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열풍 속 우리 사회 여성들은 어떻게 자리했는가

ⓒ노승복, 아카이브 피그먼트 프린트, 300x100cm 6점, 2018[서울대미술관 제공]

[문화뉴스 MHN 유채연 기자] 연말, 서울대미술관 3층 전시장이 온통 '사랑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찼다.

분홍과 주황, 노랑 계열의 추상화 여러 점이 연이어 걸렸다. 그림마다 아래 귀퉁이에는 '1366 project'라는 글자가 써 있다.

1366. 여성긴급전화 번호다. 노승복 작가 그림이 마냥 핑크빛일 수 없는 이유다.

"2002년부터 1년 정도 한국여성의전화 직원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가정폭력 피해 사진들을 보게 됐어요. 끔찍했죠. 그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끔찍함 이상의 것을 작업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울긋불긋한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사진 속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멍 이미지를 수천 배로 확대해 작업한 것이다. 그렇게 폭력을 직접 증거하는 실체는 사라졌다. 

지난 2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원 이미지를 없앤 것은 그렇게 숨겨진 폭력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면서 "은닉돼 있기에 더 처벌하기 어려운 폭력들"이라고 설명했다.

"2002년 당시에는 그러한 '안 보이는 폭력'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때 작업은 그러한 현실을 향한 문제 제기 성격이 강했고요. 물론 지금도 폭력이 계속되고 있기에 당시 데이터를 이용해 계속 작업하고 있습니다."

노승복 '1366 프로젝트'는 이날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개막한 기획전 '여성의 일' 출품작 중 하나다.

페미니즘 열풍이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가운데 마련된 이번 전시는 여성 미술가들이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시각화했는지를 돌아본다.

고등어, 노승복, 리금홍, 박자현, 양유연, 임춘희, 장파, 정정엽(입김), 정혜윤, 조혜정, 홍인숙 등 작가 11명이 참여했다. 

손바닥만 한 드로잉 100점으로 이뤄진 장파 '드로잉 포 브루털 스킨'은 심해 원시 생명체를 그린 것인가 싶지만, 여성 성기를 모티프로 한 작업이다. 성기에 박힌 눈은 응시와 평가 대상이었던 여성이, 응시 주체가 됨을 의미한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웹 개발자인 정혜윤은 부라더미싱 등으로 구성된 '구.디.2번 출구'에서 여성 노동자 현실을 비춘다. 그 어머니 또한 1980년대 초 구로공단 노동자였다는 맥락이 더해지면서 수십 년째 해소되지 않는 차별을 보여준다.

김태서 학예연구사는 "여성으로서 개인적, 사회적으로 겪는 고립과 불안, 차별은 결코 '여성만의 일'이 아닐 것"이라면서 "이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우리 사회가 귀 기울이고 목소리 높여 발언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2019년 2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오는 2019년 1월 24일에는 서울대미술관 1층에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양효실), '여성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발가벗어야만 하는가'(양은희)를 주제로 한 강연과 대담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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