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씬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장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우들을 말한다. 이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처럼 주목받는 조연배우들이다. 문화뉴스의 [대한민국 탑 아트스틸러]는 대중적인 주류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큰 인정을 받으며 My way'를 걷고 있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빛내고 있는 소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음악계의 전설'이나 '천재 기타리스트'라는 수식어는 언뜻 들으면 진부하지만 박주원의 음악엔 다른 말을 덧붙이기가 어렵다. 그는 우리나라 집시 음악의 선구자이며, 기타 연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음악 활동을 펼치는 뮤지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도 대단하지만, 거의 평생을 기타와 함께 살아오면서 그 열정을 잃지 않는 모습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아티스트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천재 기타리스트 박주원을 만났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ㄴ기타리스트 박주원이다. 2009년에 데뷔한 이후 총 정규앨범 4장과 싱글앨범 2장을 발매했다. 사람들에게 주로 집시 기타리스트로 불리고 있다.

박주원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음악을 소개한다면.
ㄴ저의 음악은 집시 음악을 기본으로 한다. 집시 음악은 인도에서 시작된 이후, 집시들이 유럽에 정착하면서 각 나라 고유의 형태로 발전한 음악이다. 스페인의 플라밍고, 프랑스의 집시 재즈, 동유럽의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다.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의 한, 슬픔, 기쁨 등이 공존하는 음악이다.

저는 그중에서도 플라밍고와 프랑스의 집시 재즈를 바탕으로 그 위에 박주원의 색을 입힌다. 플라밍고와 집시 재즈 모두 기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르이며, 격렬한 리듬, 우수에 젖은 멜로디가 특징이다.

집시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
ㄴ기타가 음악을 이끌어간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집시 음악은 강렬한 리듬과 화려한 멜로디 라인을 표현해야 하므로 기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음악이다. 집시라는 장르 자체에 매료되어 있다기보다는 기타 본래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음악이라서 좋다. 하지만 리스너도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바뀌는 것처럼, 제가 집시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현재의 취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음악을 할지는 저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동안 피처링에 참여한 보컬들이 다채로우면서도 하나같이 곡에 잘 어울린다.
ㄴ곡을 만들면서 음악에 어울리는 보컬을 미리 고려한다. 스캣(무의미한 음절로 가사를 대신해서 리드미컬하게 흥얼거리는 것)은 보이스 톤이 가장 중요하다. 평소 함께했던 뮤지션과 작업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음악과의 조화가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다. 보통은 예상했던 대로 목소리가 곡에 잘 묻어난다. 상상 밖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더 멋진 경우가 많다. 예상했던 것보다 안 좋았던 적은 전혀 없었다.

박주원의 음악에 입문할 수 있는 곡을 추천해 달라.
ㄴ정규 2집의 타이틀곡인 '슬픔의 피에스타'를 추천한다. 집시 음악의 특징인 화려하고 우수에 젖은 멜로디가 두드러지는 곡이다. 집시 음악을 처음 접하는 분들도 쉽게 좋아할 만하다. 사실 내 음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안 들어보긴 했다(웃음).

 

기타와 거의 평생을 함께해왔다. 기타의 매력은 무엇인가.
ㄴ9살 때 기타를 처음 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장난감처럼 옆에 두고 살았다. 친구들이 오락실에 가거나 축구를 하러 갈 때, 나는 매일 기타학원에 갔다. 부모님이 항상 보내셨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녔다. 그때부터 나에게 기타는 당연하면서도 특별한 악기였다. 기타와 함께하는 습관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기타 히어로는?
ㄴ록 기타리스트는 스웨덴의 잉베이 맘스틴(Lars Johann Yngwie Lannerback), 영국의 딥 퍼플(Deep Purple)의 리치 블랙모어(Richard Harold Blackmore),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를 좋아한다. 플라밍고 기타리스트는 비센테 아미고(Vicente Amigo)를 즐겨 듣는다.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항상 바뀌어왔는데 요즘은 플라밍고 기타의 전설인 스페인의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를 가장 좋아한다. 가장 스페인적인 기타리스트다. 내가 추구하는 빠른 연주, 특히 피카도(Picado, 라멩코 기타곡에서 단음 위주의 스케일을 연주하기 위한 기본 테크닉) 주법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음악은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는데, 이후 20년가량 지난 지금 들어도 놀랍고 대단하다. 웬만한 기타리스트의 주법은 이제 눈에 보일 정도로 실력이 쌓였지만, 그 분의 연주는 아직도 미스터리하다. 이 분이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살아있을 때 좀 더 찾아 들을 걸'하고 후회된다.

 

 

작곡은 언제부터 했는지.
ㄴ고등학생 때부터 했다.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에 생각나는 악상을 녹음해두는 정도였다. 떠오를 때마다 틈틈이 녹음을 많이 해두긴 했지만, 카세트테이프와 녹음기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악상을 까먹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도 아이폰이 있었다면 좋은 음악을 더 많이 만들었을 것 같다(웃음).

그렇게 만든 곡을 모아서 자체적인 레이블을 통해 CD를 찍기도 했다. 앨범 재킷도 직접 만들었다. 정식으로 발매한 건 아니고 친구들에게만 판매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당시에 고등학생이 앨범을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지금 들으면 어설프긴 하지만 고등학교 때의 연주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자료다.

