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같이 '명량'이나 '대호'에 출연한 최민식 선생님은 연기자로, 인간적인 면으로, 영화인으로 모범을 보이신 분이다. 올곧게 선생님처럼 잘 가길 바라고 원할 뿐이다."

연극 공부를 위해 러시아로 유학을 간 배우 조하석의 앞으로 바람이었다. 조하석은 연극 무대에서 이제는 스크린의 씬스틸러로 성장 중인 있는 배우다. 2008년 개봉작 '무방비 도시'를 시작으로 '부당거래', '황해', '최종병기 활', '베를린', '끝까지 간다', '명량', '사도', '대호'에선 그의 모습을 어디선가 살펴볼 수 있다. 아직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김인권, 오달수, 고창석, 김상호 등과 같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씬스틸러(Scene Stealer)는 아니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그래서 더 궁금한 배우인 조하석의 연극과 영화 이야기를 들어본다.

배우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ㄴ 나는 나주 동심대 도시계획학과 92학번이다. 한 학기를 다니는데, 전체 학년의 설계를 해야 하는 것이 나한텐 정말 흥미롭지 않았다. 그래서 한 학기 마치고 나서 찾아간 곳이 '한울타리'라고 연극영화학과 동아리였다. 허름한 곳에 문을 열자마자, 아무도 없었는데 빛이 나면서 썩은 냄새가 나는 그런 것에 만족했다. '아! 나는 배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동아리 작품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하고 나와서 서울로 올라가서 연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군대 다녀오고, 러시아로 유학을 가게 됐다.

연극 공부를 위해 러시아로 갔다. 유학 계기는?

ㄴ 서울로 상경한 후, 1999년에 유학 결심을 하려 했는데 미추연극학교가 있었다. 박신양 선배님, 김유석 선배님 등 러시아 1기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1년 과정의 연극학교인데 내가 2기였다. 2기 때 바탕이 된 것이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슈킨대학 커리큘럼과 같았다. 4년 과정을 1년으로 숙식하면서 하는 것들이라, 이후 스타니슬랍스키(편집자 주 : 실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야 한다는 리얼리즘 연극을 지향한 러시아 연극인)의 연기형식을 배우려 했다. 그래서 모스크바로 가게 됐다. 극단 미추 선배님들이 추천서도 써주셔서 유학을 결정하게 됐다. 동아리와 광주 지역 극단에서 몇 작품을 해서 이미 연기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을 가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았다.

   
 

당시 유학 에피소드를 들려달라.
ㄴ 28살에 유학을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의 시간이었다. 버틸 수 있는 것도 스승님의 가르침이었다. 당시엔 평등하게 누구나 똑같은 것을 가르쳤는데, 남달랐던 것 같다. 우연히 좋은 기회와 좋은 시스템 아래에서 좋은 배우로 갈 방법을 얻지 않았나 싶다. 이제 만 10년이 넘어가는데, 갔다 왔나 싶을 정도로 먼 과거였다. 졸업 후에 1년 반 동안 메이어홀드(편집자 주 : 스타니슬랍스키의 제자로 관객을 염두에 둔 연극 기법을 선보였다.)의 수업을 하는 러시아연출가 극단 그룹으로 해외투어를 했다. 그래서 어떻게 연극을 만들고, 자신이 숙성되어 가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시간이 유학 4년보다 더 실제적이었다. 바로 아티스트로 돈을 받고 하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유학 이후엔 한국에 돌아와 명품극단에 들어갔다. 모스크바가 넓진 않다. 대학로만 한 거리에 군데군데 대학교가 있어서 왕래도 잦고, 서로 참고하고 보려고 했다. 그때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다시 모이지 못하고 흩어지면서 결국은 다양성 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었다. 묘한 러시아적 색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때 열심히 했던 정신무장의 시기였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잘해보고자 하려고 하는 의욕이 많았다.

명품극단에 있던 시절, 2004년 '광인일기'로 국제밀양연극제 남자 연기상을 받았다. 마임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평이 있는데, 본인에게 어떤 작품이었나?
ㄴ 대학교 3학년 화술 수업에 '광인일기'라는 텍스트를 처음 접하게 됐다. 10분 정도 분량의 작품 발표를 했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셔서 교수님이 모노드라마 제안을 했다. 이걸 해야 러시아의 대배우가 된다는 입소문이 있어서 돌고 있었다. 그래서 덜컥 잡고 싶었다. 잡았는데, 4학년 때 졸업 작품으로 연출해서 한번 만들어봐라 해서 온 힘을 다했다. 33살인 내가 연극을 혼자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모든 연기술을 사용했다. 신체표현이라고 하는데, 극사실주의라는 메소드 연기(편집자 주 : Method Acting, 배우들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실제와 같이 연기하는 기법)를 했다.

