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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문화공감] 영화 속 여성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영화계 성 불평등을 말하다영화계의 미래, 남성중심주의에서 탈피할 수 있나
  • 김래현 기자
  • 승인 2018.07.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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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문화공감] 박스오피스에 여성 주연 영화들이 순위에 올랐다.

지난 2일 네이버 한국 박스오피스 순위에 따르면, 박훈정 감독의 ‘마녀’는 개봉과 동시에 12만 1980명을 동원해 2위로 출발한 뒤 2일 기준 일간 29만 6795명이 관람했다.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도 일간 3만 4224명이 관람해 4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13일 개봉한 영화 ‘오션스 8’도 3만 2479명이 관람해 5위에 올랐다.

박스오피스 1, 4, 5위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차지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세 영화는 성 평등 지표라 할 수 있는 ‘벡델테스트(Bechdel Test)’를 통과했다. 이런 사실은 영화계에 새로운 발자취로 남을 것이라 예상된다. 최근 몇 년 간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상업영화 중에서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작품 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이번 문화뉴스 문화공감 시간에는 영화계의 성 평등 실태, 주류 상업영화 속 여성 묘사,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인 벡델테스트와 함께 성 평등을 위한 각계 각층의 노력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7월 2일 기준 네이버 박스오피스 순위에 오른 여성 주연 영화 '마녀', '허스토리', '오션스8' [네이버 영화]



■ 벡델테스트란?
벡델테스트란 영화에서 성 평등이 얼마나 이루어져 있는지, 여성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묘사되는지를 판별한다는 취지의 테스트다.

미국 만화가 엘리스 벡델이 1985년 연재한 만화에서 비롯된 이 테스트가 물론 ‘성 평등한 영화인지’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라 할 수는 없다. 벡델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영화의 내용이 성평등을 지향한다고 볼수만은 없으며, 반대로 벡델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성차별을 부추기는 영화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해외 비평가들은 영화의 성 평등을 평가하는 데 이 테스트를 사용되고 있다.

벡델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최소 요건 3가지는 다음과 같다.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소 2명 포함할 것 ▲여성 캐릭터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

이 세 가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이는 조건이다. 조건을 충족한 대표적인 유명 영화로는 ‘겨울 왕국’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눈의 여왕 ‘엘사’와 엘사의 동생 ‘안나’가 등장하는데, 주요 줄거리는 ‘엘사의 트라우마 극복’과 ‘자매 관계의 회복’이다. 때문에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둘의 대화 주제는 주로 ‘가족애’다.

미국 만화가 엘리스 벡델이 1985년에 연재한 만화의 한 부분



■ 벡델테스트의 조건을 충족시킨 한국 영화들
그렇다면 국내에서 흥행한 한국 영화 중,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얼마나 될까? 지난 2017년 관객 수에 따른 한국 상업영화 1위부터 25위까지 25개의 영화를 살펴보자.

이 영화들 중에서 테스트 조건을 충족시킨 작품은 ‘군함도’, ‘아이 캔 스피크’, ‘특별시민’, ‘장산범’, ‘악녀’ 총 5편으로,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세 가지 중에서 두 가지 조건만을 충족한 작품(연두색 표시)은 ‘공조’, ‘재심’, ‘강철비’ 3편에 그쳤으며, 한 가지 조건만을 통과하거나 조건을 전혀 통과하지 못한 작품은 17편이었다.

특히 top10에 오른 영화 중 여성 캐릭터가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가 유일했다.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영화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는 것은, 한국 상업영화 속에서 여성이 단역으로 배제되거나 남성의 서사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7년 관객 수에 따른 한국 상업영화 1위부터 25위까지 25편의 영화 [네이버 영화]



■ 영화계에서 커져가는 ‘성 평등’의 목소리들
영화계의 성 평등에 대한 관심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5월 19일 막을 내린 칸 국제영화제는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힐 만큼 규모가 큰 행사로, 영화제 기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프랑스로 집중된다. 여러 영화제에서는 스타들의 레드 카펫 패션도 화제가 되곤 하는데, 올해 칸 레드 카펫에서는 배우들이 ‘성 평등’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던져 주목을 받았다.

12일 메인 상영관인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여성 배우들 82명이 팔짱을 낀 채 레드 카펫을 밟았다. ‘82:1688’이라는, 지난 71년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여성 감독과 남성 감독의 수를 상징한 것이다. 이 여성 배우들은 “우리는 카메라 앞뒤에서 남자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하게 해주는 세상을 원한다”면서 현저히 낮은 여성 참여도를 비판하기 위해 함께 레드 카펫에 섰다.

