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포도, 지식 나눠 마을 전체를 살리다

호산나포도원 김준규 대표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단지길, 포도 재배사가 마을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마을이 포도 특화 지역임을 한눈에 알수 있었다. 지역의 환경이 포도에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김준규대표의 농장으로 향했다.

김 대표의 아버지가 집과 연결된 재배사에서 나와 인사를 친절히 건넸다. 다른 하우스에서 농사를 짓던 큰 키의 김 대표가 멀리서 다정한 얼굴로 나타났다. 얼굴엔 땀방울이 가득했다. 인터뷰하게 된 피곤함보다는 오히려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안도의 표정이 묻어났다. 허투루 작물을 키워 내지 않는 성실함 또한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눔의 미학, 마을의 가옥엔 생기가 돌았다

김 대표를 설명하기 위해선 김 대표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지금 이 동네는 대부분 포도 재배를 업으로 삼고 있다.

아버지는 결혼 후 경산에 정착해 포도 하우스 재배를 시작했다. 경산에 처음 하우스 포도를 도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을 사람들은 하우스 재배를 하는 외지인을 외면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공을 하니 하나둘 포도 하우스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외면당하셨음에도 포도 재배에 대한 지식을 아끼지 않고 이웃들 에게 알려 주셨다.

처음엔 오해도 많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포도 농사를 전파했다. 경산 포도의 유명세는 아버지가 일군 것과 다름없었다. 마을이 하우스 포도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마을엔 하우스 포도농장이 많았고, 멋들어지게 지어진 가옥에는 부촌의 느낌이 가득했다. 어느 정도 여유 자금을 보유한 마을의 풍경이었다.

아버지 마음의 포도밭, 아직은 넓다

그렇기에 김 대표의 부담은 더 크다. 아버지께서 일궈 놓으신 사업에 대해 더 잘했으면 잘해야지 못하게 되면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의 무게감이 너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담은 부담에 지나지 않고, 도움이 되는 부분도 크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돕던 터라 어느 정도 농사일에 맞는 체질적인 근성이 생겼다. 이렇다 할 직업의식이 생기기 훨씬 이전인 유년 시절부터 포도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포도 하우스는 김 대표에게 푸근한 놀이터였다.

20대 초반엔 한국농수산대학이 아닌 다른 농대를 진학했다. 졸업 후 농업회사를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한국농수산대학에 재입학했다. 타 농대에서는 실제 경험이 될 만한 것보다는 이론만을 배웠고 자부심이라고 할 만한 것도 특별하게 없었다. 그러나 한국농수산대학에서는 이론과 실습이 조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해 실질적인 농사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가족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부모님과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아직 이렇다 할 지식으로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기에, 묵묵히 배우고 인내한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해야 아들이 더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부모님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신다. 김 대표에게 농사는 천직이기보다 삶을 사는 일에 가까운 것이다.

아직은 농장 모두를 승계 받은 것이 아니다. 직접 경영으로 얻은 수익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다. 고정급보다는 인센티브를 받는 기분이라고 할까. 김 대표는 "부모님께서 다 이루신 부분이고 아직은 내 성과라고 할 만한 게 특별히 없어서 아쉽지만, 앞으로 기본을 다지면 충분히 나만의 장점으로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나름의 포부를 전했다.

씨 없는 포도, 찾는 이에게 모든 정보 공유

김 대표의 아버지는 한동안 '한국 포도회' 소속으로 일하셨고, 협회의 부회장을 지내기도 하면서 쌓아 둔 지식을 아낌없이 공유하셨다. 협회에 씨 없는 포도 재배 문의가 들어오면 약품 사용법을 아버지에게 문의하게끔 사시사철 채널을 열어 두고 있다.

지베린, 풀메트 등의 약품을 사용하면 씨 없는 작물을 키울 수 있는데, 처음에는 얼마큼 약을 쳐야 하는지 정확한 매뉴얼이 없었다. 일본에서 연구한 내용은 있었지만 한국에 적용한 사례가 없었다. 현재는 아버지가 약품 사용법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셔서 그 지식이 국내에서도 많이 적용되고 있다.

