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네 번, 금메달 수확하는 농부

아이원 정찬주 대표

정찬주 대표. 그는 전국구 농부다. 팔꿈치에도 땀띠가 날 것 같은 후끈한 날씨 덕분에 시원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지만, 전국에서 전화요금을 가장 많이 내는 농사꾼이 바로 정찬주 대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전화기는 쉴 틈 없이 바삐 울어 댔다. 설비 업체부터 관련 업종의 선후배들이 그와 통화하길 원했다.

"곧 만나요.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해야죠" 통화를 마무리할 땐 언제나 이렇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일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하며 훈훈한 안부를 주고받고 싶은 사람, '정(情)의 사나이' 정찬주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매사마골(買死馬骨), 먼저 사람을 귀하게 여기다

정 대표는 벼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터전을 승계받았지만 새로운 표고버섯 농사에도 사활을 걸었다. 시흥의 숨 가쁜 도심지를 빠져나가면 넓은 녹지와 신속에서 정 대표의 새로운 터전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최근 경기도 시흥시에 ‘아이원’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표고버섯 사업을 시작했다.

성과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자동화 시스템 도입이나 재배사를 입맛에 맞도록 설계하며 나름의 시행착오를 극복했다. 한국농수산대학 3회 졸업생 정 대표의 특별한 성공비결은 타고난 근성도 있었지만, 바로 '사람'이었다.

하나라도 더 퍼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 대표 주변에는 사업 파트너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첫 번째도 사람, 두 번째도 사람이라 대답했다. 그의 성공비결은 인간관계론에서 출발했다.

바위를 깨면, 흙의 철학 읽을 수 있다

고2 겨울 정 대표는 요추 척추증 진단을 받았다. 예상 외로 갑작스레 키가 커 버렸던 게 이유였다. 하지만 마라톤 선수였던 정 대표는 올림픽 금메달을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운동을 했고, 진로를 결정해야 할 고3 때도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굳건했다. 그해 겨울 정 대표는 한양대 사회체육학과와 한국농수산대학 식량작물학과에 동시에 합격했다.

"당시 한국농수산대학은 인지도가 너무 낮았어요. 친구들에게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농업을 이으려면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하라고 하셨고 결국 정 대표는 설득됐다. 요추 척추증 진단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저에게는 금메달이 품질 좋은 쌀이며, 매해 금메달을 얻고 있습니다. 표고버섯은 1년에 4번 수확하고 있으니, 한 해에 획득할 수 있는 금메달이 4개나 더 늘어났네요"

"지금은 부모님의 말씀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농수산대학에 가지 않았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였죠. 지금 저는 전화 한 통이면 모든 분야의 농업 종사자들과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농수산대학의 장점입니다. 한국농수산대학의 첫 번째 장점은 기술력, 두 번째는 인맥입니다"

"전공은 수도작입니다. 서산에 33ha 정도 쌀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시흥에는 자리 잡은 버섯 종사자들이 많아요. 대부분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한 지인들입니다. 그 덕에 저 역시 버섯 재배의 베테랑이 됐죠" 정 대표가 말을 끝냈을 때의 표정은 무척 편안해 보였다. 감사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환경이 절반이라면, 노력도 절반

"누구보다 부모님께 인정받으려 노력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시는 부모님보다 늘 1시간 먼저 일어났고 퇴근 또한 부모님보다 1시간 늦게 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업을 승계해 주셨습니다. 이제 부모님은 농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셨고 여가를 오붓하게 보내고 계세요. 오랜 시간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자식의 도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쁜 현장에서도 인터뷰 내내 챙겨 주는 마음 씀씀이에 정 대표가 인맥이 넓은 이유를 쉽게 발견하고도 남았다. 정 대표는 사람에게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며 흙의 성실함을 자연스레 터득했다. 그 가치는 흙의 환경과 매 순간 노력하는 태도였다.

