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동명의 유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러시아 뮤지컬로는 첫 라이선스 작품으로 선택돼 한국에서 지난 10일부터 2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전 세계 라이선스 초연을 공연 중이다.

안나 카레니나 역에 옥주현, 정선아, 브론스키 역에 이지훈과 민우혁, 카레닌 역에 서범석과 황성현, 레빈 역에 최수형과 기세중, 키티 역에 이지혜와 강지혜, 스티바 역에 지혜근과 이창용, M.C 역에 박송권과 박유겸, 브론스카야 백작부인 역에 이소유(이정화), 벳시 역에 한지연, 세르바츠키 공작 역에 손종범, 세르바츠키 공작부인 역에 배희진, 브론스카야 백작부인/세르바츠키 공작부인 역으로 민채원, 세료자 역에 박준우와 박태양, 패티 역에 강혜정, 김순영, 이지혜가 출연한다. 이지혜와 민채원이 1인 2역을 맡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시대를 관통하는 가족과 사랑 등 인류 본연의 인간성에 대한 예술적 통찰을 1,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 속에 담아냈다. 하지만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그러한 예술적 통찰을 전하기 위해 텍스트를 꾹꾹 눌러담기보다는 주인공 '안나'의 삶에 집중했다. 소설에선 레빈을 비롯해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 러시아의 당시 시대상 등을 세밀하게 표현했다면 뮤지컬에서는 그러한 문학적인 맛을 살리기보다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대사들은 대체로 극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예컨대 안나의 첫 등장이 그렇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감정을 대사나 노래로 표현하기보다는 그걸 지켜보는 주변의 사교계 사람들과 브론스키에게 파혼당하는 키티의 시선에서 장면을 풀어낸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통한 감성적인 흐름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모양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기능적인 역할에 가깝다. 또 다른 예로 레빈의 청혼 장면에서도 대사는 아주 간결하다. 레빈은 키티를 향한 마음을 아주 정직히 말하고, 키티의 부모들은 간결하게 레빈과 브론스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나 대사와 전개에서 아쉬운 감정은 뮤지컬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음악 속에서 풍부하게 표현된다. 다소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압축된 가사는 마치 '후크송'처럼 해당 곡마다 특정한 감정을 강조한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겪는 혼란한 현실 속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담은 '당신 내 곁에 없다면' 등이 대표적인 넘버다. 이외에도 '은혜를 모르는 것', '행복' 등 전체적인 곡의 느낌보다는 특정한 문구와 거기에서 유발되는 감정이 기억에 남는 노래들이 많다. 최근 뮤지컬의 경향처럼 동시대성을 띄는 가사로 로컬라이징을 하기보다는 작품의 고유한 의미를 전하기 위한 느낌이 역력하다.

전체적으로 이런 것들이 러시아 고유의 특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안나 카레니나'만의 고유한 특징인 것은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대극장 관객들에게 익숙한 '박수를 칠 시간'이 거의 없는 것도 그런 면이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뛰어남에도 충분한 인터벌을 주기보다는 극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끔 하는 대학로의 소극장 작품들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이러한 면들을 떠나서 기존의 뮤지컬 관객이라면 꼭 한 번 봐야할 작품이다. 한국에서 공연된 기존의 대부분의 작품들 어느것에서도 보기 힘든 유니크한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음악의 다채로움을 꼽을 수 있다. '프롤로그'나 '자유와 행복' 등에서 드러나는 록 뮤지컬과도 같은 면, '눈보라'나 '당신 내 곁에 없다면' 등에서 볼 수 있는 감성적인 면모 등이 극을 무척 풍부하게 만든다. 강혜정을 필두로 한 세 명의 소프라노도 극의 음악적 깊이를 더해준다. 관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내는 킬링넘버로 1막의 엔딩곡 '자유와 행복'이 있다면 2막에선 '죽음같은 사랑'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영상의 활용이다. 영상 활용은 최근 뮤지컬을 리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세련되게 아날로그 배경과 조합한 형태, 혹은 영상 자체를 극의 일부분으로 쓰는 방법, '빈센트 반 고흐'처럼 인터랙티브하게 활용하는 방법 등 영상 활용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는데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구조물과 결합한 이전에 볼 수 없던 신선한 영상 활용을 선보인다.

 

'안나 카레니나'의 배경은 무척이나 미니멀리즘하다. 작품의 상징과도 같은 '기차'와 기차 역임을 나타내는 기둥, 오페라 극장의 의자, 계단 두 개 등약간의 도구를 제외하면 이 작품의 배경은 오직 백그라운드에 걸린 큰 영상배경과 함께 사각형의 구조물 네 개가 전부다. 그런데 이 구조물에 위 아래로 장착된 화면이 움직이는 기차, 창문, 벽 등으로 다양하게 모습을 바꾼다. 배경의 대형 영상 역시 고화질에 아름다운 영상미를 뽐낸다. 이것이 텍스트로 보기에는 기존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안나 카레니나'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다. 여기에 마치 감옥처럼 안나를 둘러싸는 격자 모양의 조명 등은 멀리서 봐도 무대의 전체적인 그림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다음으로 앞서 말한 구조물들은 수동으로 움직이는데 그러한 점에서 무대 전환 등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이 점을 높은 완성도의 춤으로 메꾸고 있다. 같은 제작사의 작품인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댄서, 아크로바틱이 앙상블과 별개로 존재해 수준급의 안무를 보여줬듯이 이번 '안나 카레니나' 역시 10명의 앙상블과 16명의 댄서가 존재한다. 이들은 발레 등을 기반으로 해 작품 내내 놀라운 수준의 안무를 보여준다. '갓상블'이란 단어가 유행인 요즘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새로운 면모를 더한 것은 민우혁과 강지혜, 이지혜가 아닐까 싶다. 민우혁은 전작 '벤허'에서 본인의 넘버 소화에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그 아쉬움을 날려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빨래'와 '키다리 아저씨'라는 여성 배우들이 선망하는 작품을 통해 이미 실력을 증명한 강지혜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본인의 역량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분명히 보여줬다. 이지혜 역시 1인 2역이란 어려운 환경에서도 저마다의 매력을 선보인다. 특히 패티를 통해 선보이는 모습은 압권이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최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존 대극장 뮤지컬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작품이다. '뮤지컬 좀 봤다' 싶은 관객이어도 신선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some@mhnew.com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