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마이너'의 시사점

[문화뉴스] 무엇이 '마이너'인가. 무엇을 '마이너'라 할 것인가.

웹툰은 '마이너'다. 웹툰의 장르적 특성 중 하나는, 그 자체로 '마이너'라는 점이다. 만화 매체라는 점에서는 이전의 출판 만화가 연장된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상 웹툰은 서사 위주의 출판 만화와는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다.

웹툰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골방환상곡', '트라우마' 등의 작품들은 어디까지나 '일상툰'이었다. 그 시절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네이버의 간판 웹툰 '마음의 소리' 또한 "메인스트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출판 만화와 비교했을 때 웹툰이 명백하게 '마이너'의 영역에 속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잉태기를 지나왔다고 할 수 있을 매체, 웹툰. 그 웹툰 시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변화는 장르적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웹툰은 더 이상 일상툰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드라마화에 이어 영화화를 앞둔 네이버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처럼 일상적인 서사를 다루기도 하고, 네이버 웹툰 월요일 1위를 몇 년째 지키고 있는 '신의 탑'과 같이 판타지의 서사를 다루기도 한다. '송곳', '이끼'처럼 현실을 고발하고, 공감을 끌어내기도 한다.

재작년 이른바 "오피스 판타지"로 화제를 몰았던 '미생'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제 웹툰은 현실과 소통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출판 만화의 쇠퇴 이후 전적으로 소설과 영화 등의 몫이 되었던 서사의 문제는, 다시 만화에 할당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웹툰에서 나타나는 '마이너'의 부상은 뜻밖에 이러한 사정에서 비롯된다. 웹툰이라는 매체에 무엇이 허락될 수 있는가. 일상툰으로 시작됐던 웹툰 초기의 사정에서 허락됐던 것이 대개 일상툰이었다고 한다면, 현재 일상툰은 웹툰의 한 장르로써만 분류될 뿐이다. 일상툰이 여전히 위력적인 장르라는 사실과 별개로, 웹툰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웹툰 속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은 여전히 '마이너' 매체다.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마이너" 매체, 웹툰. 그 양가적인 특성은 '마이너' 장르를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다. 말하기를 허락받은 웹툰은, 웹툰이라서 허락되는 장르의 서사를 물 위로 등장시켰다. 앞으로 '마이너'가 웹툰 시장 전반의 양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마이너'로부터 깨트려지고 있는 경계들은 '메이저'가 취할 서사의 양식으로써도 유효해질 것이므로.

웹툰이라서 등장할 수 있었던 '마이너'의 서사.그 몇 편을 소개해본다.

▶ '다이어터'를 그렸던 손, '나쁜 상사'를 그렸던 손

   
▲ 다이어터 ⓒ네온비, 카라멜

다음 웹툰 '다이어터'는 독특한 작품이다. 2006년 개봉했던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표상됐던 바처럼, 창작 매체에서 다이어트라는 소재가 등장했던 양상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신분의 상승을 꾀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다이어터'는 이러한 "살을 빼고 예뻐져서 사랑을 성취하는 신화"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다이어터'의 주인공 신수지에게는 로맨스의 서사도 존재하지만, 핵심은 "건강한 개인" 신수지가 성립되기 위한 여정에 있었다.

그 '다이어터'의 작가 네온비가 창립 첫해의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했던 작품, '나쁜 상사'는 여러모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작가 네온비의 네임 밸류뿐만 아니라, '그' 네온비가 그리는 '성인' 만화라는 두 가지 모두가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결과는 1년 동안 2억8천만 원의 수입을 올린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대성공"이었다.

'나쁜 상사'의 성공은 성인물을 주역으로 내세운 레진코믹스에 순조로운 출발을 안겼다. 처음부터 '나쁜 상사'의 성공이 점쳐졌던 건 아니다. 사실,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한 경력이 있는 유명 작가와 성인물의 조합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낳았다. 성인물은 현재에도 그러하듯 철저히 하위 영역에 속한 장르였고, 하나의 장르라는 인식보다는 불법적인 '도색 잡지'의 기억이 더 선명한 형편이었다.

   
▲ 나쁜상사 ⓒ레진코믹스

따라서 '나쁜 상사'의 성공은 단순히 성인물이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작가 네온비는 '다이어터'에서 기존의 구조를 전복시켰듯, '성인물'에 서사를 넣는다. 주인공 승규는 직장에서 신입사원으로 우연히 재회하게 된 옛 친구 민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승규는 민에게 복수하기 위해, 민이 짝사랑하는 여성 영조를 가로채기로 결심한다.

주인공 승규의 복수극은 평탄하지 않게 전개된다.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지점들이 배치되고, "사랑으로" 풀릴 것처럼 보였던 갈등은 그 밟고 지나온 균열들 때문에 붕괴된다. '나쁜 상사'의 가장 큰 장점은 거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재밌다"는 사실이었다. 성인물의 본분에도 충실했던 것은 물론이다.

'다이어터'를 그렸던 '나쁜 상사'의 작가 네온비는 성인물은 성인물일 뿐이라는 편견을 깨고, "성인물이 재밌을 수 있다"는 문장을 증명했다. 성인물이 단지 선정적이기만 한 게 아닌, 서사의 한 요소로써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성인물은 앞으로도 꾸준히 소비되겠지만, "장르"로 인지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성인물이 한 갈래의 '마이너'로써 자리 잡게 된다면, 그것은 '나쁜 상사'가 제시한 "재밌는" 성인물의 길을 따랐을 때가 아닐까.

