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를 접수한 '비틀스의 나라' 영국, 그리고 영국 밴드들.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김수영 panictoy27@mhns.co.kr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실용음악과 건반을 가르치면서 음악방송 '음악잡수다' DJ를 맡고 있다

[문화뉴스] '팝 음악의 역사는 곧 록음악의 역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록음악이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오랫동안 쥐고 흔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반발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록밴드들의 음악은 현재의 팝 음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며, 록음악을 제외하고는 팝 음악의 역사를 논할 수 없다.

'록음악' 혹은 '록밴드'하면 떠오르는 밴드들 혹은 뮤지션들이 다들 한둘씩은 생각날 것인데, 필자의 경우는 일단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콜드 플레이'(Coldplay)를 떠올린다.

전 세계 밴드음악 발전의 일등공신이라 한다면 누구나 '비틀스'(Beatles)를 떠올릴 텐데, 사실 필자는 비틀스 음악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기에(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하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떠올릴 대형밴드에는 '비틀스'(Beatles),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크림'(Cream),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퀸'(Queen),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뮤즈'(Muse), '블러'(Blur), '오아시스'(Oasis), '라디오 헤드'(Radiohead). '킨'(Keane), '스노우 패트롤'(Snow Patrol), 'The 1975', 그리고 현재의 '멈포드 앤 선즈'(Mumford & Sons) 등등.

이름만 들어도 감탄을 자아내는 이 수많은 밴드들은 모두 서유럽의 작은 나라 영국출신 밴드들이라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미리 고백하자면 필자는 엄청난 브릿팝 팬이기도 하다)
비틀스를 시작으로 팝의 강국인 미국의 빌보르 차트를 점령했던 일련의 사태(?)들을 평론가들은 '영국인들의 침공'이라는 뜻으로 '브리티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이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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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가 부숴버린 빌보드 차트의 벽, 롤링 스톤즈, 더 후, 애니멀스…'밴드들의 진격'

1960년대의 미국의 팝 시장에서는 당대 최고의 로큰롤 스타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지다시피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입대를 하게되고, 척 베리는 갑작스럽게 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제리 리 루이스는 13살의 사촌 여동생과의 결혼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으며 내리막을 걷고 있었고, 리틀 리처드 역시 목사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로큰롤 세계를 떠나버렸다.

또한 에디 코크런과 진 빈센트는 함께 교통 사고를 당해 에디 코크런은 사망, 진 빈센트는 그 사고에 대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시달리며 살았다. 버디 홀리 역시 갑작스러운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파죽지세(破竹之勢)의 로큰롤계의 큰 별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져버렸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미국 로큰롤 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계속 이어져가는 듯했다.

이때를 틈타 영국발 초대형 음악 밴드가 미국을 점령했으니 그 팀이 바로 비틀스였고, 이들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팝 음악'하면 미국과 영국이 나란히 양분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만, 그 당시의 미국 빌보드 차트의 벽은 미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뮤지션들에겐 사실상 넘기 힘든 벽이기도 했기에, 많은 뮤지션이 그 벽을 넘으려 노력했으나 그다지 좋은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출신의 멀쑥한 4명의 청년은 그 높디높은 빌보드 차트의 벽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 말 그대로 '침공'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어울렸을는지 모른다.

1964년 2월 1일 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자신들의 'I Want To Hold Your Hand'을 올렸고, 그 뒤 며칠 뒤인 2월 7일에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위해 출국한 비틀스를 미국에서는 그들의 출국 소식을 시작으로 이동 경로까지 생중계하며 비틀스를 기다렸고 비틀스가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는 이미 만 명이 넘는 팬들이 운집해있었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 도착한 후 곧 당대 최고의 미국 예능프로그램이었던 '에드 설리번 쇼'에 비틀스가 출연하게 되는데, 이날 이 쇼의 시청률은 무려 60%를 넘었고 이는 곧 약 7천만 명 정도가 이 쇼를 시청한 격이라고 하니 미국 팝 시장의 높은 벽을 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벽을 부숴버리고도 남을 기세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지에서 뽑은 '20세기 록 음악계의 역사적인 100가지 사건'중 당당히 1위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때 비틀스를 시작으로 롤링 스톤즈, 더 후, 애니멀스 같은 영국의 록밴드들이 미국 차트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하던 시기를 평론가들은 '제1차 브리티쉬 인베이젼'이라 일컫는다.

▲ '20세기 록 음악계의 역사적인 100가지 사건'의 1위를 기록한 순간. 1964년 2월 9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비틀스의 'I Want to hold your hand'

하드록의 거장들이 다시 한 번 북미 대륙을 뒤흔들다 -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딥퍼플.

