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삶의 열정, 길쭉한 배지 위에 꽃피우다

우리들농원 민병선 대표

즐거운 삶의 열정, 길쭉한 배지 위에 꽃피우다

처음 민병선 대표를 만났을 때 그녀는 반짝거리고 있었다. 검은색 작업복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그녀의 눈부신 열정을 헤아리기에 충분했다. 버섯 재배사 문을 열면 분명 나이가 지긋한 억센 남성을 만날 거라 예상됐지만 시절이 빛나는 젊은 여장부, 민병선 대표가 그곳에 있었다. 배지를 능숙하게 정리하고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모습은 민 대표가 스스로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 말하고 있었다.

 

옛 재배방식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재배방식 도입과 안정화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 위치한 민 대표의 재배사는 각각의 섬 처럼 가옥을 중심으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표고버섯 사업이 처 음부터 완전한 준비체제를 갖추고 펼쳐진 게 아니라 점차적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민 대표는 원목 형태의 예전 재배방식을 과감 하게 정리하고 배지 재배방식으로 바꿔 희망을 종균했다. 불안했 던 초보 농사꾼의 사업은 점진적으로 성장했다. 5개에서 23개로 재배사가 확장되는 동안 농부로서의 꿈은 천안의 고요한 땅 위에 천천히, 한 땀 한 땀 자리 잡혀 가고 있다.  지금은 배지를 직접 제조하며 표고버섯을 자립으로 생산할 머 지않은 그날을 향해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다.

 

무의미한 나날, 저만의 재배사를 가지게 된 후 희망이 생겼죠

밝았던 미소가 잠시 사라지고 한숨을 길게 쉰 뒤 말을 이어갔 다. 식품 쪽 진학을 희망했지만 두 군데 다 진학하지 못했고, 아이 러니하게도 한국농수산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처음부터 한 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할 생각은 없었다. "쌀, 포도, 배, 버섯 등 복합영농을 하시던 아버지가 버거워 졸업 후 아버지 곁을 떠났어요" 

하루는 배밭, 하루는 포도밭에서 아버지의 허드렛일을 돕다 보 니 크게 책임감을 갖지도 않았다. 이때 방황을 좀 했다고 한다. 그 러다가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일을 했다. 1년이 지난 뒤 아버지 가 부르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전공인 버섯 재배 기반을 마련해 주시겠다는 이야기였다. 기술원에 근무하면 서 사회 경험을 조금이나마 쌓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사회 경험이 전무한 딸을 위한 배려였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한 시절이 좀 있었어요. 아버지는 복합 영 농형태로 사업을 운영하셨죠. 버섯 전공을 하긴 했지만 스물둘의 나이에 친구들과 다른 진로가 조금 버거웠던 게 사실이에요"

 

배지 위에 피어난 희비, 이제는 능숙한 버섯 농사꾼

배지를 처음 도입하는 작업도 절대로 쉽진 않았다. 원목에서 배지로 바꾼다는 게 단어 하나를 바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실패를 통해 절감했다. 생육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을 모조리 재정비해야 했다. 게다가 쉽게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농가들의 특성상 대학에서 배웠던 내용이 아니고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여름에 처음으로 배지를 도입했다. 원래 배지는 여름에 찍게 되면 불량률이 높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름에 찍은 배지는 이상이 없었고 겨울에 찍은 배지에 100% 오염이 발생했다. 푸른곰팡이가 피어 만들어 놓은 배지 전체를 모두 버릴 지경이 됐다.

아버지를 설득해서 배지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사고에 당면하니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오염된 배지를 모두 모아 한 번 더 살균했다. 유류비와 인건비 손해가 추가로 발생하겠지만 그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몇 개라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지만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살균실에서 나온 배지는 오염되기 전 상태와 마찬가지로 반듯한 형태였지만, 어떤 형태로 버섯이 재배될지 예측할 수 없기에 종균을 접종한 뒤 며칠은 잠을 설쳤다. 이미 곰팡이가 한번 폈으니 영양분이 적어 손실이 많을 것을 감수해야 했다. 며칠 뒤 발아 상태를 보고 잠시 안도했지만 정확하게 재배의 윤곽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안심할 수 없었다.

