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사람이 먼저다"

수많은 사람의 뇌리에 박혔고 훗날 오늘날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장이 됨과 동시에 숱하게 재사용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장에선 아직도 이 한 마디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스태프가 최소한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 혹사당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모습이다. 그 때문에 지난 2016년 10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이 고된 노동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최후였다.

▲ ⓒ tvN '화유기'

tvN 토일드라마 '화유기', 첫방에 가려졌던 끔찍한 사건
이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2017년 12월, 또 한 번의 사고가 발생했다. 23일 오전 1시경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tvN 드라마 '화유기' 세트장에서 천장에 샹들리에를 매달기 위해 작업하고 있던 A씨가 3m 이상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허리뼈와 골반이 부서지며 하반신 마비라는 큰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당한 A 씨는 MBC아트의 미술팀 소속인데, 이날 '화유기' 제작사 JS픽쳐스로 용역 의뢰로 현장 팀장을 담당하며 현장의 한 PD로부터 요청을 받아 작업했던 것이다. 큰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tvN은 사건을 덮고자 했던 것인지 그날 '화유기' 첫 방송을 강행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4일 2회가 방송사고가 났다. 어찌 보면 방송사고는 일종의 징후였던 셈이다.

한국일보 측에서 26일 이 사건을 단독 보도했고, 이를 접한 대중은 충격과 공포를 금치 못했다. '화유기'와 tvN 측은 공식 사과로 수습하려고 했으나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다음날인 27일, 언론노조에서 '화유기' 제작에 강력한 제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28일 A 씨 가족들이 tvN과 제작사인 JS픽쳐스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며 밝힘으로써 논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현장조사까지 나섰다.

이어 29일, 이번에는 '화유기' 조명을 담당했던 조명팀 일부가 집단 해고당했다는 기사까지 터졌다. 4회분까지 함께 했던 조명 B팀 스태프들은 방송 일주일 전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화유기' 때문에 스케줄을 비우고 작업에 뛰어든 이들이 대책 없이 일자리를 잃은 것. 이에 A팀과 B팀을 지휘했던 조명감독은 제작사 측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반발, 팀과 함께 일을 그만뒀다. 이쯤 되면 '화유기'라는 드라마가 '문제투성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 ⓒ tvN '화유기'

개선하겠다던 '화유기', 바뀐 건 PD 추가 투입 뿐
일주일가량 지난 5일, tvN 측은 '화유기' 방송을 재개한다는 발표와 함께,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하백의 신부' 등을 연출한 김병수 PD를 투입하고, CG 업체를 늘려 최소 2개 이상 업체를 동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스태프의 최소 주 1일 이상 휴식을 보장하겠다며 스태프 업무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과연 그들의 제작환경 여건이 개선되었는지는 의구심이 들었다. 현재 '화유기' 연출을 맡은 박홍균 PD는 꼼꼼하기로 소문난 만큼, '생방송 촬영'으로도 악명이 높다. 지난 2006년에 조기에 종영된 MBC 드라마 '늑대' 또한 생방송 촬영으로 진행되다 촬영 도중 교통사고로 출연 배우들이 중상을 입게 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화유기' 또한 제대로 갖추지 못한 스태프 수로 생방송 촬영처럼 진행하고 있는 데다가 워낙 완벽하게 촬영하려는 박 PD의 성향 때문에 하루에 다섯 장면 이상을 찍지 못했다는 관계자 증언도 나왔다.

고된 촬영일정과 진행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지자 MBC '구가의 서'를 연출한 김정현 PD를 28일에 투입했고, 5일에는 김병수 PD까지 합류해 속도를 높이고자 애썼다. 쉽게 말해, 현장 스태프들에게 충분히 휴식을 주겠다는 말과 다르게, 오로지 '화유기' 방영 정상화를 위해 급급한 모양이다.

그동안 A팀과 B팀 릴레이식으로 이어가던 '화유기' 촬영은 도리어 3팀으로 늘어나 스태프들의 노동시간은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었다. 알려진 바로는 김병수 PD 이외에 추가 인력 보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악해질 수도 있다는 게 스태프들의 전언이다. 다행스럽게도 김정현 PD와 김병수 PD가 촬영을 빨리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위로할 만한 점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화유기' 촬영현장이 나아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 ⓒ tvN '화유기'

'화유기' 사태로 바라본 드라마 제작 현장, 아직도 암울하다
드라마가 재개되기에 앞서 있었던 4일 '화유기' 제작현장 추락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언론노조는 tvN이 속한 CJ E&M의 구체적인 개선 방안과 이행 계획 마련과 동시에 정부에 현재 제작 중인 모든 드라마 현장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 시행과 드라마 제작 현장의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이행 여부 점검 등을 요구했다.

이날 언론노조가 지적한 사고 원인은 제대로 된 설계도면 없이 부실한 자재로 시공된 환경과 제작비 절감 차원의 쪼개기 발주 등이었고, 이에 노조는 "충분한 안전대책, 개선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작업이 중지되어야 했다. PD 한 명 인력 보강 소식을 듣고 당혹스럽고 분노했다. 현재 제작을 강행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적정 인력 확보, 휴식 시간 보장, 안전 사항 보장 등을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비단 '화유기' 뿐만 아니라 다른 드라마 제작 환경도 똑같이 해당하는 사항이다. 본방송 일정에 맞추고자 장시간 편성과 무리한 스케줄을 감행하고 있으며, 이는 방송 제작 전반에 관행처럼 퍼져 있다. 계속되는 철야 작업 때문에 늦은 시간 촬영세트장엔 스태프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잠을 청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김환균 위원장은 "많은 사람이 이 사건과 관련해 드라마가 제작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이 기자회견은 '화유기' 제작 중단 목적이 아니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방송 현장 안전불감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화려한 방송 뒤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보호받길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렇기에 '화유기'의 방영재개가 달갑지가 않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방영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 촬영 방식을 유지한다면,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농후할 것이다. 방영은 미루더라도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먼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사전 제작을 통해 편성하는 데 유연하게 대처하고 현장 스태프들의 여건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화유기'는 모든 이들의 반대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6일 3회분을 방영했다. 그리고 7일에는 4회 방영이 예정되어 있다. 제대로 개선된 게 하나 없는 이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강행을 해야만 했을까?

syrano@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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