제1차 브리티쉬 인베이젼의 주역들의 미국 활동은 미국 내에서의 영국 밴드들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여기에 또 한 번 기름을 들이붓는 대형 밴드들이 또다시 영국에서 날아들게 된다.

제1차 브리티쉬 인베이젼이 비틀스, 더 후, 롤링 스톤즈의 삼파전이었다면 제2차 브리티쉬 인베이젼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딥 퍼플의 삼파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점점 더 강하고 무게감 있는 사운드와 퍼포먼스로 발전한 하드록의 선봉에 이 세 팀이 있었고
레드제플린은 1973년 전미 투어 공연에 나서게 되는데, 이 투어 도중 탬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투어 공연 때 무려 5만 6천여 명의 관객이 모여들었고, 이는 비틀스의 미국 투어 기록을 깬 것이라고 하니, 레드 제플린의 미국 내에서의 인기 또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1975년 3월 29일 자 빌보드 앨범 차트에는 레드 제플린의 모든 앨범 6장이 모두 앨범 차트에 진입해 있었던 것.

이때 레드 제플린의 새 앨범인 'Physical Graffiti'가 발표되면서 일어난 기현상이었다고 하며, 이 기록은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1968년에 데뷔 앨범 'Shades of Deep Purple'을 발표한 딥 퍼플은 이 데뷔 앨범의 'Hush'라는 곡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4위에 진입하기도 했으며 블랙 사바스의 데뷔 앨범 'Black Sabbath' 역시 미국 빌보드 차트 23위에 오르는 등 영국밴드들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헤비메탈 음악의 선봉에 서게 된다.

▲ 레드 제플린의 히트곡 중 가장 명곡으로 손꼽히는 'Stairway to Heaven'. 극적인 전개의 묘미와 지미 페이지의 기타 솔로, 로버트 플랜트의 유혹미 넘치는 보컬을 감상할 수 있다.

'브릿팝'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시작된 제3차 브리티쉬 인베이젼.

90년대 들어 모던록이 유행하면서 또다시 브리티쉬 인베이젼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킬 만큼 큰 성공을 거뒀던 영국의 오아시스와 블러. 이때부터 사실 '더 이상의 브리티쉬 인베이젼은 없다'라고 할 만큼 영국발 팝음악을 가리키는 '브릿팝'이 빌보드 차트의 지분을 나눠가지게 된다.

오아시스는 무려 7천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는 팀이고, 1995년 발표된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미국에서 4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3집 앨범이었던 'Be here now'(1997)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1위, 미국 앨범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2005년 발표한 6집 'Don't believe the truth'는 발매된 지 첫 주 만에 미국에서만 약 6만 5천 장의 판매되기도 했다.

갤러거 형제(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이 팀은 형제간의 강도 높은 불화설이
음악만큼이나 큰 관심거리이기도 했으며, 결국 2009년 노엘 갤러거는 오아시스를 탈퇴해 자신만의 밴드를 재결성하고 활동하기에 이른다.

1995년 8월 14일에 오아시스와 블러는 동시에 새로운 싱글을 발표하며 일명 '브릿팝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 결국 승자는 블러의 'Country House'가 되었고, 블러 역시 1995년 발표한 정규 앨범 'The Great Escape'가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50위에 오르기 시작하여 1997년에는 'Blur'라는 앨범으로 61위, 1999년 발표한 앨범 '13'은 80위, 2003년 발표한 'Think Tank'는 56위, 2015년 작인 'The Magic Whip'이 24위에 오르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오아시스와 블러의 브릿팝 전쟁으로 시작된 제3차 브리티쉬 인베이젼에는 이 두 팀 외에도 라디오 헤드, 스웨이드, 뮤즈, 트래비스, 콜드 플레이 등이 속해있으며 이제는 더이상 '영국의 침공'이라는 표현을 쓰기 무색할 만큼 수많은 영국 뮤지션들의 음악이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고 있고, 또한 '영국인의 미국 침공'이라는 초창기의 '브리티쉬 인베이젼'이라는 표현 역시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영국 음악이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에, 현재 아델(Adele), '원디렉션'(One Direction), 미카(MIKA), 에드 시런(Ed Sheeran), 제임스 베이(James Bay), 제시 제이(Jessie J)등 많은 영국 뮤지션들의 찬란한 영광은 곧 '비틀스'라는 거대한 물줄기로부터 뻗어나온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 오아시스의 'Stand by me'. 이 곡이 수록된 3집 'Be here now'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오아시스의 명곡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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