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청와대 앞을 오가며 '조용한 피켓 시위'

▲ 청와대 인근 효자동에서 피켓 시위에 나선 서흥초 선수/학부모 일동. 이렇게라도 해서 누군가의 눈에 띄면 야구를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소망이 있기에 인천에서 서울까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지난 2월 28일 오전. 전날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의 전화를 받은 이후 찾은 인천 서흥초등학교 야구부는 그야말로 활기찼다. 이만수 감독이 온다는 이야기에 졸업생 일부도 훈련에 참가하여 후배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에 앞서 야구부 해체 관련 뉴스가 보도되었지만, 여기가 정말로 해체를 앞둔 야구부가 있는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어찌되었건 간에 야구부 해체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낀 탓이었다. 학교 운영위원회에서는 이미 찬성 9명, 반대 1명으로 야구부 해체를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운영위원회장과 부회장이 제외되어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발견됐다. 이에 교육청에서도 감사에 돌입했지만, 감사가 막바지인 상황에서 교육청 역시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뜻을 밝힐 것이 유력시된다. 이에 야구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피켓 시위에 나섰다. 이제는 야구부와 학교의 문제를 포함하여 야구 선수 학부모와 비선수 학부모간의 감정 싸움으로도 번지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구부원들과 학부모들은 청와대 앞 효자동으로 자리를 옮겨 피켓 시위를 펼치는, 다소 가슴 아픈 상황까지 연출됐다.

정말로 야구부가 학습 추구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운동장을 사용하나?

서흥초등학교 야구부와 관련한 각종 보도 가운데, 본지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것이 일반 학생들의 운동장 사용 관련 문제였다. 이는 ①야구부가 운동장을 독식하고 있어 일반 학생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 없으며, ② 연습 중 야구공이 날아오는 등 일반 학생들이 원치 않은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두 가지 논리로 압축할 수 있다. 이는 상당히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① 정규 수업 시간 중에는 야구부가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어 체육 수업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부분, ② 4시 이후에만 운동장을 사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학생들은 방과후 교실이나 학원 수업으로 학교를 빠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일반 학생들이 야구부로 인하여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논리는 적어도 정규 교과 시간에는 사실이 아닌 셈이다.

오후 4시 이전에 야구부가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민원의 실체에 대해서는 서태웅 감독이 직접 입을 열었다. "아니다. 오후 4시 이전에 빈 운동장에서 선수들이 연습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물을 뿌렸던 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마치 연습하는 것처럼 보여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모든 연습은 반드시 4시 이후에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라며, 민원 내용 자체가 야구부 연습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분명하게 하기도 했다. 즉, 운동장 사용이 일반 학생들의 학습 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는 셈이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야구부를 보유한 전국의 초등학교들은 학교 운동장과는 별개로 야구장을 만들어 줘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LNG 야구장 사용을 야구부에서 거부?
그것은 작년 이야기!

▲ 서흥초 야구부의 해체는 지난해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내면, 학교측 의사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 선수들은 그저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사진ⓒ김현희 기자

학교측의 입장이 사실과 다른 부분은 또 있다. "학교 운동장 외에 다른 연습장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안했지만, 야구부에서 거절했다."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서태웅 감독과 학부모 일동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것은 작년 일이다. 학교에서부터 송도 LNG 야구장까지의 거리가 멀다 보니, 그것은 조금 어렵겠다는 입장을 표한 것은 맞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고, 교육청에서도 LNG 야구장 사용 지원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우리도 굳이 학교 야구장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체를 강행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야구부 존속을 위하여 한 걸음 양보를 한 것은 학교측이 아니라 야구부였던 셈이다. 절충안이 마련된 상황에서조차 서흥초 운영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없이) 야구부 해체를 결정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생업을 뒤로 하고 학교와 청와대를 오가는 학부모 역시 또 다른 이름의 피해자인 셈이다. "이번 주 금요일 기자회견이 마지막이다. 그때 학교측 입장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그래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우리도 생업이 있고 또 아이들 문제도 있으니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한 학부모의 이야기에는 씁쓸함마저 묻어나 곁에서 보는 이들이 더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서울에서 선수 일동이 피켓 시위를 펼치는 동안, 2세 출산을 앞둔 서태웅 감독은 병원에서 아내를 간호하며 마음속으로 아이들과 한 몸이 되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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