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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데스크칼럼] 포스트 아이돌의 본보기 '토니안'

[문화뉴스 MHN 이우람 기자] 1996년 가을, 뭇 소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단지'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었다.

소녀들은 '단지'가 되고 싶어 했고 때로는 질투를 불태웠다. '단지'로 개명하겠다고 나서는 소녀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단지'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단지'가 유명해졌던 건 모두가 사랑하는 한 소년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첫 앨범의 후속곡 무대에서 '단지 널 사랑해'라고 외치던 소년, '레전드 아이돌' H.O.T.의 멤버 토니안 이야기다.

90년대 말을 살았던 이들 중 H.O.T.가 K-POP의 시초로서 얼마나 대단한 족적을 남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콘서트를 하는 날이면 전국 학교에 조퇴 금지령이 떨어졌고, 지하철이 2시간 연장 운행되기도 했다. '한류'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낸 것도 그들이었다.


H.O.T.의 전성기를 함께하지 못한 세대라도 지난 2월 25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토토가 3'에서 콘서트 관람 신청에 17만 명이 몰리는 모습을 보고 그 영향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했을 법하다.

아이돌 그룹이 한 팀으로서 유지되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7년 안팎이다.

H.O.T.로 대표되는 1세대 아이돌의 경우 조금 더 짧은 5년 남짓이었다. H.O.T. 역시 2000년 발매한 5집 'Outside Castle'을 끝으로 활동을 마감했고 멤버들은 흩어졌다. 역설적이게도 멤버들 개개인의 삶은 그 이후로 더 주목을 받게 됐다. '팀'에서 개인으로 돌아온 아이돌이 어떻게 홀로서기를 해나가는지, 뚜렷한 본보기가 없었던 까닭이다.

H.O.T.가 흩어진 지 17년이 지난 지금, 토니안의 행보는 '아이돌 이후'의 삶에 훌륭한 본보기가 될 법하다.

[문화뉴스 MHN 이우람 기자] 토니안은 솔로가수에서부터 후배를 양성하는 기획자,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어 왔다. 가수로서는 두 장의 정규앨범을 포함하여 스페셜 앨범 등 솔로앨범만 8장을 냈고, 기획자로서는 클릭비 출신의 에반과 보이그룹 스매쉬, '비트펠라(비트박스+아카펠라)'를 표방한 걸그룹 어썸베이비를 제작하기도 했다.

사업가로서의 수완도 대단하여 27세에 불과했던 지난 2004년 교복브랜드 '스쿨룩스'를 론칭, 4대 교복 브랜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교복을 입었을 때라도 '핏'을 중요시하는 청소년의 니즈를 공략한 점이 주효했다. '분식의 고급화와 세계화'를 표방한 요식 프랜차이즈 스쿨스토어의 성공도 빼놓을 수 없다.

토니안이 '포스트 아이돌의 본보기'로서 회자되는 것이 성공적인 행보 덕분만은 아니다.

'신비주의'를 내세운 아이돌의 옷을 벗고 한 인간으로서 대중에게 다가온 점이 컸다. 5인조였던 'H.O.T.'에서 3인조인 'JTL'을 거쳐 온전히 홀로 서는 과정에서 그는 외로웠고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솔로로서 화려한 성공 뒤에 항우울제를 달고 살며 자신도 모르게 자해까지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가, 군 입대 후 동료들과 함께하며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으로 일상을 되찾은 스토리는 대중에게 감동과 위안으로 다가간다.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안승호'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한 모습이 호감을 샀음은 물론이다.

'단지'를 사랑한다고 외치던 소년은 2018년 현재 한때의 라이벌(김재덕)과 절친이 되어 알콩달콩 동거 중이다. 또 '미운우리새끼'에서 확인한 역대급 입담을 지닌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토니안이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함없으리라 여겨진다. 그가 전설로 남을 아이돌인 동시에 대중에게 사랑받는 방송인이라는 사실이다.

pd@mhnew.com·본지 편집장

    이우람 | pd@munhw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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