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우리는 무슨 욕망이 있길래 이렇게 달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나. 그걸 관객에게 묻고 싶었다."

1일 오후 예술의전당 오페라연습실에서 연극 '리차드3세'의 연습 공개가 열렸다.

6장부터 13장까지의 주요 장면을 공개한 연극 '리차드3세'는 국민배우 황정민이 10년만에 연극 복귀작으로 삼은 작품이다. 황정민뿐만 아니라 김여진, 정웅인 등 익숙한 얼굴부터 김도현, 박지연, 이갑선 등 무대에서 맹활약 중인 배우들이 함께하고 우리 연극계에서 든든한 중추를 담당하는 한아름 작가, 서재형 연출이 또다시 뭉친 작품이기도 하다.

리차드3세 역에 황정민, 에드워드4세 역에 정웅인, 엘리자베스 왕비 역에 김여진, 버킹엄 역에 김도현, 앤 역에 박지연, 마가렛 왕비 역에 정은혜, 리버스 시장 외 역에 임기홍, 헤이스팅스, 티럴 외 역에 김병희, 조지, 게이츠비 외 역에 이갑선, 그레이, 집행인 외 역에 이천영, 도싯 외 역에 김재형, 황태자 역에 차성제, 요크왕자 역에 이우주가 출연한다.

연극 '리차드3세'는 셰익스피어의 걸작 희곡 중 하나다. 비록 4대 비극인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와 견주기엔 다소 허술한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추악한 외모와 그보다 추악한 마음을 지닌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주인공 '리차드3세'가 갖춘 매력은 여느 작품 못지 않다.

이날 연습 장면 공개를 통해 오는 6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할 연극 '리차드3세'의 네 가지 관전 포인트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황정민의 '리차드3세' 연기다. '리차드3세'는 많이 다뤄진 희곡이며 서재형 연출 이하 배우들도 말하길 오롯이 캐릭터의 힘이 무대 위에서 크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마침내'라는 수식어가 결코 아쉽지 않을만큼 연습 공개를 통해 드러난 황정민의 '리차드3세'는 강렬한 흡인력을 뽐냈다. 힘들게 걷는 걸음걸이와 등이 굽은 모습은 무대가 아닌 연습실에서조차 완벽했다. 그 비결은 연습량이었다.

엘리자베스 왕비 역을 맡은 배우 김여진은 이에 대해 "너무 열심히 해서 좀 질린다 싶다.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었다. 이분(황정민)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아무도 본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그의 노력을 칭찬했다. 도싯 외 1인 8역을 맡은 배우 김재형도 "황정민 선배님은 연습실에서 살고 계신가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4세/스탠리 역을 맡은 정웅인 배우 역시 "황정민은 대사가 아무리 많아도 대본을 들고 (연습)한다는 걸 용납 못하기에 연습을 계속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마 화장실이고 어디서고 계속 연습 중일 거다. 그 장면이 눈에 보인다."라며 그의 열정적인 성격이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문학적이고 연극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전개와 대사에 있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강렬한 작품이지만 희곡에 허술한 점이 많았던 '리차드3세'가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날 것인지에 대한 비밀을 엿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앤 역을 맡아 연극에 첫 도전하는 배우 박지연은 "원작은 정말 많은 독백과 방대한 분량이 있다. 그래서 사실 원작 대본이 읽기 어렵고 힘들고 빈틈이 많다고 말씀하신 건데 저희 '리차드3세'는 관객이 큰 흐름을 전달받으실 수 있고 쉽게 만들기 위해 각색한 대본이다."라며 현재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재형 연출 역시 "대본을 얼마나 고쳤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대본 마지막에 참고자료로 쓰인 게 한 열몇권 정도 있더라. 그대로 차용했다는 게 아니라 작가와 제가 다시 보며 이야기 나누고 빨래하고 문질러서(*서재형 연출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대본에 넣었다. 굳이 요즘 말로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것에 비슷하게 해서 보기 쉬운 '리차드3세'를 만들려고 했다"고 변화의 방향을 전했다.

