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30 에단 코엔, 조엘 코엔 감독의 '헤일, 시저!'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영화리뷰 웹진 '무빗무빗'의 에디터.

[문화뉴스] 늘 설레는 장면이 있다. 철길과 기차가 등장하는 장면. 기차역이 등장하는 장면. 빈 교실을 카메라가 부유하는 장면 등. 그중에서 가장 정겨운 장면은 영화관의 객석을 비추는 장면이다. 그 장면엔 스크린이 있고, 영사기의 빛이 있으며, 몰입한 관객이 있다. 그리고 영화가 있다.

'시네마 천국'이 늘 좋은 이유, 그리고 '휴고'를 또 찾아보게 되는 이유는 '영화'에 대해 말하고, 그에 대한 애정을 양껏 담고 있기 때문일 테다. 벚꽃이 흩날리는 4월, 영화관에도 봄이 왔다. 영화의 봄날, 과거의 영화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 상영 중이다.

1950년대 이후의 영화사를 훑어보는 연작, '영화사 겉핥기' 중 첫 번째 글이다. 개인적인 감상이 많이 묻은 글이기에 주의하고 있지만, 그래도 과한 애정이 담길 것만 같다. 우선,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를 통해 고전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엿볼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트럼보'에서 보인 매카시즘을 통해 정치와 영화에 대해 말해 볼 예정이며, 마지막으로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곱씹으며 그 유명한 '누벨바그'를 살짝 언급할 것이다. 예비 씨네필의 영화사를 향한 관심, 동경, 그리고 애정을 이제 풀어놓아 볼까 한다.
 

   
 

영화 관람의 불확실성
세상엔 수없이 많은 영화가 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모든 영화를 다 관람할 시간도 없고, 비용도 부담된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한다. 최근 상영작을 보러 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더 까다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매주 개봉하는 신작이 모두 명작일 리는 없을 테니까. 돈과 시간이 소모되기에, 가장 큰 만족을 얻기 위한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제목, 감독, 극본, 배우, 원작, 평점 등 관객에겐 저마다의 척도가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처지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제작자조차도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다. 제작비는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다. (물론, 작품성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블록버스터가 항상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수도 없이 목격했다. 불확실성. 영화를 자본과 산업으로 편입시킨 이들에게 이 문제는 늘 딜레마였다. 그래서 영화 산업을 주도했던 할리우드에서는 이 리스크를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해결하려 했었다.
 

   
 

스튜디오 시스템 - 포디즘
스튜디오 시스템이란 공장에서 분업을 통해 상품을 만들 듯, '표준화된' 공정과정으로 찍어내듯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촬영, 편집 등의 각 분야에 맞는 전문가들이 일을 분담해 안정성과 효율성을 추구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유명한 장면처럼 철저한 분업에 의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포드 자동차 공장의 공정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포디즘이 영화 제작에 도입된 것이다." ('영화와 사회' 영화와 스타 중)
 

'헤일, 시저!'에서도 촬영, 편집,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가 각자 분주히, 그리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고전기의 제작환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주인공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는 이 시스템의 관리자다. 감독과는 다르다. 그는 촬영장 밖에서 제작 관련 사항을 선택하고, 모든 이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배우, 감독은 물론 편집실에 가서 권한을 행사한다.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과 시스템을 조율하는 프로듀서. 영화가 완성되는 데 있어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이라는 자본의 시스템 내에서 누구의 입김이 더 강할 수 있는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인 일이기도 하며, 영화계도 갑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튜디오 시스템 - 장르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제작비 절감의 효과가 있지만, 여전히 흥행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 미지수를 예측하기 위해 스튜디오가 생각해낸 것이 장르와 스타 시스템이다. 이 두 요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줬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장르가 있다. 할리우드 고전기엔 서부극이 있었고,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로 대표되는 SF를 거쳐 지금은 '마블'의 영웅 서사물이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80년대는 에로물(정책과 관련되기에 조금 독특한 지점에 있는 장르다) 혹은 홍콩 누아르, 90년대엔 멜로가 있었고, 2000년대 초엔 조폭 관련 코미디 영화 시리즈로 개봉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통으로 느끼는 정서가 있다. 시대가 조장하는 정치/사회의 환경에 살기에 교집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집합은 어떤 촉매를 만나 폭발하고, 표출된다. 아나바다운동, 금 모으기 운동, 촛불 집회 등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표출되는 계기가 있다.

