 좀 그래서(!) 한없이 민망한데, "맛깔나는 음식 묘사"라고 해주시니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보람을 느낀다.

   
▲ '먹는 존재'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음식점들은, 직접 가본 장소들이 많은가.
ㄴ 음식점은 대부분 내가 지금까지 방문했던 음식점들과 저의 상상을 섞어 만든 가상의 공간이다. 다만 '나들이특집' 편에 등장하는 음식점들은 직접 가본 곳들이다.

사실 '먹는 존재'에 대한 기자의 막연한 인상은 음식 만화라는 거였다. 막상 '먹는 존재'를 보자, 음식보다는 사람에 대한 만화였다. 등장인물마다 사연이 있는데, 주변이나 다른 매체에서 영감을 받은 바가 있는가.
ㄴ 어떤 매체나 주변 환경 중 무엇을 콕 집어 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그동안 제가 접한 모든 것들의 영향으로 인해 만들게 된 것 같다. 사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마냥 새로운 인간형은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생각해보니 현실에서나 대중매체에서나 똑똑하고 주관이 뚜렷한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불만 하나만큼은 꾸준히 품어왔던 것 같다. 그 불만이, 적어도 내 만화에서만큼은 제 잘난 맛에 사는 고학력 여자가 맘대로 지껄이게 놔둬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내 개인적인 한계 때문에 주인공 유양의 냉소적인 성격과 똑똑함이 100% 표현되진 못했지만.

   
▲ '먹는 존재'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작가님은 주인공 '유양'과 닮은 면이 있을까.
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얼굴 큰 거랑 눈매가 닮았고 이름이 비슷하고 전공이 같고 방을 엄청 더럽게 쓰는 버릇, 그리고 꿈은 큰데 무지하게 게으르다는 점이 닮았다. 차이점을 말하자면 유양은 자기애가 넘치고 좋고 싫음을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반면 나는 자학이 심하고 웬만한 불만은 눌러 참는 소극적인 성격이다.
이 점 때문에 유양과 저는 이런저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라 보는데…. 이 질문이 나올 때마다 약간 난처하면서도 흥미로운 게, 질문하시는 분들은 유양 캐릭터와 저의 공통점에 관심을 보이시는데 나는 자꾸 차이를 강조하며 도망가려고 한다는 거다. 기회가 되면 작가의 신상 정보가 전혀 연상될 여지가 없는 SF물 혹은 아예 누가 봐도 100% 내 이야기인 작업을 해보고 싶다.

'먹는 존재'에는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특히 애정을 가진 캐릭터는.
ㄴ 박병과 박정 형제. 둘의 성격이 빛과 그림자처럼 다른데 외모는 둘 다 수제비처럼 흐물흐물 그리기 쉬워서 정말 너무나 사랑스럽다. 작업이 괴로울 때마다 둘이 마주 보고 대화하는 컷만 한 화 내내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 '먹는 존재'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먹는 존재'의 초반과 중후반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초반에는 활극 같은 느낌이었다면, 후반에는 가라앉아 있었다는 인상이다. 작가의 심경이 영향을 미친 바가 있을까.
ㄴ 애초의 계획은 1부보다 염세적, 공격적 성향이 높아진 유양이 더 과격한 말을 쏟아내게 만드는 거였다. 언젠가부터 말 몇 마디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식의 연출방식에 회의가 느껴졌다. 대사를 그렇게 잘 쓰는 편도 아니면서 자꾸만 "불의"에 "일침"을 날리려고 하는 스스로가 너무 지겹고 부끄러웠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졌고 설상가상으로 사회 분위기마저 나날이 악화됐다. 앞서 똑똑한 여자가 맘대로 설치고 떠들게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일깨워주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갈 곳 없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이런 시절에 과연 어떤 만화를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까지 얹어지니 자연스럽게 몸져눕게 되더라. 겨우 일어나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긴 했지만 그 고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1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덜컹거림이 심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고민거리들을 만화에 좀 더 솜씨 좋게 녹여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것밖에 못 했나 싶지만… 뭐 연재를 끝낸 입장에서 팔자 좋게 하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

   
▲ '먹는 존재' 연재 페이지 캡쳐 ⓒ 레진코믹스

차기작 구상은 어떠한가.
ㄴ 서울 지하철 노선도의 종점만 골라 여행하는 이야기와, 성 소수자 이야기를 구상 중에 있다. 요즘은 한국인 여자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생각이 자꾸 든다.

작가로서의 목표라면.
ㄴ 떠오르는 구상들을 죽기 전에 전부 그려본 작가가 되고 싶다.

올해의 계획은.
ㄴ 솔직히 그냥 미친 듯이 놀고먹고 싶다. 앞서 말씀드렸던 작가로서의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지 잘 아실 수 있겠다. 뭐 말이 그렇지 사정상 마냥 놀 수는 없을 것 같고, 단행본 작업과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위한 취재에 들어갈 계획이다.

팬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ㄴ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든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문화뉴스 김미례 기자 prune05@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