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이방인의 노래' 리뷰

[문화뉴스] '사천가', '억척가' 이후 4년 만에 드디어 이자람이 소리꾼으로 무대에 섰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에 이어 그가 택한 작품은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Bon Votage, Mr. president!)'다.

이자람은 '판소리와 서사극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빚어내어 한국 뿐 아니라 유럽, 남미, 오세아니아까지 세계 각지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소리꾼이자, 작/작창가다. 그녀는 '판소리는 언제나 긴 서사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비롯해 판소리 단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렵고, 길고, 보는 일 자체에 힘이 필요한 장르'로 인식되는 판소리도 짧은 이야기 안에 완성도 있게 담길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그가 판소리단편선으로 선보인 첫 작품은 주요섭의 단편 '추물'과 '살인'을 원작으로 했다. 그에 이어 두 번째로 도전한 작품이 바로 마르케스의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이다.

실제로 그녀의 작업은 '어려움'이라는 것이 퍼포먼스에게도 관객에게도 장르적 특색으로 자리잡아버린 '판소리'의 기존의 인식을 뒤집어 놓는다. 그녀가 마르케스의 소설에 빠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친근하게 시작되는 이 공연은, 판소리를 어려워하고 지루해하던 여느 관객이라도 쉽고 친근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원작은 스위스 제네바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자람은 친절하게도 우리가 알기 힘든 단어나 개념(빠에야, 물라토) 등을 공연에서 '간드러지게' 설명해준다. 제네바에 위치한 한 병원의 앰뷸런스 운전사인 오메로와 그의 고국의 전직 대통령이었던 한 노인, 오메로 부인의 라사라, 그리고 나레이터까지. 그녀는 제각각의 몸짓과 목소리, 억양 등으로 1인 4역을 매끄럽고 조화롭게 소화해낸다.
 

   
 

판소리의 묘미는 우스꽝스러운 어휘로 표현되는 실제적인 묘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마르케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공연은 판소리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전직대통령을 만나 곤경에 처하게 된 오메로와 그의 부인 라사라의 모습을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하는데, 그 어휘력이나 리듬감이 판소리 공연을 처음 접한 초보 관객에게도 곧잘 들릴 수 있을 만큼 쉽고 익숙하게 구성됐다.

노래라는 매개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판소리는 역동적인 몸짓이나 화려한 무대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오늘날의 '공연예술'이라는 장르는 사방이 뚫린 마당이 아니라,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과 퍼포머의 긴밀한 호흡이 어렵다. 따라서 청자들의 추임새로 흥을 돋울 수 있는 판소리라는 장르는 지루하고 힘든 공연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이자람의 무대는 적절한 조명을 사용하고, 두 고수의 자리를 상하, 좌우 대립적인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심심할 수 있는 무대를 아기자기한 역동성으로 꾸며놓았다. 시공간에 따라, 그리고 이자람의 역할 변화에 따라 변하는 조명의 색과 방향은 굳이 별다른 오브제 없이도 이 공연을 충분히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또한 기타 고수는 사다리의자 위에, 소리북 고수는 낮은 평상에 배치하고 또 이들을 양쪽에 대치시킴으로써 지루하지 않은 무대를 보여준다.

이번 공연의 핵심은 '대치의 조화'였다. 이자람은 극외를 책임지는 소리꾼 내리이터, 극내를 꾸며가는 3인의 캐릭터를 겸하며, 등장인물 내에서도 남성과 여성을 오간다. 또한 전직대통령으로서의 기품 있는 행동묘사와 외국인 노동자의 알량한 행동묘사를 함께 표현한다. 무엇보다 프로시니엄이라는 구조에서 관객들과 얘기를 나누는 퍼포머로서의 이자람의 모습은 낯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은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판소리라는 이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저 '와 주시면' 좋겠다"
(소리꾼 이자람)

그의 바람은, 각별하고 정성스러운 노력으로 일궈진 이 '판소리 단편 프로젝트'를 통해 곧 실재하는 것이 될 수 있으리라고 예측해본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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