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장난감에 열광하는가?

[문화뉴스] 얼마 전 외국사이트를 통해 평소 갖고 싶던 피규를 하나 샀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 갖고 있지만 조금 더 좋은 사양의 것을 하나 더 샀다. 주문 후 배송까지 약 10여 일 동안 나는 마치 어린이날이라도 기다리는 마냥 들떠 있었고, 그렇게 도착한 상품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이미 집안 곳곳의 선반에 하나 두 개씩 자리 잡은 내 취미생활의 산물들로 인해 마땅한 자리를 잡지 못하다 먼저 들어온 것과 같은 선반의 4층과 1층에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친구가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

4층의 친구가 연두색이 약간 더 진하고 이음새 부분의 마감이 고르지 못하며 버튼을 눌렀을 때 사용되는 문장이 12개로 새로 이사 온 청년보다 3문장을 덜 말하고 날개에서 빛도 나지 않지만, 그리고 헬멧도 손수 벗겨 주어야 하는지만 둘 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 옆에는 같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또 다른 청년이 어색한 웃음을 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 3D 애니메이션이 나온 지 수년이 지났다. 이후 2편과 3편까지 모두 극장에서 관람했을 정도로 나는 굉장한 팬이다.

위에 말한 두 청년 역시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버저'이고 다른 한 청년이 '오디'다. 살아 움직이고 말하는 장난감이 주는 꿈같은 이야기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역시 한 번쯤 상상해봤을 것이다. 뒤늦게 애니메이션 평론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서 토이 스토리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 지난날의 꿈과 동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다.

내가 어린 시절 지금처럼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 등이 풍족하지 않아 찾아보기 힘든 시절 장난감과 인형은 최고의 장난감이 되어주었고 방학 기간에 집에서 쓴 그림일기들을 보면 대부분 집에 있는 장난감과 인형들이 마치 주인공인 듯 자주 등장했다. 물론 내가 유치원 즈음의 나이에 어머니께서 동네에서 최초이며 최고로 좋은 게임기를 사 오셨었지만, 어린 나이에 조작법이 어렵기도 했고 작은 텔레비전 평면의 브라운관 속에서 펼쳐지는 디지털이미지들의 움직임은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 손으로 하나하나 움직여줘야 하고 말도 대신 해줘야하는 소심한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나와 함께 놀아주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푸슝~ 푸슝~ 슈우우우으~ 꽈~ 퍽퍽~ 야야~~

입으로 온갖 효과음을 만들어 내고 방바닥도 벽도 마음껏 달리고 날개는 없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적을 물리치는 내 장난감들이야말로 내가 만들어낸 나의 영웅이면서 내 오랜 친구들이었다. 

자, 다시 21세기(?)로 돌아오자.
이런 필자처럼 어린이와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뜻하는 '키덜트’(Kid+Adult·아이와 어른의 합성어)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난감에 열광하는 '철없는 어른'쯤으로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의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키덜트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동기에 자기 나름의 문화를 구축했던 이들이 어른이 된 뒤 다시 그때의 문화를 소비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키덜트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이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는 왜 장난감에 열광하는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어릴 적 당신과 함께했던 그 친구를 다시 곁에 둬보라고. 소소한 행복이 입가에서 매일 피어날 것이다. 

# 덧. 
단언컨대 이보다 건전한 취미가 어디 있을까 싶다. 
또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땐 현재 구입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 수도 있으니 오히려 돈을 번 느낌까지 가져다줄 수 있다.

[글] 아띠에터 김민식 artietor@mhns.co.kr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30살 유부남이자 소싯적 한 춤(!)한 이력의 소유자. 홍대역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디자이너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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