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이것이 '대극장 규모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가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로 돌아왔다. 한국에는 익숙치 않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루돌프보다는 작품을 상징하는 극적인 제목으로 바뀐 셈이다.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는 이런 뚜렷한 제목을 붙여도 무방할 만큼 루돌프와 마리의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거기에 이 작품의 가치가 숨어있다.

최근 공연된 EMK뮤지컬컴퍼니의 다른 작품인 '마타하리'에서도 줄곧 나온 비판을 떠올려봐도 어떤 거대한 서사에 휘말린 인물들의 동기가 사랑으로 점철된다는 것은 뮤지컬을 보아온 관객들이라면 익숙한 구조일 것이다.

더불어 이는 작품의 규모와 반대로 거대한 서사의 동기가 한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결과를 초래해왔다. 물론 모든 일에 사람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만, 정말 그런 인문학적 관점(?)에서만 이런 동기들이 부여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더 라스트 키스'는 이것을 뒤집어 두 주인공의 강한 사랑이 사실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대한 서사 속 개인의 삶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해서 관객들이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상기하게끔 하는 이야기들은 많은 명작, 걸작들에서 사용된 방식이다. 예컨대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혁명을 혁명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는 장발장에서 시작되는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장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풀어낸 '더 라스트 키스'도 이러한 방식을 차용한다.

1막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사랑은 그야말로 알콩달콩하다. 시간의 흐름을 쉽사리 건너뛰는 이야기 덕분에 두 사람의 급진전된 관계를 체감하기 어려울 법도 하지만 대극장의 연기가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그 과정을 커버한다. 또 스케이트장에서의 데이트 장면은 대극장 뮤지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역대 가장 아름다운 러브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목도리로 서로를 감싸며 장난치는 루돌프와 마리는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아쉬운 것은 2막이다. 대체 역사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답게 2막으로 가면 두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아무런 힘 없이 지켜봐야하는 괴로움이 있다. 또 1막에서 동기를 제공한 시민들의 괴로운 생활이 보여지지 않기에 황태자의 고뇌는 정말 상류층의 고뇌로만 비춰지게 된다.

결국 대본의 완성도를 논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황태자 루돌프는 창녀와 술에 의지하는 모습 말고 인물 소개에 써진대로 총명한 그의 두뇌와 나라를 흔드는 글쟁이 '줄리어스 펠릭스'로서의 모습을 더 보여줘야 했다.

줄리어스 펠릭스의 사설은 너무 모호하고 거대한 주제를 던지는 식의 이야기 몇 줄에 그친다. 그렇다고 황태자 루돌프로서 보여주는 모습도 '내일로 가는 계단'과 함께 기나긴 고민 끝에 적은 서명이 전부다. 혁명의 흐름 속 무기력하고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더 라스트 키스'는 보는 즐거움이 있는 웰메이드 뮤지컬이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추구하는 대극장 스케일의 무대가 잘 활용됐다. 영상으로 만드는 배경 역시 빔프로젝트의 밝기가 부족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여타의 뮤지컬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다. 덕분에 관객은 이 압도적인 퀄리티의 비주얼을 통해 엘지아트센터에서 1888년 비엔나로 확실하게 이동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교차할 때 등장하는 별이 반짝이는 배경 등이 다소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결코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다.

노래는 '프랭크 와일드혼'이라는 이름이 증명하는 그대로다. 듣기 좋은 멜로디가 계속 귀를 자극한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들어도 공연이 끝날 쯤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건 그의 힘이다.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는 전반적인 프로덕션의 퀄리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올 겨울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만나길 원한다면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3월 11일까지 엘지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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