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을 만나다 ①

▲ 고연옥 작가(좌)와 김정 연출(우)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7일 오후 남산예술센터에서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주철환) 남산예술센터의 2018 시즌 프로그램이 공개됐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4월 5일부터 15일까지 공연되는 '처의 감각'을 극작한 고연옥 작가는 "2년 전에 '곰의 아내'로 여기 앉았는데 감회가 새롭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의 감각'은 2016년 고선웅 연출이 각색해서 공연한 '곰의 아내'의 원작이 되는 희곡이다. 지난해 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를 통해 낭독공연으로도 선보인 작품이다.

고 작가는 "극장으로부터 '처의 감각'을 제작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쁘다기보다는 무서웠다. 연약한 운명을 지니 희곡이 이번에 버틸 수 있을까. 관객과 소통에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더 늦기전에 이 위태롭고 불안한 길을 가보자고 생각했다."라며 작품을 제작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이어 "'처의 감각'은 제가 삼국유사, 웅녀신화를 공부하던 중 이게 내 이야기라는 자각에서 시작됐다. 열심히 살지만 점점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신화는 인간과 자연이 수평적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신화에 따르면 인간의 절반은 곰인데 사라진 웅녀처럼 인간에게 남아있는 곰의 성질도 약한 성질. 사라져야 할 감각이 된다고 한다."라며 작품의 출발점을 언급했다.

고 작가는 계속해서 "강자만이 살아남은 세상에서 약자에게 공감하는 일은 불가능해지고 약자든 강자든 결국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복원해야할 건 약자의 감각. 곰의 감각이 아닐까 해서 이름을 지었다. '처의 감각'은 우리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누굴까 했는데 도덕적인 지탄을 받는 사람. 남편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를 죽이는 엄마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용기를 내서 이 자의 삶을 들여다볼 때 우리가 언젠가 약자가 될 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걸 죽이는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쓰게 됐다."라며 '처의 감각'이 어떤 이야기인지 밝혔다.

이어 "이런 연약한 과정을 그리고 있기에 공연 과정이 쉽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취약한 게 대본, 극작가라고 한다. 좋은 극작가가 없다는 것은 극작이 쉽지 않기도 하지만 한국 연극의 제작시스템이 연출가 위주로 만들어져 극본이 연출을 위한 도구가 되거나 수정, 변형되는 게 당연시 여겨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과정에서 재능있는 소중한 작가들이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라며 연출가 위주의 제작 시스템을 가진 한국 연극계를 꼬집었다.

또 "절대 대본이 수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극작가가 부정되거나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작가는 세계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포착해서 자신의 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다. 극작이 부정 당할 때 극작가도 부정 당한다고 생각한다. '처의 감각'이 대본대로 올라가서 극작가가 사라지는 제작시스템에 대한 재고가 이뤄졌으면 좋겠고 사라진 동료들의 작품이 복원돼 다시 공연되면 좋겠다."라고 동료 극작가들과 대본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길 바라는 의견을 꺼냈다.

고 작가는 계속해서 "다시 이 작품을 공연하게 된 건 '김정'이란 좋은 파트너를 만났기 때문이다. 김 연출은 작품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작품을 좋은 놀이로 만들 수 있는 감각적인 연출가다. (처의 감각이)아주 유쾌한 블랙코미디가 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처의 감각'을 다시 제작하는 게 누구보다 남산예술센터에게 무척 고민일 거라 생각한다. 단순한 창작중심 극장에서 넘어가 창작자들이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극장이 되길 바란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작품을 함께하는 김정 연출 역시 함께 자리해 "편안한 마음으로 왔는데 작가님이 너무 부담주셔서 부담이 확 들어왓다(웃음)."고 말한 뒤 "많은 시간 고민했는데 물론 낭독공연도 했었지만 또 다른 의미로 작품이 다가왔다. 이 대본이 얼마나 연극을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지점을 느꼈고 그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근원적 힘에 대한 회복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연극적인 가능성. 빈 무대를 가득 채울 무한한 연극적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그 회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말하신 것처럼 연극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놀이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대본은 아주 깊고 큰 이야기를 담기에 저희는 배우들과 함께 남산에서 재밌게 한번 놀아야만 극복될 것 같다. 다른 생각 없이 그것만 하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한편, 3월부터 12월까지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은 시즌 프로그램 8편과 공모 프로그램으로 이뤄진 이번 시즌 역시 변함없이 한국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현상을 담은 동시대성 작품들이다.

자세한 사항은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2월 1일 오후 2시 '처의 감각', '손 없는 색시', '에어콘 없는 방'의 3편이 담긴 상반기 공연 패키지 티켓이 오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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