   
▲ 연극 '광인일기'의 한 장면

물건과 교감하고, 등장인물들을 구상해야 하는 것이 내 신체 하나만으로 표현해야 해서 독특했다. 신체를 과하게 쓰는 것은 슈킨대학의 장점이었다.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무대 행동으로 나갈 수 있도록 움직이는 당위성도 있고, 이유와 원인이 있다. 연기하면 '에쭈드'(편집자 주 : 배우가 제시된 상황을 설정한 잘 짜인 즉흥극)까지 나온다.

한국에서 '광인일기'를 처음 공연한 날이 2004년 4월 19일이었다. 밀양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심사하신 이윤택 선생님이 잘 봐주신 것 같았다. 공연 전 2주 동안엔 식단도 조절하면서 온 힘을 다했다. 혹평과 호평이 다 있지만, 늘 기쁨인 것은 내가 온 힘을 다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회가 된다면 '광인일기'는 팬은 없을지라도, 지금 생각하고 있는 새로움을 선보여주고 싶다. 목표 아닌 목표다.

연극 무대에서 이젠 스크린을 누비는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ㄴ 언어의 장벽을 넘어 특수한 러시아 사회에선 연극이 갈등을 말로 풀어나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같은 말을 쓰는데, 경제적인 문제라곤 할 수 없지만 못 풀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영화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가 강렬하고, 주위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그 힘도 있었다. 연극을 하는 선배님이 학교 강단에 계셨는데, 학생작품을 소개해줘서 2007년 제3회 대한민국대학영화제에서 '너나 잘하세요'(이승규 감독)라는 작품으로 1등을 했다. 만화가 캐릭터를 맡아서 큰 화면으로 모습을 봤다. 그 화면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 같다. 시대의 다양한 것을 담고, 내가 한 것을 집중적으로 드라마 캐릭터에 고민할 수 있었다.

연극은 경제적으로 제작 시스템이 어려워서 배우가 감당해야 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데, 영화에선 그런 부분이 좀 더 줄어들어서 인물 배우의 캐릭터 열정에 범위가 넓어져서 흥미가 쏠쏠했다. 그래서 2008년 개봉작 '무방비 도시'의 '명동파 안테나' 역으로 입봉을 하게 됐다.

   
▲ 조하석 배우는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대호'에서 '길라잡이 조씨'를 연기했다.

영화 '대호'에서 '길라잡이 조씨'를 맡았다.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달라.
ㄴ CG 부분이라 존재하지 않는 호랑이를 앞에 두고 연기하는 것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연기자 각각이 표현하는 공포라는 것이 일치했어야 하는데, 호랑이로만 반응하는 게 아니라 옆의 포수 역할 배우들과 교감을 하며 같은 반응을 해야 했다. 하지만 무리 지어서 가느라 교감하는 게 힘들었다.

민족적인 정서에서 묻어나는 다양성 면에서 영화는 좋은 소재였다. 인물 구축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주인공의 감정과 목표 지점이 반대되는 부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사와 끼어있지만, 포수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호랑이를 사냥하는 관점으로 묘사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총을 들고, 산을 헤매는 등 춥고 열악한 상황이 도움됐다. 박훈정 감독님의 디테일에서도 도움이 됐다.

지난해 2월 20일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때 박민정 프로듀서님,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님이 소정의 사례금도 주시고 "'대호'한테 큰 무언가가 되겠다"고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 따듯함이 매우 좋았다.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를 늘 응원한다. 7~8년 동안 현장에 있으면서 배우가 영화만 집중할 수 있고, 원활하게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단역을 맡더라도 단역이 아닌 영화인으로 존재감을 많이 높여주셨다. '대호'가 다양성 영화의 면이 있어서, CG가 잘 나왔어도 관객 수가 많은 소재가 조금은 아닐 것이라 봤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6년의 세월을 거쳐 프리프로덕션 작업 해오고 1년에 걸쳐 포스트 작업한 게 존경스럽다. 너무 감사드린다.