영화 ‘트와일라잇’에 출연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갑자기 블랙 하이힐을 벗고 극장에 올랐다. 이는 보수적인 드레스코드에 대한 항의 퍼포먼스였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남자 배우에게 하이힐을 신으라고 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도(그걸) 강요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

스튜어트의 발언은 지난 2015년 칸에서 벌어졌던 ‘힐 게이트’ 논란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영화 ‘캐롤’의 갈라 시사회에서, 굽이 낮은 신발을 신은 여성들은 입장을 거부당했다. 드레스코드를 어겼다는 게 입장 거부의 이유였다. 물론 여배우들은 이 사건에 강하게 반발했으며, 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이듬해 맨발로 레드 카펫에 등장하기도 했다.

2017년 관객 수에 따른 한국 상업영화 1위부터 10위까지 10편의 영화 중 여성 주연 영화는 '아이 캔 스피크'가 유일하다. [네이버 영화]



■ 영화계 성 평등을 위한 세계 여성들의 노력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7일까지, 신촌 메가박스에서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진행됐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시각으로 삶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고, 일부 경쟁부문을 도입한 비경쟁 국제영화제다.

올해 여성영화제에서는 36개국 147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아울러 부대행사로 ‘필름 페미니즘의 새로운 도전’과 ‘영화산업 성 평등을 위한 정책과 전략들’을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열고, ‘#미투, #위드 유’ 등을 주제로 다양한 쟁점 토크를 개최했다.

호주의 경우, 2014년 호주 박스오피스에 오른 250개 영화 중 여성이 감독한 영화는 8%에 불과했으며, 호주 국립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 제작, 연출을 전공한 졸업생 중 남성이 52%, 여성이 48%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 현장에선 감독의 성별 비중이 남성 10명 여성 1명에 그치는 등 영화산업의 성 불평등 문제가 부각됐다. 이후 실태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성 평등 실현을 위한 5가지 계획(Five point plan)을 발표했다.

지난 5월 12일 칸 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인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82인의 여성 영화인이 낮은 여성 참여도를 비판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벌였다 [AFP]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 동안 열린 국제 컨퍼런스 ‘영화산업 성 평등을 위한 정책과 전략들’에서 BFI 영국영화기금 사례를 직접 발표한 리찌 프랭키 이사는 “작년 가을, BFI 영화 기금 지침에 커다란 변화를 발표했다”면서 그 내용을 공개했다.

‘지원받는 영화 제작자가 50대 50의 성별 균형을 이뤄야 하며, 지원받는 이의 20%가 영국의 흑인 혹은 아시아인 및 인종적 소수이도록, 지원받는 이의 9%가 LGBTQ로 정체화한 사람이도록, 지원받는 이의 7%가 장애인이도록 한다’

프랭키 이사는 올해 4월부터 이 지침이 공식적으로 실시됐으며,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한 후 2020년 BFI의 전략 리뷰에서 보고될 것이라 밝혔다.

2016년부터 문제제기와 폭로가 이어졌던 영화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는 2017년부터 영화 발전 기금 지원 사업 대상자에 대해 제작 참여자 전원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수강하고, 성범죄 예방 관리 감독을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서약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고 있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 대상자는 성범죄로 벌금형 이상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실이 없음을 확인하는 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며, 추후 그런 사실이 확인될 경우 지원 사업 대상에서 취소될 수 있게끔 개편됐다.

영국은 여성들이 참정권을 획득한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긴 역사 동안 영국 여성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그런 수많은 결과들 중 하나가 영국 BFI 영화 기금 정책의 변화일 것이다.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에서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진행됐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홈페이지]



■ 성 평등한 영화계의 미래를 위해
“날 위해서도, 너희를 위해서도 아니야. 미래에 우리 같은 범죄자가 되고 싶어 하는 여자애들을 위해서 하는 거야”

영화 ‘오션스 8’ 속 데비 오션의 대사다. 아마 여성 영화인을 꿈꾸는 소녀들을 위해, 이 영화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 대사는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대다수의 영화는 대체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영화 속에 미처 반영되지 못한 현실도 분명 있다. ‘영화계 성 평등’이라는 화두 역시 그런, 영화가 놓쳐왔던 현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영화가 놓쳐왔던 현실이, 영화 속에 반영될 수 있기를. 남성중심주의에서 탈피한 ‘성 평등한 영화계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김래현 기자 | heg@gomh.kr

    문화뉴스 인턴기자 입니다.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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