또 "의상 등은 까탈스럽게, 최대한 시대를 보존하려고 한다."라고 밝힌 뒤 "반면 무대는 프로젝터 3대를 써서 많은 장면전환을 해서 현대적인 관객이 볼 때 충분히 빠른 장면전환을 진행할 수 있다. 그 사이의 빈 공간은 거대한 철구조물에 빛을 투과해서 자세히 보면 고딕이고 다르게 보면 현대물 같은 스펙터클 안에서 배우들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라고 구체적인 연출을 설명했다.

 

세 번째는 배우 전원이 원캐스트로 출연해서 보여줄 수 있는 높은 밀도와 '케미'였다. 단순한 원캐스트일뿐만 아니라 황정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1인 2역 이상을 맡아 고전극에 걸맞는 연극성을 더했다.

배우 황정민은 "원캐스트는 배우의 자존심이라 생각한다. 뮤지컬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만, 특히 연극에서는 그렇다. 나중엔 영화도 트리플 나오지 않을까 싶다(웃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한 작품을 연기하는 기간에는 온전히 캐릭터 연구, 몸관리를 비롯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원 캐스트로 진행되는 작품의 의의를 전했다.

서재형 연출은 "1인 2역을 한 제일 큰 이유는 배우들이 너무 다재다능해서 짧은 씬만 소화하고 집에 보내드리기 아까웠다."라고 밝히며 "꼭 원칙처럼 정한 건 아니어도 1인 2역이 가능한 배우들은 악한 인물, 선한 인물 혹은 가볍거나 무거운 인물을 같이 맡겨 양면을 가진 배역을 나눠줬다."고 재능있는 배우들과의 밀도 있는 작업을 기대하게 했다.

 

마지막은 '리차드3세'가 왜 지금 시대에 필요한지, 무엇이 관객에게 전달되고 싶은지 창작진과 배우들이 생각하는 묵직한 '한 방'이 있었다.

정웅인과 자신의 동생, 아들 등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에드워드 4세 역할을 맡았다. 이에 "1400년대인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단종이 그런 일이 있었다. 어린 친구가 왕이 되는 걸 숙부가 제거하고 왕이 되고. 이 작품보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좋은 환경을 잘 물려주고 죽어야 하는게 우리의 임무가 아닌가. 그게 아니면 아이들이 희생된다. 그렇기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돼줘야겠다 싶다. 그때는 이런 희생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황정민은 "제가 대본에서 참 좋아하는 대사가 '내가 지은 죄를 묻는 그대들의 죄를 묻고자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게 몇백 년 전에 나온 대본인데 요즘 현대와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남에게 손가락질하는 건 쉽다. 하지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쉽게 그러지 못할 텐데. 이걸 보면서 저는 정말 누가 악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라며 '리차드3세'가 지닌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끝으로 서재형 연출은 "삐뚤어지고 뒤틀린자가 왕좌를 꿈꾼다. 일반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는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질주한다. 문제가 생겼다. 그 끝에 욕망이 발전돼고 살인을, 악을 저지른다. 극이 끝나고 그는 죽어가지만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욕망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 그게 '리차드3세' 이야기의 구조고 사실 전부다. 그런데 시대가 만들어낸 우리도 어딘가 뒤틀려있지 않나. 왕좌가 아니어도 누구나 꿈꾸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달리지 않나. 이 지점에서 '리차드3세'를 볼 때 뭘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이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우리는 무슨 욕망이 있길래 이렇게 달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나. 그걸 관객에게 묻고 싶고 제 딴에는 최대한 그걸 쉽게 하자. 내가 가진 모든 재료를 동원해 관객들을 납득시키자. 동시대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왜 멈출 수 없는가를 질문해보고 싶었다."라며 작품의 방향성을 드러냈다.

한편, 연극 '리차드3세'는 오는 6일 개막해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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