대표적인 대중문화인 영화도 촉매가 된다. 영화관은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지점이 되어주거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웃음이 해방구가 되어줄 수 있다. 시대의 정서가 영화 선택의 기준이 되고, 대중의 선택이 취향, 트랜드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본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이들은 대중의 정서를 '장르'로 재생산한다. 장르는 제작에 있어 안정성의 추구라는 명목이 된다. 동시에 대중의 정서를 자본으로 환원하는 다른 여과기이기도 하다. 산업 구조가 정서를 이끄는 것인지, 대중의 정서가 산업의 방향을 정하는 것인지는 쉽게 정리하기 어렵다. 대중의 영웅에 대한 선망이 '마블'의 영웅 영화 트랜드를 만든 것일까. 마블의 거대한 비전이 영웅들의 범세계적 인기를 주도한 것일까.
 

   
 

스튜디오 시스템 - 스타
송강호, 하정우, 전도연, 김혜수…. 출연하면, 기대하게 되는 배우가 있다. 어떤 장르인지, 어떤 이야기인지 생각하기 전에 많은 관객이 먼저 인식하는 것은 스타 배우의 출연 여부다. '흥행 보증 수표'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스타는 티켓 파워를 의미하고는 한다. 이처럼 지금 익숙한 '스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었다. MGM, 워너브라더스, 20세기 폭스 등의 거대 제작사는 스타를 보유하고, 그들을 출연시켜 흥행을 유도했다.

'헤일, 시저!'에는 이 스튜디오의 기둥, '스타'를 중심에 둔 풍자극이다. 돈, 시나리오, 감독도 있지만,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라는 배우가 없기에 영화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스타의 존재감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된 후, 공산주의자들은 매닉스에게 어마어마한 금액을 요구하는데, 매닉스는 순순히 그 거래에 응한다. 큰 고민 없이 응할 수밖에 없는 매닉스의 선택을 통해, 이 영화는 한 명의 스타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헤일, 시저!'는 스타 시스템을 곱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타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모습을 통해 이 시스템을 비꼰다. 그리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익살스러움과 유머가 '헤일, 시저!'의 재미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외설적인 사진을 찍는 여배우가 등장한다. 매닉스는 이 여배우를 데리고 나오는데, 이 장면엔 프로듀서가 스타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하는 방법이 드러난다. 매닉스는 외설적인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없애기 위해 여배우에겐 가명을 말하라 하고, 공식적인 일이 되지 못하게 경찰에게는 돈을 준다. 거짓말과 검은돈으로 스타의 이미지를 지킨 것이다.

베어드 휘트록은 어떤가. 스타 배우인 그는 스크린에서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배역이 가지는 이미지, 아우라와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 속 베어드 휘트록은 여자관계가 복잡한 난봉꾼으로 관계자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납치된 뒤에 보이는 행동은 순진하다 못해, 나사가 하나 빠진 듯했다. 공산주의를 해석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을 보라.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은 어떤가. 그는 서부극에서 액션으로 주목받는 어린 스타다. (그의 배경을 통해 앞서 말한 스튜디오의 '장르'에 대한 선호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대사를 말해본 적 없고, 연기도 전혀 되지 않는다. 그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감독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는 연기를 심각하게 못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는 영화 속 건강한 이미지와 달리 틀니를 착용하고 있다. 환한 미소조차도 결국 틀니라는 거짓 속에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스타 시스템의 유지, 이미지의 보존
이쯤 되면 스타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감이 올 것이다. 이미지. 대중이 '보는' 이미지가 이 시스템에는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코엔 형제가 다양한 스타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함으로써 말하고 싶었던 것도 스타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보라는 것이다. 즉, '헤일, 시저!'는 스타 시스템이 가지는 허구성과 대면하게 한다. 대중에게 사랑받고, 제작사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화려한 스타. 스타의 이미지는 자본을 지켜주는 존재이다.

