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장르 확장과 발전상

   
▲ 레진코믹스에서 백합물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What Does the Fox Say?' 이미지 출처: 레진코믹스

[문화뉴스]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에는 여타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요소가 있다.

'브로맨스'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성 간의 성적인 긴장감이 없는 깊은 관계를 뜻하는 이 용어의 대척점에는 '워맨스'라는 말이 서 있다. 여성 간의 연애 감정을 포함하지 않는 진한 우정을 뜻하는 이 용어는, '돌아와요 아저씨'의 두 인물, 이연(이하늬)과 홍난(오연서)의 관계에서 짙게 드러난다. 남성이 개입되지 않은, 여성들만의 이야기.

   
▲ SBS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워맨스'는 남성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던 기존의 서사 체계를 전복시키는 장치다. 남성의 역할은 슬그머니 물려지고 여성들의 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반대의 개념인 '브로맨스'와는 달리 인지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워맨스'가 부분적으로나마 부각되는 추세는 세태의 변화를 반영한다.

'퀴어 퍼레이드' 등으로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알고 싶지는 않은" 존재였던 성 소수자의 "존재함"이 전면으로 내세워지고, 성 소수자를 향했던 부정의 담론에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차츰 커지기 시작한 대목에서, 창작물의 서사 또한 보편 이외의 것으로 눈을 돌린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는 동성애 코드가 깔려 있었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있었고,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에서는 '사랑'으로 포괄되는 다양한 형태의 성애가 묘사되었지만, '번지점프를 하다'의 소개에 붙었던 "충격적인"과 같은 수식은 더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주 놀라운 일로 인식되었던 장면은 지나온 것이다. 사실, 파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촌스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워맨스'의 부상은 그러한 이탈의 흐름에서 시작됐다. "정석"처럼 머무르던 로맨스에서 벗어나 그 밖의 가능성에 대해서 주목하는 것. 이는 비단 '워맨스'에만 해당되는 사례는 아니다. 성 소수자 담론과 '워맨스'라는 낯선 용어의 전개가 보여주듯, "마이너"로 분류되었던 것들은 그 활동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웹툰'은 지난 10여 년간 큰 성장을 거듭해온 매체다. 네이버 웹툰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 '마음의 소리'가 연재됐던 시기로부터 현재의 웹툰 시장의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확대됐다. 네이버와 다음, 두 포털 사이트로 양분됐던 플랫폼 자체도 제3의 주자들이 등장한 실정이다.

초기에는 사실상 '골방환상곡'과 같은 생활툰으로 한정되어 있던 웹툰 시장은 이제 물밑의 장르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조심스럽게 감춰져 있어야 했던 '마이너' 장르들은 어느새 상업 시장의 최전선에 배치되어 있다. 제3의 웹툰 플랫폼들이 그 '마이너'를 '선두'로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웹툰 시장, '마이너'는 어떻게 '대세'가 되었을까? 

   
▲ 웹드라마로까지 진출한 '대세는 백합'. ⓒ 대세는 백합 페이스북 페이지

▶ '백합'은 꽃만이 아니다

'백합'은 꽃만을 가리키는 단어는 아니다. 그렇다면, 또 무엇을 말하는 걸까.

'백합'은 여성 간의 사랑을 일컫는 용어다. 이를 성 소수자 이슈로 이해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백합'은 말하자면 '판타지'다. 예를 들자면, 로맨스 소설 속 남녀의 '판타지적' 애정 문제를 여성 간의 애정 문제로 치환한 데 가깝다. '퀴어'로 통칭되는 실제 성 소수자와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주로 흔히 서브컬쳐로 일컬어지는 매체 전반에서 사용된다.

'백합'은 웹툰이라는 매체에서, 그 반대편으로 남성 간의 사랑을 다루는 'BL(Boys Love)'에 비해 상업적으로 더딘 출연을 보였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양대 포털 플랫폼 작품에 'BL' 코드가 삽입되기도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백합' 코드의 본격적인 활용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웹툰 시장의 장르 확장은 '백합'의 분류를 생성시켰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백합 웹툰 'What Does the Fox Say?'는 레진코믹스 전체 TOP5에 속할 만큼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지난 '2015 레진코믹스 세계만화 공모전'에 수상작 중에는 '메종 드 메이드' 등의 '백합' 장르 작품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이라는 작품이 있다. '대세는 작품'은 '백합'이라는 장르가 이전보다 높은 대중성을 갖게 됐음을 시사한다. 이름처럼, '백합'이라는 장르가 "대세"가 됐다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백합'의 도약은 현재진행 중이다.

   
 

▶ '완전판'이 아니라면 전부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레진코믹스'. 그리고……

'해적판'이라는 용어가 있다. 네이버 어학사전에 따르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복제되어 판매·유통되는 서적이나 테이프, 소프트웨어 따위를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80대 중후반 출생자들까지는 친숙하게 들어봤을 이 용어는, 어떤 이들에게는 다른 형태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해적판'으로 엉성하게 인쇄되어 있던, 수상한 표지의 도색만화들.

레진코믹스는 그 "불법적인" 어감의 장르를 컬러로 등판시켰다. 레진코믹스는 '완전판'과 '전연령'의 두 가지 버전을 마련한 바 있다. 성인 인증이 이루어졌을 때 이용 가능한 '완전판'에서, 서비스 이용자들은 성인물을 감상할 수 있다.

   
▲ 각각 전연령과 완전판 사이트 메인화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 레진코믹스 사이트 캡쳐

레진코믹스에서 성인물은 주력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의 웹툰 플랫폼에서는 취하기 힘든 전략은 웹툰 이용자들에게 큰 호응을 끌어냈으며, 네온비 작가의 성인물 작품으로 화제를 몰았던 '나쁜 상사'는 1년 동안 2억8천만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전연령'으로는 부족한 '완전판'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가 내세운 성인물에 대한 전략은, 다른 웹툰 플랫폼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탑툰', '봄툰' 등의 성인을 대상으로 삼은 웹툰 플랫폼들은 성인물 콘텐츠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마이너'는 위태롭다. 상업과 연관되었을 때에는 더욱 우려가 따른다. '마이너'를 투입시킨 여러 웹툰 플랫폼들의 행보는 다분히 이채롭다. 안정된 길은 아닌 까닭이다. 잘 될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러워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마이너'가 떠오르고 있는 웹툰 시장은, 이미 그들이 어떻게 비상할지에 대해 증명해내고 있다.

문화뉴스 김미례 기자 prune05@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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