▶ '남성'을 빼고서 개화한 '여우들'의 로맨스

여우처럼 생긴 세 여자가 있다. 이들의 로맨스는 때로는 질척하고 때로는 풋풋하다. 수민을 둘러싸고 있는 세주와 성지 두 사람, 그 각각의 관계는 과거의 연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전환점으로써의 현재가 되기도 한다. 이 예쁘고 위태로운 로맨스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눈길을 끈다. 그들의 로맨스는 꽃처럼 개화해있다. 레진코믹스 백합 장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What Does the Fox Say?'의 저력은 그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함에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의 로맨스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철저하게 남성이 배제된다는 사실이다. 이들 각자는 매력적인 여성들로서, 작중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로부터 호감을 얻는다. 특히 성지의 경우에는 성지에게 연정을 품은 남자 상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보편적인" 양상은 여지를 남기지 않고 "처리"된다. 남자 상사가 성지에게 가졌던 마음은 성지로부터 단번에 거절되거나, 성지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거치며 싱겁게 끝맺어진다.

   
▲ 'What Does the Fox Say?' ⓒ 레진코믹스

'What Does the Fox Say?'의 장르는 '백합'이다. 여성 간의 사랑을 판타지적인 로맨스의 양식을 통해 다루는 '백합'은, 상업적 요소로써 곧잘 삽입되곤 했던 'BL'과는 달리 단지 하나의 기믹 차원으로도 잘 다루어지지 않았었다. 이러한 장르에 속해 있는 'What Does the Fox Say?'가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 다음의 규모를 자랑하는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마이너'의 도약을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간혹 등장하더라도 부차적인 요소로만 끼워 넣어지거나, 이성애 요소를 포함했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What Does the Fox Say?'에서 나타나는 '백합'은 그 '백합'만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남성의 존재는 가볍게 탈락시키고, 모든 로맨스는 온전한 여성들만의 것으로 남는다. 말하자면, "여자들의 로맨스를 보여주기에도 바쁘다"는 식이다.

그 고집스럽기까지 한 확고함. 그것이 'What Does the Fox Say?'가 보여주는 '백합'의 서사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우는, 여우들은 어떻게 "울 것인지", 앞으로의 전개 역시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 웹툰, 조금 더 들여다보기

한때(?) 웹툰에 빠져 살던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가 레진코믹스의 웹툰들을 추천한다. '마이너'의 토양이 마련한 다양성으로 장르적 한계가 허물어진 바 있는 웹툰. 그 안에는 어떤 다채로운 작품들이 있을까. 앞으로 소개될 작품들은 순수하게 '재미'를 기준으로 선정됐다. 따라서 공통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집합되지 않는 면이 있지만, 그저 편하게 둘러봐주기를 부탁한다.

   
▲ 레바툰 ⓒ레진코믹스

레바툰: '레바툰'은 슬그머니 숨기고 싶은 "솔직한" 이야기를 다룬다. 군 복무 시절 영창에 갈 뻔한 사연, 탈모 등 진짜 '일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귀여운 그림체와는 달리 과격한 묘사와 언어 사용이 잦지만, 특히나 남자라면 공감할 만한 소재들이 주를 이룬다. '레바툰'의 레바 캐릭터는 웹툰 데뷔 이전에도 각종 짤, 이모티콘으로 인터넷 상에서 널리 쓰인 바 있다. 이른바 "대중적인"(?) 마이너 되시겠다. 레바 캐릭터는 메신저에서도 정식 이모티콘, 캐릭터 상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 징벌소녀 ⓒ레진코믹스

징벌소녀: 현실로 귀결될 만한 어떠한 요소도 없을 것 같은 판타지, 마법소녀물. 미소녀 마법전사들에게 한 인격으로서의 고뇌가 부여된다면? 리얼리즘 히어로의 연장 선상에서, '징벌소녀'를 만나본다. '마법소녀'가 예쁘고 착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징벌소녀'는 차라리 악당에 가까워 보이는 마법소녀들에 의해 동생을 잃은 주인공의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 가볍고 단순하게 빠지기 쉬운 장르적 특성과 달리, 인간 본연의 뒤틀린 감정에 천착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볼 만하다.

   
▲ D.P 개의 날 ⓒ레진코믹스

D.P 개의 날: "이것은 내가 탈영병을 쫓는 이야기인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을, 형제를, 연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상은 'D.P 개의 날'에 나오는 문장이다. D.P는 탈영병을 찾아내는 헌병 부대 이름의 약칭으로, 작품은 탈영병을 쫓는 헌병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작품의 핵심을 설명하는 문구라고 할 수 있겠다. 예능 '진짜 사나이'가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이때, 현실 속에서 누군가의 아들을, 형제를, 연인을 찾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뒤따라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 단지 ⓒ레진코믹스

단지: 지독히도 현실적이라 불편하다. 불편해야 정상이다. 우리가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고어영화를 불편해하지 않는 이유는 판타지이기 때문이고, '단지'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현실 속에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단지들을 위한 만화. 단지의 다른 이름은 '여자'다.

   
▲ 내 멋대로 고민상담 ⓒ레진코믹스

내멋대로 고민상담: 김보통 작가의 삶의 해학과 따듯한 격려가 담긴 만화. 심리상담의 특성상 작가 본인으로서도 소모가 컸던 탓에 연재가 중단된 작품이지만, 언제 보더라도 그 따스함은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문화뉴스 김미례 기자 prune05@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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