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1일 배우 이명행과 관련돼 시작된 연극인들의 '미투'가 '한국 연극계의 거장'으로 불리던 연출가 이윤택에게 이어졌다.

13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연출이 용기를 내며 시작된 '미투'는 다른 이들의 적극적인 고백, 혹은 반성을 이끌어내며 며칠만에 이윤택에게서 '연출가'와 '작가'라는 칭호를 지우게 만들었다. 연희단거리패는 그가 모든 연극 작업, 예술감독 등의 위치에서 물러났음을 밝혔고 사단법인 한국극작가협회 5대 집행부는 17일부로 이윤택을 제명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연극인 이윤택씨의 상습 성폭행, 성폭력 피의사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촉구합니다.'라는 국민 청원이 등장하는 등 이른바 '이윤택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과연 피해자는 존재하는가 의문이 든다.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는 사과했고, 사과할 예정이지만 '무엇'을 당한 '누구'에게 사과했는지 불분명하다. 또 이미 사과로 끝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성추행, 성폭행 등의 폭로가 여러 차례 이어진만큼 공개사과로 끝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미투'에 응답하는 방식이 아직은 촌스러운 것은 아닌가 싶어지는 상황이다. 대다수 언론들은 현재 '이윤택 성폭력', '이윤택 성추행' 등의 키워드를 달아서 재생산하는데 그치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백에 담긴 진정성 담긴 말에 주목하기보단 '이윤택에게 무엇을 당했는지'를 보도하는데 열심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지워지고 '이윤택'과 '기사'만이 남고 있다.

또 SNS 상에서 이뤄지는 '주류 연극인'들의 변명, 분노, 반성 등을 지켜봐도 아직은 피해자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나는 몰랐다'거나 '나는 그렇지 않다'는 '선언'에 가까운 형국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모든 것을 몰랐을까. 혹은 '관행'이란 이름 하에 벌어지던 부조리한 폭력들 중 성추행만 없었으면 괜찮은 것일까.

이런 부당함은 남의 일일 때는 말하기 무척 쉽지만, 자신의 것이 됐을 때는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성폭력은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굳건한 연대를 보여주고 앞으로 함께 나아갈 길을 고민하며 또 다른 피해자는 없는지, 온전히 연극계에서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라는 이름만 지워지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결코 이번 일이 그를 연극판에서 추방하거나,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드는데에서만 그쳐지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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