생육 조건을 최대한 맞추고 수분 상태와 온도에 신경을 썼으며 평소보다 더 자주 하우스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버섯이 잘 자라 이상이 없던 배지와 수확률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작물의 상태도 좋았다. 터무니없는 실수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 것이다. 주변 농가들도 모두 의외의 결과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될 실수다. 민 대표는 "이런 실수가 거듭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만 같은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비법을 얻었다며 미소를 띠었다. "어떤 상황이든 위기가 없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이들의 말만 듣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과, 다그치지 않고 지켜봐 주시며 곁에서 걱정해 주신 부모님 덕에 손해를 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시선에 여자라는 편견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남성들만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아버지의 조언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의 기반이 됐다고 봐도 무방해요"

아버지에게 가부장적인 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 대표는 성장하는 내내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은 느끼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도울 때 손이 야무지고 일머리가 있다며 아버지가 유난히 관심을 많이 주셨던 것이 괜한 사탕발림이 아니었음을 지금은 잘 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민 대표를 후계자로 삼을 준비를 하셨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 대표에게는 남동생 둘이 있다. 어려서부터 밭에 절대 들어가지 않았던 큰 동생은 의류업계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작은 동생은 내년에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 예정이다. 아버지는 맏이인 민 대표의 자질을 아셨는지 농업을 이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현재 민 대표는 아버지가 보셨던 안목 이상의 성과를 사업의 규모로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오히려 아버지가 자신의 사업을 줄이고, 민 대표의 사업을 돕는 중이다.

"나태해지고 싶어도 지금으로서는 사치죠. 아직 업무를 체계화하지 않았기에 그때까지는 감수해야 할 몫이라 생각해요" 민병선 대표의 열정은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열정은 앞으로도 단단하고 아름답게 타오를 것이다.

일반 현황

나만의 성공노트

성공 노하우

졸업생들 대부분이 직접 경영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어려운데, 아버지께서 현명하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새로운 사업을 하나씩 도모할 때마다 아버지는 먼저 지시하지 않으시고 직접 부딪치라 가르치셨습니다.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주셔서 상황마다 새로운 해답을 얻고 있습니다. 농사를 시작했던 첫 해 아버지가 투자하셨던 사업자금을 모두 갚았습니다. 원목으로 버섯 재배를 하던 시절보다 배지를 이용해 생산하는 현재, 매출도 훨씬 좋아졌고 사업 규모도 커졌습니다.

미래 계획

버섯 농사의 전반적인 부분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싶습니다. 전기 쪽을 따로 공부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기계 이상이 생기면 사람을 부르지만, 점차 모든 시스템을 직접 관리하고 싶어요. 그리고 직접 판매 분야도 연구하고 있어요. 물량을 두 배 정도 늘려 전국 유통망 채널을 뚫으려 계획 중입니다.

경험자 조언

버섯 출하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기에 아침 업무가 조금만 지연되면 상품 가치가 많이 떨어져요. 책임을 져야 할 일자리가 생기니 희한하게도 새벽에도 자동으로 눈이 떠졌죠. 농사를 시작할 때, 어떻게 하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해 보세요. 기존의 부모님이 이루신 성과를 그대로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서 자신만의 작물을 한번 재배해 보세요. 직접 키우며 성과를 만들다 보면 농사를 대하는 태도가 바뀝니다.

 

청년농업인,

그것이 알고 싶다!

Q. 한국농수산대학 졸업이 어떤 면에서 장점이었나요?

A.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바로 인맥이다. 하지만 인맥 말고도 자랑할 것은 충분히 많다. 한국농수산대학의 정규과정을 끝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특혜가 있다. 국가지원 사업의 경우 한국농수산대학 졸업자에게 가산점이 적용된다. 실습과정에서 겪은 충분한 실전 경험이 있어 사업에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농업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추천한다.

Q. 여성이기 때문에 농업을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요?

A. 농업을 선택할 때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은 기존의 틀을 그대로 고수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이 책임질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스스로 깨닫는 데에 있다. 성별의 한계로 인해 도전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지만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여성의 관점으로 섬세하게 살필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장점을 부각시키면 단점은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Q. 버섯 농사에서 주의할 점은?

A. 기계로 임의적인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 기계 점검을 늦추거나 소홀히 하면 사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한다. 얼마 전에도 다른 하우스에서 일을 보다가 업무가 길어져 점검을 하루 건너뛰었더니, 평소에는 이상이 없던 냉방시스템의 오작동으로 하우스 온도가 20℃가 아닌 30℃까지 오른 적이 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3,000만 원 정도 손해를 볼 뻔했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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