2009년에 EBS 스페이스 공감 신인 발굴 프로그램 '헬로루키'에 참가했다. 이미 음악적으로 실력이 탄탄한 시기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ㄴ소속사 사장님의 권유로 나갔다. 당시 나는 서른 살이었고, 10년간의 음악 활동을 통해 조성모, 이소라, 임재범 등 유명 가수의 세션을 하며 나름대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헬로루키에 나가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예선전 영상이 나간 이후 주위에서 '니가 왜 루키냐'고 얘기하는 것에 당황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당시 1집을 막 발매한 상태였다. 막 첫 앨범을 낸 연주자를 누가 알겠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연한 과정이었고, 그때 겸손한 마음으로 참가했던 게 좋은 기반이 됐다.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에 같이 참가했던 데이브레이크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그분들도 그 나이에 신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걸 망설였을 텐데, 결국은 이후에 잘 되지 않았나. 나에게도 헬로루키는 뮤지션 박주원으로서 좋은 시작점이었다.

세션이 아닌 연주자로서 첫 앨범을 낼 때 걱정되진 않았나.
ㄴ가수들의 노래를 반주하는 세션으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느꼈던 시기였기 때문에 솔로 앨범을 발매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사실 기타리스트가 기타 연주앨범을 내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한 분야를 십 년 정도 파면 어느 정도 도가 트이면서 동시에 싫증이 나기도 하지 않나. 세션이 적성에 맞는 연주자도 많이 있고 그것도 뛰어난 능력이지만, 나는 내 무대를 가지고 싶었고 박주원의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동시에 기타를 멜로디 악기로 중심에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보컬을 넣지 않았다. 스캣도 자연스럽게 관악기 같은 느낌으로 색을 입혔다.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장르의 연주 앨범을 발매한다고 해서 걱정하지는 않았다.

   
 

음악가로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ㄴ지치지 않고 꾸준히 연주활동을 해온 것이다. 휴식기를 가진다 해도 공연이나 앨범 작업을 쉬는 것이지, 기타를 놓아본 적은 없다. 사실 연주자는 휴식기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다. 지금까지 정식적인 음악 활동만 따져도 이십 년 가까이 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자랑할 만하다.

음악적으로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ㄴ지금까지 유럽의 집시음악에 한국인 박주원의 색깔을 입혀왔다. 한국 사람이다 보니 국악적인 색깔도 넣어보고 싶다. 단순하게 국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집시 음악에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국악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사실 3년 전부터 해오던 이야기인데, 아직 못 하고 있다(웃음).

음악인으로 사는 것이 여건상 어렵다. 연주자는 특히 더 그렇지 않나.
ㄴ저는 연주자로서 활동하면서 제 앨범을 꾸준히 구매하고 공연을 보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연주자로서 힘들다는 얘기를 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저는 제 음악을 꾸준히 좋아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 지방의 작은 공연장에 갔을 때도 제 앨범을 쑥 들고 나타나는 분들이 계시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도 제 음악을 즐겨 듣고, 특유의 레퍼토리까지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 분들을 만나고 나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례적으로 서울을 포함, 다섯 지역을 찾아가는 전국투어를 진행한다.
ㄴ언제나 그렇지만 요즘 특히나 공연업계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런 현실을 알고는 있지만, 앨범을 발매하고 그 노래를 라이브로 들려주는 것이 내가 뮤지션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할 일을 더 열심히 하자는 취지에서 전국 투어를 기획하게 됐다. 작년 11월 발매한 '집시 시네마'가 네 번째 정규앨범인데,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전국 투어로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 공연을 좀 더 자주 찾아주실 때보다도 많은 회차의 공연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면 큰 힘이 될 것이다(웃음).

라이브 공연 때 음원과 차이를 두는 부분이 있다면?
ㄴ무대를 위한 편곡을 따로 준비한다기보다는 그때의 상황에 맞게 즉석에서 변주하거나 즉흥 연주를 한다. 내가 하는 음악이 집시음악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즈의 요소가 많기 때문에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 재즈 연주자가 곡의 화성 진행에 바탕을 두고, 자기의 착상에 따라 자유로이 변주하는 일)이 순간순간 나온다. 연주가 생각보다 잘 되기도 안 되기도 하고 관객의 반응도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 그게 라이브의 묘미인 것 같다.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ㄴ2010년 첫 콘서트 때 무대에 등장하면서 박수를 받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0년 3월 27일, 지금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꽤 규모가 큰 마포아트센터에서 진행했는데, 첫 공연인데도 많은 분이 객석을 채워주셨다. 그 자리에는 엄마도 있고 친구도 있고 내 앨범을 처음 들어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한마음으로 나를 맞아줬던 게 지금까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음악을 하면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ㄴ예전에는 세계정복을 꿈꿨는데, 지금은 지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열정이 계속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기타보다 흥미로운 뭔가가 생길 때 기타 연주가 재미없어질수도 있을텐데, 나는 다행히도 아직 기타가 재밌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앞으로도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ㄴ여러분께서 '박주원'하면 기대하는 탄탄한 연주를 유지하면서도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그뿐만 아니라 기타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항상 마음을 다잡겠다. 제 음악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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