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가 연이은 성추행으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추악한 민낯의 실체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대중들의 분노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본지 역시 풍문으로만 들었던 사안들이 현실이 되는 것에 대해 문화전문매체로 사건을 다루지 못했던 것에 깊은 반성을 표합니다. 본지에서는 지난 날의 'WHAT!'보다, 'WHY?'에 중점을 두고 30년 가까이 배우로 활동한 박리디아 부사장과의 대담을 통해 [공연계 성추행 - 긴급진단] 연재를 진행합니다. 함께 이 슬픔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연재 기간 추가 제보도 받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문화뉴스 MHN 박리디아] 성폭력 피해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too)운동은 2016년 하반기 국내 문단계에 대한 고발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미술계·영화계 등에서 소셜미디어(SNS_를 통한 피해자의 고발이 이어졌지만, 당시 연극계는 잠잠했다. 

2017년에 미투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2018년 1월 국내에서 검찰 조직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의 발언이 기폭제가 된 후로 최근 드디어 연극계의 성폭력 문제도 수면위로 드러났다. 

연극계 성폭력 문제가 오늘처럼 이슈화가 되기 전까지 피해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묵묵히 버텨오고 참아왔을 것이다. 

문화예술계 안에서도 유독 연극계가 성폭력 문제가 뒤늦게 이슈화된 것은 극단 중심의 지배적 계급사회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1988년 19세의 나이로 극단 '민중'에 데뷔를 했다. 그 시절 우리나라 연극계는 철저히 극단을 중심으로 모든 작품이 기획 및 제작되던 체제였다. 

입단한 기수 순서에 따라 극명한 위계질서가 부여되고, 극단의 대표·연출가·선배 등 직급에 따라 행해지는 권력은 공공연하게 묵인되고 인정될 수밖에 없던 체제였다. 극단의 높은 분들의 이야기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엄청난 무게가 실려있었다. 

신인 배우의 입장에서 극단이란 곧 직장이며, 극단이 곧 '내 꿈을 이루는 성지'라는 믿음을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 입단 3개월 차이가 나는 기수 선배면 나이와 상관없이 말을 깍듯하게 높이고, 선배보다 더 고된 일을 맡는 것은 당연했다. 

갓 대학생이 되어 입단한 나는 '화장실 청소', '과음한 선배님들 꿀물 타기'와 같이 집에서도 해보지 않던 새로운 일과 암묵적인 규칙과 관행을 따라오며 어느새 중견 연극인 선배가 되어갔다.

그 사이 아끼는 후배와 제자도 많이 생겼다. 제자들은 교수인 나를 신뢰하는 만큼 내가 추천한 진로를 주저함 없이 묵묵히 갔다. 

나는 제자들이 더 탄탄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제대로 연극을 배울 수 있는 극단을 추천했다. 

그 극단의 이름은 얼마 전 성폭력 문제의 중심이 된 극작·연출가가 소속된 '연희단거리패'이다. 극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내가 가진 많은 의상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0년대~90년대에 걸쳐 연기를 시작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윤택이라는 극작·연출가에 대한 존경심이 깊었다. 

나 또한 이윤택 씨의 소논문을 발표하고 책을 연구하며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공부했던 세대였다.

당시에 나는 연희단거리패가 연극계에서 지향하는 목표나 방법론을 잘 적용하여 좋은 작품과 배우를 배출하는 극단이라는 믿음이 컸다.

연희단거리패를 추천해 입단한 제자를 7년 전 대학로에서 다시 만난 적이 있다.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요새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 제자는 '좋은데…' 라며 말을 흐렸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사실 오늘 공연 끝나고 밀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말이다. 많이 지쳐보였다. 제자의 지친 모습을 보고 당시에는 극단에 들어가 배우가 겪는 힘든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가서 버텨보기를 열심히 격려했던 것 같다. 아침에 눈뜨며 밤에 잠들기까지 연기만 생각하는 게 행복한 것이라며 제자를 달랬다. 제자는 '알겠다'는 명쾌한 대답이 없었다. 

자리를 일어서며 찜찜한 마음에 뒤를 돌아 제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친구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길거리에 가만히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얼핏 '무슨 다른 일이 있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추천했던 극단의 성폭력 사태가 벌어진 지금, 그 때 내 제자가 혹시 어쩌면 나에게 '저 좀 꺼내주세요'라고 손을 내민 게 아니었을까… 불현듯 그때 그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연희단거리패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극작연출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번 사건에 대한 충격은 매우 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연극계의 뿌리깊은 문제에 대해 방조자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책임감과 미안함을 통감한다.

 

그동안 수십 년간 계급화된 구조 속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예술가를 헤아려본다. 

연기는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지로 하는 사람은 연극계에서 얼마 버틸 수 없다. 강제성이 허용되지 않은 영역이며 오로지 자발적인 의지만으로 버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예술 그 자체를 향해 맹목적으로 꿈을 품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돈도 명예도 보장하지 않기에 맹목적이어야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눈먼 치열함으로 연기라는 예술을 택한 많은 이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중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꿈을 지켜줄 것 같은 높은 사람의 말을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강압을 참아온 예술인들도 있다. 

그들은 정신적 고문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꿈을 접고 연극계를 떠나고 인생 자체가 접혀버린 경험을 한 사람들의 삶이 이윤택 감독 한 사람의 사퇴만으로 보상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가 두렵다. 

얼마나 많은 예술인들이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나는 연기를 계속 해야 한다'는 열정으로 혼자서 부조리함과 폭력과 고통을 참아 내면서 왔을지… 

우리는 아직 차마 그 일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고발이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제2의, 제3의 이윤택이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다…(계속) 

[대담] 박리디아·본지 부사장
[정리] 이우람 본지 편집장 

pd@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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