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서 시작해 이명행 배우 성추행 폭로를 거쳐 발화된 '이윤택 성폭력 사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해자와 새로운 피해자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원로작가이자 이윤택 씨와 함께 손꼽히는 거장 중 하나인 작가 오태석,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 조민기가 의혹을 받고 있다. 권력 구조가 공고한 극단과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최초에는 의혹을 부인하지만,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제보로 인해 상황이 뒤바뀌는 중인 점도 비슷하다.

여기에 연희단거리패 주요 배우 중 하나인 배우 오동식이 내부고발한 '이윤택 연출 공개사과'의 어두운 일면, 그에 따른 '익명'의 제보자였던 홍 모씨의 실명 공개, 오동식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폭로한 또다른 조연출 등.

이야기의 상황은 늘 달랐으나 증언에서 드러난 피해자의 고통은 한결같았다. 그건 바로 '인권 침해'다. 자신의 제자, 자신의 단원을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태도가 밑바닥에 깔린 점이 컸다. 이것을 자연스레 배웠거나, 똑같이 비인간적 처사를 당했지만 동성이기에 성적 피해만은 면한 남성도 분명히 많았을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들의 증언 군데군데에서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진 성폭력은 여성이 왜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인지를 오히려 선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이제 발화점은 점점 커지고 있다. 남성 연극배우 박 모씨 역시 SNS를 통해 2015년 학교 졸업 후 겪었던 '고된 연극계'의 현실을 폭로했다. 페이 미지급과 권력을 이용한 일방적인 명령, 지원금 횡령 등의 내용이었다. 물론 여성 피해자들의 성폭력 폭로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연극계의 부조리에 대한 '미투'다.

최초 폭로로부터 약 10일, 이런 큰 용기들이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부조리를 끊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온전한 피해자만의 고통이 아님을 외치는 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1일을 기점으로 매주 '블랙 타파(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를 통해 연극인들의 회의가 열릴 예정이며, 25일에는 대학로에서 관객 집회가 예정됐다. '언제나 선택받는 입장'이라며 자조하던 배우들도 용기있게 '#미투'와 #'위드유'를 외치고 있다.

현재 대중의 요구는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이들이 그 힘을 제대로 쓰길 바라고 있다. '사과'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낀 이들의 바람은 법조문 개정, 특별법 제정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얽힌 가해자들 모두 '그들의 요구'대로 엄중한 조사를 거쳐 법대로 해결할 일이다. 다만 '깨끗하고 공정한' 법이어야 한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분명한 사실을 '주장'으로 바꿔버리는 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이 상황을 목격 중인 사람들이다. 특히 신중한 건지, 눈치보는 건지 아직도 침묵 중인 주류 남성 연극인들의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이 과정에서 특히 필요한 것은 피해자 보호다. 조민기 배우 성추행을 폭로한 배우 송 모씨는 폭로글 말미에도 지나친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경쟁으로 인한 피로함을 호소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2차, 3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 이번 사태 피해자 중 하나로 '미투'를 선언한 박 모씨는 이런 상황에 분노하며 구체적인 언론사명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등이 이슈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눈을 떴고,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건 여성으로 대변되는 소수자의 부재, 다양성의 부재였다. 관객들은 타는 듯한 갈증으로 이들을 찾았고 원했다.

하지만 찾기는 너무나 힘들었고, 늘 작품에 부재한 여성의 시각은 박수를 보내는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아쉬움을 곱씹게 했다. 그건 우리가 갈증 끝에 마신 물이 바닷물이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실수록 갈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 채 바닷물을 마시는 사이 얼마나 많은 빛나는 가능성을 지닌 이들이 이 판에서 떠나갔을까. 그러는 사이 가해자들의 성이 더욱 더 높아져만 간 것이 아닐까.

연극계 주류, 기득권 인사들의 성의식이 파헤쳐진 이제야 알았다. 이 땅에 왜 여성 서사가 없었는지.

▲ 똑같은 시간을 겪고도 얼마든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사진은 1987년과 1991년을 배경으로 '여성 운동권' 이야기를 재조명한 연극 '더 헬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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