"정보에 대해 너무 많이 알려 주셔서 자식 된 입장에서는 섭섭한 면도 아예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품종의 보편화'는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참으로 멋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환경의 위협, 생태계에 맞도록 적응

온종일 일하는 것은 하우스 내 열기와의 싸움 같다. 어느 정도 적당히 온도가 돼야 과일이 익고 당도가 올라가니 냉방시스템을 설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김 대표는 "온도와의 싸움이 가장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노력으로 적응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이제는 제법 즐기면서 일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도 점점 더워지고 있다. 현재 김 대표에게 들이닥친 위기 중 가장 힘든 것은 날씨다. "처음 아버지가 경산에 자리 잡으실 때는 지금과 기온이 달랐어요. 기온이 점점 올라가고 있어 감온하지 않으면 당도가 떨어집니다. 숙기에는 일교차가 커야 당도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낮에 덥고 밤에 추워야 하는데 열대야로 인해 현재 재배하는 품목인 거봉(30%)과 청포도(70%)도 감온 작업을 해 주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10년 전만 해도 거봉은 경상남도 고성군이 가장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강원도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다. 기온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큰 일교차가 당도를 높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대표도 지역적 특색과 온난화에 대응해 재배작물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김 대표는 10년 후 즈음이면 거봉의 당도가 더 떨어질 것 같아 청포도 위주로 재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김 대표는 변화하는 환경과 생태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품종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농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고 있다. 김 대표는 "젊은 농사꾼인 만큼 앞으로도 농업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그런 김 대표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농업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일반 현황

나만의 성공노트

① 성공 노하우: 현재는 납품할 판로가 안정적입니다. 거봉은 롯데백화점에, 청포도는 썸머힐이라는 회사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삐앙코는 썸머힐을 통해 파리바게트로 납품하고 있어요. 직거래는 현재 5% 정도인데 거의 지인 소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 한 매출에 큰 변동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단골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 줄 때면 손이 더 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담이 있지만 보람도 느낍니다.

② 미래 계획: 소비자 판매를 높이는 게 아무래도 마진율에서 이득입니다. 백화점 수수료도 모두 소비자의 부담이니, 좋은 품질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이 백화점에서 구매한 후에 직접 거래를 위해 농장으로 바로 연락해 주는 경우들도 종종 있습니다.

③ 경험자 조언: 재학 시절엔 많이 놀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이지만 농업에 종사하다 보면 자기 시간을 갖기가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한국농수산대학은 20대에 가는 것보다는 나이가 들어 입학해도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국외로 실습을 가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국외 실습은 국내 실습현장과는 달리 문화를 많이 배우고 오더라고요. 동기 중 한 명은 국외 농장에서 포도주 만들기나 기타 가공품에 대한 제작 과정에도 많이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대화를 해 보면 식견이 현저하게 다르더군요.

청년농업인, 그것이 알고 싶다! Q&A

Q. 농사 외에 다른 업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A. 물론 다른 일을 해 볼 생각도 했다. 식당일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업으로 삼았다면 농사보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래서 현재에 만족한다. 아직은 농업에 집중하고 차후 10년 뒤에는 유통 쪽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Q. 한국농수산대학과의 인연은?
A.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한국농수산대학 2기 때부터 아버지가 실습학생을 받으셨다. 그때 그 까마득한 선배님을 담당하셨던 교수님께 한국농수산대학에 대해 들었다. 어린 마음에 한국농수산대학 이미지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함께 진로에 대한 이야기 끝에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했고 그 교수님과도 재회했다.

Q. 한국농수산대학 수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A. 아무래도 실습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한 해 농사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실습 중에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중냉풍 방식이다. 투자비용이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차후에 직접 농장을 운영하게 되면 충분히 고려해 볼 예정이다.

Q. 농업의 미래가 어떨 것 같은지?
A. 길게 봐야 할 것 같다. 4H 등 일각에서는 무조건 농업의 미래가 밝다고 하지만, 수입 농산물과 싸워야 한다. 10년 전 가격이나 지금 가격이나 변동이 없다. 직거래의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수입 농산물로 인한 가격 변동을 소비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시중에 풀린 수입 농산물 가격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수요를 줄인다. 그나마 우리 농장은 10년 전부터 좋은 가격을 받았기에 타격이 적은 편이지만, 다른 농가의 경우 버티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국가 정책이 그만큼 뒤따라와 줘야 농가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인터뷰는 문화뉴스와 내일날씨가 공동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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