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깊은 안개와 붉은 노을이 키운 사과

이른아침사과농장 윤준 대표

성춘향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푸른 사과가 지리산의 아련한 노을빛으로 점점 물들고 있었다. 젊은 윤준 대표와 그의 아내가 백일이 지난 아이를 돌보고 있던 저녁 시간이 돼서야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의 깨끗한 흙이 신선한 공기를 부지런히 내뿜고 있어서 숨을 쉴 때마다 공기의 상쾌함을 폐가 먼저 느끼고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농장에서 직접 가공한 사과즙을 맛보고는 감탄했다. 입안을 감도는 단맛은 이곳 지리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이 달콤한 사과즙에 들어간 첨가물은 다정한 가족의 정성과 지리산의 풍경, 그리고 '소박한 농부의 꿈'이었다.

갈림길에서의 선택, 마음이 편해졌죠

중학교 때 윤준 대표는 육상 선수였다. 그래서인지 희한하게 몸을 쓰는 일임에도 농장 일을 하다가 다친 일이 없었다며, 그 기초체력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다른 또래처럼 진로를 고민하느라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우연찮게 마주친 고등학교 친구가 한국농수산대학을 추천했지만 생명공학 쪽으로 관심을 두고 있을 때라 한국농수산대학에 마음을 크게 두지 않았다. 그때는 하얀 가운을 입고 일하고 싶었다고 한다.

막상 원서를 내야 할 즈음 윤 대표의 눈은 한국농수산대학 브로슈어에 머물렀고 마음도 점점 한국농수산대학으로 기울었다. 부모님이 사과농장을 경영하시던 것도 진로 결정에 한몫을 했다. 원서 제출 후 마음이 한결 편했고,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농부의 다양한 유형, 쉼표가 있는 삶

윤 대표가 생각하는 여유로운 삶은 일하고 싶을 때 일을 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휴식이 있는 삶'이다. 그래서 지금의 일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천성과 농업을 잘 조합했다고 봐 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저는 쉬기 위해서 일합니다. 일에 치이고 싶지 않아요"

어찌 보면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는 쉽지 않은 발언이다. 윤 대표는 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때 왠지 장난기가 발동해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한마디 거들었다. 윤 대표는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했지만 곧이어 할 일은 해 놓고 노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오히려 천천히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여러모로 능률이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번에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 오히려 실수를 많이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애정을 쏟는 만큼 마음이 움직인다

쉼이 있는 풍경을 즐기는 덕분에 얻는 여유인지 몰라도 윤 대표는 농작물에 대한 자부심도 빼놓지 않았다. 애착을 갖고 농작물을 기르기 때문인지 윤 대표가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는 수확할 때라고 한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붉은 사과를 수확할 때는 마치 루비를 손안에 넣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가 묘사하는 농장의 풍경이 마치 클림트의 <사과나무>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근사하게 느껴졌다. 대도시 직장인이 꿈꾸기 어려운 일상임이 틀림없었다. 일에 치여 수확작물에 대해 무덤덤한 사람들도 많지만, 윤 대표는 분명 수확한 제품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갖고 있었다.

현재 윤 대표가 경영하는 '이른아침사과농장'은 사과농장 외에 6차 산업을 겨냥한 체험농장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매년 10월 초부터 중순까지 운영되는 체험농장에서는 감홍이라는 사과 품종을 재배한다. 12만 원을 지불하면 30kg 기준으로 감홍 한 그루를 직접 재배해 볼 수 있다. 체험용으로 보통 150그루에서 200그루 정도의 감홍이 재배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가족 단위로도 체험농장에 많이 방문한다. 사과의 품질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별도의 홍보 없이도 저절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또한 다양한 품종을 재배한다는 점과 사과 가공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점은 다른 농장과 차별화되는 장점이다. 그리고 모양이 고르지 못한 사과는 알뜰하게 사과즙 가공으로 쓰인다. 주위 농가들이 생산한 사과도 사과즙으로 가공해 주기도 한다. 가공이 필요한 업체는 일손 덜어서 좋고, 윤 대표는 부가적인 수입원을 얻을 수 있으니 좋다.