"일에 있어 제가 가진 기본 철학은 '다 같이 잘 살고 사람들과 소통하자'입니다. 새롭게 습득하는 정보가 있다면 지인들과 모두 공유합니다. 제 목표는 언제나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금메달의 가치 역시 저에겐 최고의 의미였고요.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된 이후엔 세계 최고를 목표로 삼을 예정입니다"

기존의 표고버섯 온실은 2층 구조다. 새로 증축한 그의 표고버섯 온실은 기존 한국 온실과 달리 이례적으로 설계됐다. 표고버섯 재배 시스템으로는 처음 시도되는 방식으로 토지와 시설 대비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 설계다. 두 동에서 재배할 양이 온실 한 동으로 가능하다. 기존 2층 구조에서 어려웠던 표고버섯 재배의 시행착오를 충분히 보완했다. 환경이 절반이라면, 역시 기존 환경의 한계를 노력과 아이디어로 풀어낸 셈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닌 이면(裏面)

"농업에 종사하면서 아예 실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2017년도엔 자연재해로 적잖은 피해를 봤어요. 몇 달간 가물어 벼가 모두 말라 타 버렸죠" 7월에 재이앙을 했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수확량이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재해보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농사를 시작한 이래 16년 만에 가장 실패한 한 해라 조금은 위축됐다. 간척지 특성상 가뭄에 대처하기 어려웠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수로 정비와 저수지에서 물을 공급받아 재발을 막을 수 있게 된 상태다.

"그때가 가장 무기력했어요. 하지만 위기는 언제든지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방향에 더 중요한 자세라 생각합니다"

현재 정 대표는 동문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성공한 몇몇 선배가 힘을 합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학교 덕분에 자리를 잡았으니 당연히 후배양성을 위해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에 성공한 졸업생들이 힘을 합쳤고, 혜택을 받는 후배들이 제법 있습니다. 현재는 현장 교수 직책도 맡고 있어 실습생들에게 도움 될 만한 지식을 전수 중입니다"

정 대표와 같은 생각을 공유한 농업인들이 많다면,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는 맑은 하늘처럼 쾌청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반 현황

나만의 성공노트
① 성공 노하우: 뜻 맞는 이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면 농업에서는 절반은 성공했다 표현해도 무방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신뢰를 얻는다면,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써 가족을 건사하신 부모님의 성실함 또한 제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미래 계획: 프랜차이즈형 작물 재배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농사에 경험이 없는 누구라도 시스템 기반인 인큐베이팅 방식으로 사업을 끌어갈 수 있는 모델도 기획하고 있어요. 표고버섯 브랜드화도 사업의 밑그림에 포함돼 있습니다.

③ 경험자 조언: 한국농수산대학은 농군사관학교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수업이 많지만 그만큼 배울 것도 많습니다. 저는 재학할 때 짬을 내 동기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며 우정과 체력을 쌓았습니다. 앞으로 농사일을 할 사람이라면 체력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수업에도 충실했어요. 실습현장은 될 수 있으면 규모가 큰 곳으로 갈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잘 정립된 시스템을 제대로 배울 기회는 그다지 흔치 않습니다.

청년농업인, 그것이 알고 싶다! Q&A

Q. 농업에 종사하며 인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은?
A. 일단은 본인 사업에 투자되는 모든 항목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주변 지인 중 전문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의 유대관계를 권장하고 싶다.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얻은 노하우의 절반은 주변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에 대해 식견이 있는 지인, 설비 증축 시 좋은 견적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 설비가 5억 원이라면 견적이 크게는 5,000만 원 이상 차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Q. 졸업생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A. 어떤 사업이건 간에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초기부터 큰 자금을 대출받아 시작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사업체계를 사례로 삼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 토지는 규모상 큰 농기구가 필요치 않다. 농기구 구매를 최소화하고 그 자금으로 토지를 매입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과한 대출로 인해 정작 농사에 쏟을 에너지를 소진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신이 나 일을 해야 하는데 걱정거리가 있으면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확장보다는 내실을 먼저 다져 뜻 맞는 이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조력자들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Q. 농업인의 자세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A. 사람을 잃으면 농업에는 희망이 없다. 한국인은 함께 먹고 함께 일하며 함께 기뻐하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땅이 지금껏 사람에게 베풀었던 것을 생각하면 농업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더 고민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농업은 사람을 먹이는 행위이며 사람으로 성장하는 사업이다. 그만큼 사람이 기본이 되는 사업이 농업이라 생각한다.

이 인터뷰는 문화뉴스와 내일날씨가 공동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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