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박항서가 '베트남의 영웅'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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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홀릭'] 그는 어떤 인물인가 ①에 이어

[문화뉴스 MHN]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는 선수 생활은 다른 국가대표 감독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짧은 것이 특징이다.

박항서는 약 7년간 필드를 누비다 선수 생활을 뒤안길로 했다. 그의 나이 29세의 일이다. 그러나 은퇴를 선언한 이후로도 축구에 대한 박항서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선수 생활을 할 때 부터 '악바리'로 통했던 그는 은퇴의 여유를 만끽할 세도 없이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활동을 이어가며 인재 육성에 힘쓰기 시작했다. 또 1997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소속지를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했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거스 히딩크가 허정무 감독의 뒤를 이어받아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서울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 낸 거스 히딩크가 '붉은 악마 호'를 이끌던 선장이었다면, 박항서는 부선장 같은 존재였다. 

박항서는 히딩크 감독과 국가대표 선수들 사이를 오가는 다리 역할을 수행하며 4강 신화를 함께 이루어 냈고, 이 성과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당시 박항서와 선수들 사이 역시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황선홍이 조별 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전 때 선취골을 넣고 안기러 간 사람이 박항서였던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함께한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존경받던 코치인 박항서. 어쩌면 감독으로써 그의 자질은 코치였던 시절부터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던 2002년 여름, 월드컵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안 받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감독 직을 눈 앞에 둔 그의 가슴은 어느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홀릭] 그의 신화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③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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