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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정윤하 칼럼] 텐가에서 바나나몰까지① 韓·日 성인용품의 출발선
  • 정윤하 칼럼
  • 승인 2018.10.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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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반기,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 중인 ‘텐가 스피너’ <사진 제공=바나나몰>

[문화뉴스] 전 세계 누적 판매량 5500만개. 유럽, 아메리카, 동아시아부터 동남아시아까지 텐가가 진출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공식적으로만 수십 개국에 달한다. 2005년 회사 설립 후 초고속 성장을 달성한 일본 성인용품 업계의 상징적 기업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성인용품 기업 바나나몰. 바나나몰은 일부 부분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물건을 들여와 판매하는 쇼핑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남녀 모두의 성인용품 합법화가 2014년에 와서야 이뤄졌다. 성인용품 생산은 어려웠다. 판매에 중점을 둔 경영 전략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장사. 이익을 얻으려고 물건을 사서 하는 일. 성인용품 시장에서, 포괄적 범위로 성인 문화 전반을 두고 봤을 때, 이쪽은 보통의 비즈니스와는 다른 냄새를 풍긴다. 고로 재료도 다르고, 조리하는 법도 다르다.

한국과 일본을 흔히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고 표현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국가이면서도 생활 양식이나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생각과 철학도 다르다. 사회가 받아들였던 성(性)에 대한 기준과 자세도 마찬가지였다.

바나나몰과 텐가, 한일 양국을 대표하고 있는 성인용품 기업의 탄생과 역사를 짧은 칼럼 연재를 통해 자세히 다루긴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과 철학, 지금을 살아가는 현재와 미래를 간략히 엿보며 성인용품과 성문화 시장 그리고 문화의 흐름에 대해 고찰해볼 순 있으리라.

성인용품 매장에 진열돼있는 텐가 코너, 국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사진 제공=바나나몰 청담점>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됐고, 힘이 생겼다

일본 성인용품 시장은 195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성문화와 성인용품 문화란 공안 경찰의 압력을 받는 시장이었다. 주로 어두운 뒷골목에 자리 잡아 미제 포르노 잡지, 구형 진동기, 보조기구 그리고 어둠의 경로를 통해 들여온 약품 등이 판매됐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있었다. 일본은 이 도쿄 올림픽을 기점 삼아 세계의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한다. 이때부터 일본 성인용품 문화 산업 역시 조금씩 변화를 맞는다. 대중의 수요와 문화의 흐름을 강제할 수 없으니 적절한 규제 속에서 꽃을 피우게 했다. 본격적인 출발점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누드 사진집 등의 유행이 퍼졌다. 급속도로 빠른 경제 성장기를 맞은 일본에게 있어 영화, 문학, 예능, 음악, 애니메이션 등에서 섹스는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자유를 표현하는 소재 중 하나였다. 이렇게 일본 문화의 르네상스가 열렸다.

1993년 도쿄 시부야에 열린 ‘큐리우스’는 일본 대중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여성은 자위를 하지 않는다” 혹은 “여성은 자위를 하면 안 된다”는 세간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일이었다. 이는 일본 성문화와 성인용품 문화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초반 불어온 여성의 권리에 대한 외침, 특히 “여자도 성적 쾌락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개념이 유행했다. 이는 억압된 삶을 살던 일본 여성들에게 어필했다. 지지 받았다. 텔레비전부터 일본을 주름 잡는 유명 패션 잡지와 주간지 등에도 다뤄졌다.

자연스러웠다. 이후 성문화를 옥죄던 일본 비디오 윤리 협회가 소프트 온 디멘드(SOD, SOFT ON DEMAND)에 의해 무너졌다. SOD는 본격적인 현재 형태의 일본 AV 시대를 열었다. 유통망의 혁명을 가져온 DMM도 시작됐다. 그리고 텐가가 나와 성인용품 시장의 전국시대를 끝냈다.

현재 일본은 성문화와 성인용품 시장만으로도 세계를 상대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일본 현지는 이를 現 정권의 ‘쿨 제팬’ 정책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한다. 세계의 성문화는 개방될 수 밖에 없고, 이미 차근차근 준비한 일본의 자산은 힘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바나나몰과 텐가는 韓•日 양국을 대표하는 성인용품 기업이다 <사진 제공=바나나몰>

어렵게 울린 출발의 공, 하지만 갈 길이 먼 도착점

보따리 장수가 많았다. 007 가방 하나 들고 휴게소나 고속도로를 배회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랬다. 1990년대까지의 일이다. 국가가 성인 문화에 갖는 이미지나 정책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언론은 포화를 쏟아냈다. 예나 지금이나 주적이었다.

광복 후 6·25가 있었고 이후엔 기나긴 군사 독재 시절이 있었다. 제5공화국 시절 3S 정책에 의해 섹스가 부각됐으나, 이는 자유를 상징하는 문화적 흐름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성문화는 기본적으로 음지였다. 숨겨야만 했다. 옳지 않았다.

1996년, 미세스터라는 용품점이 생겼다. 울산과 서울 신촌 등 세를 확장했다. 하지만 언론과 공무원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미풍양속을 위반하고 문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미세스터를 가져온 백이기획의 대표가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국내 성인용품 기업 바나나몰은 1999년 시작됐다. 마찬가지였다. 성인용품은 눈총 받고 있었고 수요는 있으나 공급이 없는 기이한 상황이 계속됐다. 다수의 대중이 성인용품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지만 풍기문란을 이유로 허용되지 않았다.

바나나몰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여성용에 이어 남성용 성인용품이 공식적으로 합법화된 것이 2014년, 불과 몇 년 전이다. 해외에서 열리는 성 박람회나 성교육 관련 세미나 개최도 힘들었다. 바나나몰을 비롯한 많은 업자들이 법과 싸워 기어이 불법 판례를 깼다.

당시 판시는 이랬다. “성적 흥분이나 만족을 위해 성기를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음란물이라 단정할 수 없다. 개인이 이런 기구를 구매해 활용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행복추구권 측면에서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개개인의 자발적인 성인용품 사용, 성적인 표현 등에 제3자의 인물이 도리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며 모든 이를 죄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몇몇 대중의 사회적 강제가 일부 깨지는 순간이었다.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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