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배터져 죽을만큼 사랑을 먹어보고 싶어"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거짓말의거짓말]

1. 들어가며 

동일시(공감)와 판타지(환상). 소설이 독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두 가지 요소다.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공감한다. 혹은 현실의 나와는 다른 환상에 빠져 꿈을 꾼다. 20년 넘게 소설을 읽어 온 내가 발견한 가설(혹은 이론)이다. 재미있는 소설은 모두 동일시와 판타지 중 적어도 한 가지를 충족시킨다.
 
독서의 재미는 자발성을 담보로 한다. 의무가 동반되면 재미는 준다. 재미는 주관적이다. 나와 너의 재미는 일치하지 않는다. 심지어 10대의 나와 20대의 나, 30대의 내가 느끼는 재미도 모두 다르다. 같은 책이라도 독서가 주는 재미는 독서를 하는 '그 시점의 나'에게만 유효하다. 재미는 교훈, 감동, 전율, 공감 등 독자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다른 모든 말을 대표하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목적이 '재미'에 있다면 나는 그 소설은 적어도 동일시와 판타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충족한다고 '현재로선' 생각한다. 굳이 '현재로선'이란 단서를 단 이유는 생각은 사고의 확장과 함께 변하므로 지금 시점의 내 생각임을 밝히기 위해서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소설은 재미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내게 책장을 넘기도록 강요한 몇 년만의 소설이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플라나리아'란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는 지하철을 내리고,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지상으로 올라가기 직전까지 책을 들고 걸었다. 다음 줄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손이 시린 것도 잊었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결핍'에서 나를 발견했고, 독서를 통해 그녀의 결핍이 다양한 욕망의 변주로 소설에 투영되는 과정을 기꺼이 지켜봤다. 그녀는 감정의 과잉이나 눈에 빤히 보이는 기교 없이 담담하고 묵묵하게 그리고 능숙하게 써 내려갔다. 결핍의 양분을 빨아들인 그녀의 욕망은 다양한 모양과 빛깔의 꽃으로 피었다. 

1928년생으로 이제 91세인 원로작가 다나베 세이코(국내에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유명하다)는 후배인 야마모토 후미오를 아래처럼 평가했다. 

여든 살 원로 연극배우의 무대를 관람한 뒤에 정말 예쁘시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그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지며 "정말?"이라며 좋아했다. 그 자유자재, 융통성, 천진무구에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스러움이 오래도록 가슴속에 따스하게 남았다. 야마모토 후미오 씨의 작품이 바로 그 원로 여배우의 웃음, 여든 살의 천진한 얼굴에 환하게 번지던 웃음과 비슷했다. (플라나리아(창해), 양윤옥 작성 옮긴이의 말 재인용)

야마모토 후미오는 마음 한 켠에 소녀의 천진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지만 일본의 다른 여류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소녀 감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건드리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물방울 같은 소녀의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 '무라카미 류'라고 불리며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성애를 전면에서 다루는 야마다 에이미와는 더 거리가 있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소녀와 완숙한 여인의 중간 어딘가에서 구멍 뚫린 가슴으로 서있다. 필요에 따라 소녀의 심장을 구멍에 끼워 넣기도 하고 이어 다른 손으로 성숙한 여인의 심장으로 바꿔 넣기도 한다. 심장을 바꾸는 대수술이지만 피가 튀지 않는 능숙한 솜씨다. 그녀 가슴의 공백은 소녀의 심장보다도, 성숙한 여인의 심장보다도 크다. 

2. 야마모토 후미오

야마모토 후미오를 한 문장으로 가장 간략하고 핵심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1962년(57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일본 여성 작가로 2000년 '플라나리아'란 소설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나오키상은 아쿠타가와상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한국으로 치면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계몽소설처럼 가르치려는 소설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는 '상'이란 걸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먼저 상을 주는 쪽이 어떤 의도로 그 상을 주는지 모른다. 또 상의 신뢰성 혹은 객관성 여부를 떠나서 그들의 취향과 내 취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벨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읽어도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오키상만은 예외다. 책 표지에 '나오키상' 수상 작가란 말이 있으면 서점에서 한 번쯤 뽑아본다. 이시다 이라(4TEEN), 에쿠니 가오리(울 준비는 되어 있다), 오쿠다 히데오(공중그네), 야마다 에이미(소울 뮤직 러버스 온리) 등 경험상 대부분 스트라이크였다. 나오키상의 시상 자체가 '인기 있는 대중소설'을 지향하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2000년 124회 나오키상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치열했다는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야마모토 후미오의 '플라나리아'외 4작품을 선정하는 이유로 ‘재미’를 꼽았다고 한다. 

 

다시 야마모토 후미오로 돌아와 보자. 그녀는 가나가와 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반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 생활 도중 1987년에 '프리미엄 풀의 나날'이란 소녀소설로 데뷔했다. 소녀소설이란 10대~20대 초반의 여자애들이 보는 장르 소설이다. 이후 5년 뒤인 1992년 '파인애플의 저편'이란 작품으로 일반 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1999년 '러브홀릭'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2000년 플라나리아로 나오키상을 받았다. 이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다 우울증 치료 목적으로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2007년에 에세이집을 내며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대략 여기까지가 책의 표지인 작가 소개와 위키백과 등에서 확인이 가능한 내용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이혼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사건은 그녀의 초기 작품 속에서 서로 다른 인물을 통해 여러 번 재현된다. 이혼을 통한 상실과 결핍은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좌표를 제공한다. 실제 야마모토 후미오는 나오키상 수상 소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전에 나는 대학 캠퍼스라는 꽃밭에서 실컷 놀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4년 만에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혼의 직장여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회사라는 꽃밭에서 새 인생을 구가해보려고 했는데, 그곳도 얼마 못 가 꽃이 모두 시들어버렸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결혼이라는 꽃은 시들고 소설만 남았다. (플라나리아(창해) 중에서)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거짓말의거짓말. talk·play·love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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