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아트의 선구자 키스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 뱅크시

[문화뉴스 MHN 김선미 기자] 어둡고 사람들이 외면한 길거리나 골목, 지하철, 낡은 건물의 벽에 그려진 낙서. 이를 예술로 만들어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스트리스 아티스트들이 있다.

스트리트 아트의 대표 키스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 뱅크시. 이들은 미술관에 있는 작품만이 예술이라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며 자신의 낙서에 메시지를 담아 표현했다.

ⓒ haring

키스해링

키스해링은 뉴욕 거리의 벽면과 지하철 플랫폼에 그려진 그래피티에 영향받은 키스해링은 길거리, 지하철, 클럽의 벽면을 캔버스로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역무원이나 경찰관 몰래 재빨리 그림을 그리고 도망친 키스해링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부분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냈다.

간결한 선으로 눈에 쉽게 띄는 아이콘을 그려낸 키스해링의 그림은 순식간에 대중들 사이에 빠르게 알려지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지하철 드로잉을 시작으로 키스해링은 예술가와 소수 상위층만을 위한 기존 예술 질서를 거부하며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키스해링은 도시의 벽, 클럽, 어린이 병원 등 공공장소의 작품을 제작하며 에이즈, 마약,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표출했다.

ⓒ artnet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해링과 같은 시대때 활동하고 있던 또 다른 스트리트 아티스트 바스키아. 당시 바스키아는 세뇌하는 종교, 정치, 엉터리 철학을 비판하는 표현의 사모(SAMO)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도시 전체를 캔버스로 삼았다.

암울한 어린 시기를 보낸 바스키아는 그림을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곳이라 여기며 뉴욕 뒷골목을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표현방식으로 선보여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자전적 이야기, 흑인, 인종주의, 만화책, 해부학, 낙서 등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것들은 주제 삼아 작품을 만들어냈다.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바스키아는 고전 미술과 거리낙서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차이를 무너뜨리며 사회가 접한 문화와 인종 차별 문제를 명확한 메시지로 전달했다.

ⓒ banksy

뱅크시

영국의 미스터리한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 그는 예술이 투자대상으로 전락하던 90년대 자유롭고 풍자적인 예술로 등장했다.

얼굴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뱅크시는 전 세계를 누비며 허가받지 않은 길거리의 문과 담벽 등 곳곳에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그려놓는다.

그는 길거리에 그린 낙서의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며 자신의 그림임을 입증한다.

대중과 함께 예술시장은 갑자기 생겨난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뱅크시 그림에 주목하게 되고 자연스레 그의 가치는 올라가게 되었다.

경매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낙찰되자 파쇄 퍼포먼스까지 선보인 뱅크시. 현대 미술의 허례허식을 비판하며 일상에서의 예술을 보여준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어디에서 어떻게 선보일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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