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7일 오후 대학로 CJ아지트에서 CJ문화재단의 스테이지업 공간지원사업 당선작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이 프레스콜을 열었다.

오는 29일까지 공연될 극단 비밀기지(구 종이인간)의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은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가명을 쓰던 시기에 쓴 단편소설로, 악재가 끊이지 않던 다자이의 비참하고 참담한 심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발표 당시 '구로키 슌페이'라는 가명을 쓰면서까지 세상에 알려지기를 숨기려고 했으나 편집자에 의해 뒤늦게 공개됐고 한국에서는 최초로 극단 비밀기지에서 각색된 연극으로 무대에 올린다.

 

이 연극은 여름방학을 맞이한 한 남자가 삼촌이 말한 온천지로 여행을 떠나, 그 여행지에서 어느 신인 작가를 사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단순한 범죄물이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실격', '사양', '만년'과 마찬가지로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작가 스스로 가장 숨기고 싶어 하고, 가장 부끄러워하는 이야기를 한다.

신진호가 연출을, 고찬하가 각색을 맡았고, 남자 역에 박철웅, 유키 역에 조수연, 영혼1 역에 박상윤, 영혼2 역에 홍성민, 야쿠자 역에 김현호, 여종업원 역에 조혜안, 서지영, 민유리가 출연한다.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은 짙은 일본색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기모노와 다다미로 대표되는 일본의 분위기나 배우들의 억양, '~데스' 등을 이용해 일본어스러운 언어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에 대해 신진호 연출은 "이전 쇼케이스 때는 소설 텍스트를 묘사하다보니 일본 색채가 너무 적어보였다. 장난스럽다기보다는 일본어의 언어감을 입힘으로 인해서 일본 색채가 강해지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홍성민 배우도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헀을 때는 지금처럼 기모노를 입은 게 아니었다. 당시 작품은 한국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서 새롭게 연습하는 과정에서 일본적인 색채를 가미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출 색깔이 연극성을 강조해서 사실적이길 기피했기 때문에 기모노 의상 등에도 고민이 있었지만 일본 색을 넣어서 '다자이 오사무'를 관객들이 더 잘 느끼길 바랬다"고 이야기했다.

▲ 고찬하 작가

어째서 일본색이고 어째서 다자이 오사무일까.

각색을 맡은 고찬하 작가는 "연출님께 제안을 받고 작품을 알게 됐다"고 밝히며 "사실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20살 때 읽은 '인간실격'도 제겐 불호였고 불편했다. 그래서 더 많이 고민했다. 왜 이 작품을 해야하고 각색해야 할까? 다자이 오사무의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읽어보니까 이 사람의 코드는 우리나라에게 낯선 '자기혐오'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요즘을 '혐오의 시대'라고 하는데 '자기혐오'라는 코드가 요즘 시기에 맞아떨어져서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자기가 숨기고 싶어하는 걸 텍스트로 쓴다는 건 무척 용기있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처음 보고 내 스스로 도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래 낭떠러지의 착각 초고는 원문 자체가 남자라고 되어있지 않고 다자이 오사무가 자기 자전적인 소설이지만 자기가 아닌 것처럼 썼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작품 텍스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다자이오사무의 색을 드러내는데 노력했다. 그 작가의 이야기가 현대에서 두터운 인기를 자랑하는 작가가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를 드러내게끔 하려 했다"라고 이야기하며 관객들이 다자이 오사무의 색깔을 고스란히 느끼길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행되는 서사나 많은 군무와 음악,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남자'의 심리 상태 등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만이 가진 분위기를 드러낸다.

신진호 연출은 많은 군무와 노래가 담긴 것에 대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아름다운 말이나 자기 자신이 쓸 수 있는 언어로 구현하면 어떨까 했다. 그 포인트가 노래로 표현되며 더 색깔이 지어진 것 같다. 노래로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큰 목표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무대에 직접 오르는 배우들은 어떤 느낌으로 연기하고 있을까.

박상윤 배우는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 춤, 노래, 움직임이 많이 들어갔다. 작가님, 연출님 말처럼 혐오의 시대, 자기혐오에 대한 이야기, 그 속에 담긴 인간 본질적인 욕망과 갈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 생각은 연극은 '축제'라는 것이다. 그런 면을 우울하지 않고 축제처럼 평화롭게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채로운 느낌으로 '남자'를 연기해낸 박철웅 배우는 "연극으로 풀었지만, 다양한 요소가 많이 들어간다.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일본의 색채감, 배우의 몸짓과 목소리 등을 통해 너무 무겁지 않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한 것 같다"고 배우들의 춤과 노래 등이 부족한 대중성을 채울 것이라고 밝혔다.

▲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홍성민, 박철웅, 조수연, 박상윤, 김현호, 조혜안, 서지영, 신진호 연출, 배우 민유리

'유키' 역을 연기한 조수연 배우는 "아무래도 여자 배우들이 좀 더 일본식의 언어나 안무, 노래를 많이 사용했다. 그 안에서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어떻게 진심을 표현할지 고민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런 색을 공부하면서 역할 연구에서도 더 도움을 얻은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이 된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홍성민 배우는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희 팀 자체가 어떤 유행보단 저희의 목표나 탐구점을 가지고 극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맞지 않는다면 조금 서운할 수 있지만 젊은 팀 답게 열심히 공부하며 부딪히고 있다"며 젊은 극단인만큼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달라고 전했다.

끝으로 신진호 연출은 "감사히 CJ문화재단에 지원사업에 선정돼 공연 중이지만 여기서 공연 올리는 3주의 계기를 통해 더 나은 작품이 되길 바란다. 차세대 창작시스템을 발판으로 이 작품을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저희를 길게 지켜봐주셨으면 한다"고 극단 비밀기지의 미래를 봐달라고 이야기했다.

 

고찬하 작가는 "저희가 신생극단이다보니 실험을 많이 하려 한다. 극단 자체가 현대 사실주의적 논리에 있는 '연극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사조보단 '우리의 현실 자체가 연극을 닮아있다'는 데 모토를 두고 실험하고 있다. 그래서 매 공연을 하면서도 재밌는 게 있다면 더하면서 실험해볼 수도 있다. 완성된 작품을 만들었다기보단 피드백을 통해 계속 변화를 주려한다. 각색한 대본이 그대로 올라가길 바라지도 않아서 많이 내용을 바꿨다. 마지막에 나오는 시도 배우들에게 맡겼다. 그런 식으로 여러 실험을 계속 시도하기에 조언과 애정어린 시선 부탁드린다"며 관객들의 사랑을 당부했다.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은 젊은 극단의 신선한 감각과 '다자이 오사무'가 가진 그만의 형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분위기가 어울려 새로운 느낌을 전했다. 다만 단편소설을 각색한 만큼 내용에 비해 다소 긴 러닝타임은 '옥에 티'에 가깝다. 오는 29일까지 대학로 CJ아지트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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