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9일 이윤택 씨의 공개 사과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미투 운동 역시 점차 확대되는 모양새다.

쏟아지는 의혹, 연극계 내 관습처럼 굳어진 성폭력 세상에 알려졌지만 주류들은 철저한 '침묵' 중

현재 연극계, 공연계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표하는 상황이다. 최초 이명행 배우부터 시작된 공연계 내부의 #미투 운동이 이윤택 씨에게로 옮겨간 후, 여러 피해자들의 제보가 이어지며 점차 판이 확대되고 있다.

16세 미성년자 단원(사건 당시)을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진 극단 '번작이' 대표에 대한 폭로도 경남극단협회에서 그를 제명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김보리(가명) 씨가 폭로한 또다른 가해자인 인간문화재 하용부 씨는 '성폭행은 없었다'며 의혹을 부인했으나 지난 19일 평창올림픽 행사에 불참했으며 문화재청에서는 정상적인 전승활동이 어려운 것으로 보고, 사실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전수교육 지원금 지급을 보류한 상황이다. 밀양연극촌도 밀양시의 무료 임대계약 해지 통보와 함께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이렇듯 연희단거리패와 관계된 사건들 외에도 다른 사건들도 점점 공론화 되고 있다.

배우 조민기는 청주대에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이 건을 두고 성추행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루머에 강력 대응할 것'을 밝혀 차후 진실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우리 연극의 시작'으로도 불리는 원로작가인 극단 목화의 오태석 작가 역시 본인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에 대해 20일 오후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입장 정리가 안 됐다'며 돌연 발표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회', '지부' 등을 통해 나오는 대응 외에 발언권을 가진 이른바 주류 연극인들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본지로 온 제보에 따르면 수업 대신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을 참관하게 하거나, 학생들 일부를 밀양연극촌으로 봉사 보내는 등 평소 연희단거리패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모 교수를 비롯해 평소 사회적 발언을 아끼지 않던 많은 주류 연극인들은 공식적인 발언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물론 주류 연극인들의 침묵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피해자를 위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인지, 혹은 또다른 의미가 담긴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명확한 가해자가 존재하는 지금, 또다른 가해자일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블랙리스트 등의 사태에는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왔던 이들이기에 지금의 침묵이 일정 부분 아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피해자 특정 짓기에 열 올리는 언론들, 피해자 검색어 오르자 '미모가 화제?'

한편, 가해자 혹은 공범자, 방관자 등의 의혹을 제기받는 이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더욱 고통받고 있다. 이윤택 연출에 대한 최초 폭로자이자 최근 낙태까지 당했다는 충격적 내용을 제보한 모 배우와 연대해 고소를 진행할 예정임을 밝힌 김수희 연출은 자신의 SNS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겼다.

"기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피해자 찾기를 당장 멈춰주세요.
용기 내서 폭로한 당사자가 당신의 기사 한 줄에, 전화 한 통화에 다시 상처받고 있습니다.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돕고 싶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용기낸 폭로자가 이런 이야기를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팩트 체크를 위한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실시간 검색어' 등으로 대표되는 어뷰징과 언론계 내부의 경쟁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MBC 뉴스데스크에 나와 성추행 사실을 고백한 배우 이승비는 '검색어'가 우선시되는 국내 언론 한계상 대부분의 기사에서 '성추행에 대해 폭로한' 사실보다는 이승비라는 이름 자체가 더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물며 단골처럼 등장하는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는 식으로 '초밀착 운동복', '섹시' 등의 단어와 조합된 기사가 나올 정도다.

19일 이윤택 씨의 공개사과 과정에서도 언론들은 계속해서 '피해자를 아느냐', '피해자를 만나서 사과할 것이냐' 등을 질문하며 대부분 가해자를 만나기 원치않는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토르디스 엘바와 톰 스트레인저가 지은 책 '용서의 나라'를 보면 16년 전의 강간 사건 피해자인 토르디스 엘바가 톰 스트레인저를 만나기까지는 8년간 30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는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들은 끊임 없이 자신들이 용기낸 고백이 구체적 피해 사실과 가해 방법 위주로 거론되며 재생산되는 '참담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김보리(가명)씨 역시 20일 오후 새로운 글을 써내며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저의 글 중 성기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골라 편집하여 기사에 사용하기도 하고 심층적인 취재없이 겉핥기식 짜집기 수준의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된다는 점도 부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언론의 진정성 없는 취재 행태를 꼬집었다.

성폭행만 아니면 'OK'? 권력화된 구조 내에 일상화된 폭력

일부에서는 이 상황을 '권력형 범죄'로 규정하며 '임금 체불' 등의 공연계의 고질적인 문제 때와 똑같은 상황이라며 보고 있다. 주류 인사들의 침묵, 캐스팅을 전제로 한 범죄 형태 등이 동일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의식도 지난 몇 번의 사건을 거치며 성숙해진 모양새다. 이전과 달리 명확히 이런 행위들이 '범죄'임을 지적하고 대응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형 뮤지컬을 도맡아 하던 변희석 음악감독 역시 이전 공연 중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가했던 성희롱적 언어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번 #미투 운동이 아니었다면 큰 관심을 받기 어려웠을 수 있는 사건이었으나 대중의 연대가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과문 역시 기존의 '유체이탈식' 화법이 아닌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발언', '함부로 성적인 농담', '많은 이들이 보는 가운데 부적절한 언행',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행위' 등을 했음을 명시해 어느정도 진정성을 담아냈다. 진짜 진정성은 차후 무대에서의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당장 이명행, 이윤택의 사과문과 비교해도 그러한 차이점이 엿보인다.

물론 이번 성폭력 사태는 단순 권력형 범죄와는 또다른 행태로 봐야겠지만, 그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폐쇄적이고 권력화된 구조에서 일상화된 폭력이 젠더감수성과 결합하며 벌어진 일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이런 일에 대해 동조하거나 자신과 큰 관계 없었기 때문에 방관한 남성들의 반성, 그에 따른 책임의식과 연대가 필요하다.

김성철 배우의 '더불어 여태 웃고 넘겼던 제 자신이 한심하고 죄송스럽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라는 말과 김태형 연출의 '진짜 창피하고 미안하고 가슴 아픕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그간 진짜 편하게 공연해 왔습니다.'라는 말에 공감이 가는 이유기도 하다.

다행히 젊은 공연계 인사들의 적극적인 연대 의사는 희망적이다. 최우리, 최수진, 장은아, 임찬민 등의 여성 배우는 물론 연출가 김태형, 남성 배우인 고훈정, 손유동, 김성철, 이휘종 등 나이와 유명세를 막론하고 저마다 SNS를 통한 #미투에 동참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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