농장경영을 하다보면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장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잡초 관리예요. 많으면 1년에 10~12번 정도 풀을 베는데, 여름에만 6~10번을 베죠. 풀이 자라는 속도가 야속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미리 일을 끝내고 노는 성격이라 묵묵하게 합니다. 놀기 위해서는 일해야죠. 크게 불만은 없어요"

품질 좋은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확할 때까지 계속 열매를 솎아 줘야 한다. 그렇게 솎아 낸 사과는 가차 없이 버린다고. 내심 낙과가 아깝다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공들여 키운 사과를 솎아 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불편할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사과농장, 하지만 뜻밖의 사고들

농가들은 설비 업체 사고로 인한 문제가 잦은 편이다. 윤 대표 또한 농업기술센터가 주최해 진행한 입찰에서 사과즙 기계를 입찰받았지만 낮은 입찰가격 때문인지 적지 않은 문제를 떠안게 됐다. 그 기계는 3년째 창고에서 쉬고 있다.

기계는 들어온 첫날부터 정상적으로 가동이 안 됐다. A/S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결국엔 전에 쓰다가 창고로 옮겨 두었던 기계를 다시 가져와서 재가동을 했다. 그러느라 기계를 3개월밖에 돌리지 못했다. 원래는 6개월을 돌려야 하는데 말이다. 3개월 치를 손해 본 것이다.

우발적인 사고가 어디 그뿐일까. 낙과와 우박, 탄저의 피해도 있었다. 탄저에 걸리면 과실에 갈색 병변이 생기는데, 이렇게 되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아예 없어진다. 잎이 떨어지는 병에도 걸려 복구하는 것에만 3년이 걸렸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있다고 해서 사건 사고가 없었을까요? 다 인내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쩌면 저한테 스스로 휴식을 주고 있는지 몰라요. 다 길게 농업을 하기 위한 마음가짐이죠. 그런 넉넉한 시간이 제겐 긍정의 계단을 쌓아 주고 있습니다"

일반 현황

나만의 성공노트

① 성공 노하우: 직거래 위주로 추석 대목에 사과가 거의 다 판매됩니다. 모양은 그다지 예쁜 편은 아니에요. 주문이 매년 들어오는 이유는 맛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 생각해요. 현재 농장에서 재배하는 사과 중에 감홍이라는 품종이 있는데, 다른 품종과 꽃가루가 섞여 교접이 돼 더 달고 깊은 맛이 납니다. 다른 농장에서 재배한 같은 품종보다 현저하게 맛이 좋아요. 제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주문하시고 드셔 보신 분들이 하신 말씀이니 신뢰하셔도 괜찮습니다.

② 미래 계획: 평생 일할 생각은 없어요. 한 쉰 정도까지만 일하고 싶어요. 그전에 기반을 마련해 두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습니다. 자식이 한다고 하면 물려줄 생각이지만, 아니라면 임대를 할 계획입니다. 물론 그전에 농장을 더 확장하고 가꿔야겠죠. 핵가족이 대세가 되면서 대량보다는 소량으로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포장에 신경을 쓸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③ 경험자 조언: 사과농장을 운영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아 두시면 좋을 겁니다. 여름에 한창 덥고 가물 때 물 관리를 잘해 주면 다음 해에 과실을 잘 맺을 수 있습니다. 올해 그럭저럭 수확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다음 해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사실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청년농업인, 그것이 알고 싶다! Q&A

Q. 다른 작물을 재배할 생각은 없는지?
A. 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오미자에도 관심이 있다. 재배할 때 그나마 손이 좀 덜 가는 것이 오미자다. 그런데 수확할 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면 손실에 대한 고민도 해 봐야 한다. 무조건 일을 안 하겠다는 심산은 아니고 투자 대비 수익성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다른 작물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지만, 현재는 사과농장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부가 수익을 고려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최근엔 사과를 말리는 건조과일 기계를 농장에 들일지 말지 부모님과 상의 중이다. 재고를 남기지 않고 모두 소진하는 것이 현재는 가장 이상적인 운영 방향이라 생각한다.

Q. 자신만의 재배 비법이 있다면?
A. 전정(가지치기)은 농가마다 방법이 다르다. 농장주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만드는 것이고 원하는 수형(가지 사이로 빛이 잘 통하게 하는 일)이 농장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3년 뒤에 첫 수확을 할 수 있는데, 어디에서 열매가 맺힐지를 예측하는 일이 바로 수형이다. 우리 농장에서 선호하는 방식이 있는데, 품질이 잘 나오는 것을 보면 지금의 방식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Q. 방제 작업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A. 친환경이나 무농약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시판되고 있는 방제 제품은 인증된 것을 정량으로 잘 사용하면 오히려 무농약보다 훨씬 낫다. 농약이 사람의 건강을 해치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이다. 그만큼 약의 성능도 좋아졌다. 물론 우리 농장에서 약을 많이 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증 제도를 통해 제작된 농약에 대해서는 믿을 만하다고 보고 무농약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인터뷰는 문화뉴스와 내일날씨가 공동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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