그리고 자본도 스타를 지켜준다. 디애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을 보자. 주목받는 여배우인 그녀는 싱크로나이즈 영화의 주인공으로 인어를 연기하고 있다.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 덕분에 외적 아름다움이 더 강조되고 있는데, 스타 시스템이 요구했던 이미지를 우리 시대의 섹시 아이콘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배치다. 하지만 그녀는 카메라가 꺼지면 살이 쪄서 옷이 작다는 이야기, 복잡한 남자관계 이야기 등을 꺼내며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이라는 것까지 제작사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녀의 이미지는 보이기 위해 조작되고 통제받고 있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 그녀의 간격은 조셉 실버맨(조나 힐)의 등장으로 극대화된다. 비공식 매니저로 모든 포탄을 맞는 이 남자는 할리우드가 만든 아름다움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보여주는데, 그는 피로한 표정으로 이 시스템을 향해 시니컬한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헤일, 시저!'는 고전기 영화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당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엿 보는 재미를 준다. 광활한 스튜디오 사이를 걷는 매닉스의 모습을 통해 영화산업의 거대한 몸을 보여주고, 다양한 스타를 조명해 이 산업의 속을 비춘다.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양파의 껍질을 까듯 보여준다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 영화는 스크린 앞에서의 얼굴과 스크린 뒤에서의 얼굴을 비교하며 스타의 허상을 풍자하고 있는 영화다. 거기에 스캔들 보도에 목매는 대커 자매(틸다 스윈튼)의 행동까지 보면, 할리우드가 만든 영화 시스템이 언론까지 황색으로 물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던 자들은 스타라는 제조된 이미지에 열광하는 대중을 보며, '대중은 개, 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영화를 향한 애정
배우를 때리고, 감독에게 지시할 수 있는 프로듀서 매닉스. 가장 강력할 것 같았던 그도 투자자 앞에서는 몸을 한껏 낮춘다. 호비 도일이 재앙에 가까운 연기를 해도 써야 한다. 투자자가 원한다면 호비 도일은 의심할 수 없이 가장 적합한 배우이니까. 이런 그에게 영화의 작품성은 고려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그저 영화로 돈을 버는 장사꾼일까. 영화에 대한 애정보다 자본 그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일까. 꼭 그렇지마는 않다. 매닉스는 그 나름의 방식대로 영화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영화 중간에 매닉스가 이직을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많은 보수를 약속하는 원자폭탄 회사 록히드의 제안에 그는 흔들린다. 더 많은 돈, 그리고 밤낮없이 일하지 않아도 되기에 가족과의 시간도 더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영화를 선택한다. 이윤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그였지만, 그는 더 적은 보수를 받고, 더 고된 영화판을 택한다.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 드러나는 장면이 몇 개 있다. 이직 때문에 진행된 미팅 도중 '영화는 가볍다.', '영화판은 문제아들' '서커스 판의 노동자'라는 조롱을 듣고 분노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에게 영화는 상품이지만, 가볍지 않은, 관객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상품이다. 매닉스에겐 수익이 나는 영화, 대중이 많이 보는 영화가 진정 좋은 영화고,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매닉스가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좀 이상하다. 배우를 때리고, 경찰에게 뒷돈을 주는 등의 '진짜' 사죄해야 할 항목들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그가 집착하는 것은 '담배를 피웠다'는 행위다. 할리우드 시스템의 허구를 보고, 진실을 덮는 등 시스템 유지를 위한 그 어떠한 일들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가 담배를 찾는 시기가 영화 제작에 차질이 있는 순간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영화제작 차질→ 담배→사죄. 단순화하자면 그는 영화 제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을 사죄하고 반성한다.
 

   
 

이런 그에게 신은 '영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절대 선이다. 그가 신을 묘사하는 방법 대해 토론하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취하는 태도를 보면, 그의 신에 대한 관점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신이 어떻게 묘사되든 관심이 없다. 그저 상영 중에 논란이 없게 표현되기를 바랄 뿐이고, 논란 없이 많은 관객에게 영화를 상영하기를 바랄 뿐이다.

'헤일, 시저!'를 보며 따뜻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영화의 성장기를 본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혹은 고전기 영화에 품었던 막연한 동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일까. 매닉스라는 현실주의자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영화 그 자체를 아끼고 있었기에, 영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기에 이 영화는 봄날처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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