지난해 출연한 굵직한 작품으로 '사도'와 '대호'가 있다. '사도' 이준익 감독과 '대호' 박훈정 감독을 곁에서 지켜봤는데, 어떤 감독이었나?
ㄴ 이준익 감독님은 좀 고수였다. 이 말로 표현이 잘 안 되긴 한다. 결혼 축사도 해주시고, 2월 개봉 예정인 '동주'도 '사도'만큼 좋은 역할을 하게 됐다. 말 몇 마디로 사람의 무언가를 꺼내는 타고난 언변술사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이 아닌 것처럼 쾌활하신데, 코믹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사람을 압박하지 않고 너스레 춤을 추게 하는 현장이었다. 유학을 다녀오기 전부터 한국영화의 역사로 활동하신 분이다. 최근에도 뵙고 왔는데, 이젠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표정이나 말에 옛날이야기가 묻어 있어서 존경스럽다. 제가 의지하는 감독이다. '평양성', '사도', '동주'를 같이 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오래 더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박훈정 감독님은 처음 뵀다. '신세계' 때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있다. '대호' 현장에서 호랑이의 수염 털 하나까지 컨트롤 할 정도로 디테일했다. CG 캐릭터 때문에 의상, 소품 터치로만 디렉션을 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현장의 밑그림을 그려가는 디렉션에서 캐치를 많이 하셨다. 디테일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지만, 워낙 좋은 글을 쓰셨다. 호랑이 소재가 어렵고, 형상한다는 것 자체도 어려운 도전이었다. 오래전부터 막혔다고 들었는데, 이것을 해냈다는 것에 아주 뿌듯했다고 들었다. 흥행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걱정되긴 하다.

본인의 연기관을 들려달라.

ㄴ 유학 전엔 예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예술에 대한 고민을 좀 더 많이 했다. 연극이라는 순수예술을 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다른 것 같다. 상업영화, 상업연극 등을 통해 지금은 시대가 개인이 충분하게 예술 활동을 대중적으로 더 보편화시키려는 삶의 형태로 변화된 것 같다. 현재 내 철학이 연기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더 넓은 범위로 생각하고 있다. 연기를 잘한다기보다 같이 협력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거기에 깔린 것이 영화, 연극, 연기자로 사명감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였다. 잘 배웠다고 말하고 있고, 지금도 그것을 바탕으로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이다.

   
▲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보였던 영화 '성난 화가'에서 조하석 배우는 '지배인'으로 출연했다.

나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이 재생산되어 내가 말하는 협력을 할 수 있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적인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다. 연기를 잘하는 방법에서 열정과 기술이 뭐냐고 물으며 30대를 살았다면, 이젠 40대 중반이 되어가니 협력이 철학 아닌 철학 같다. 내 연기를 탄탄히 할 유학 시스템을 다녀와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역할에선 제 색채를 다 못하지만 10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결국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좀 더 깊고, 심오하고, 철학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역대 훌륭한 연기자 보면, 개성이 있다기보단 그들이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더 넓고 깊고 해서 오랜 생명을 갖고 활동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예술인으로 젊었을 때 밑바탕에 가진 '예술이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대해 노력 중이다.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땐 막연하게 동료의식이 별로 안 들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보면서 그들이 영화인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검열 이후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영화예술 장르인 직업인으로 동료의식을 느낀다. 나도 잘 자라서 한세상을 바꿔나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타는 하나다. 같이 좋은 작품에 국위선양하는 것처럼 하나만 하는 옹졸한 생각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함께 영화, 연극 등 예술 행위를 해나갔으면 좋겠다. 선배님들에겐 건강히 지내시라고 했으면 좋겠다. 같이 '대호'에 출연한 최민식 선생님을 예로 들면, 연기자로, 인간적인 면으로, 영화인으로 모범을 보이신 분이다. 올곧게 그들처럼 잘 가길 바라고 원할 뿐이다.

2016년 원숭이의 해를 맞이했다. 본인의 계획은 무엇인가?
ㄴ 2월 18일엔 이준익 감독의 '동주'가 개봉 예정이다. 강하늘, 박정민, 김인우 등 출연배우들이 잘하고 있다. 여기에 김지운 감독의 '밀정', 이정섭 감독의 '리얼' 작품에 캐스팅됐다. 그 외에 미팅한 작품도 잘 되어서 매체 분야에서 좀 더 각인되어서 한 발 더 디뎌서는, 내년을 위한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 한 발 한 발 가는 게 무사히 끝나는 게 좋겠다. 요즈음 표현의 자유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인물을 잘 형상해내고, 영화인과 제작자가 좋은 영화를 볼 수 있게 공유할 수 있고, 공감하고, 비판해서 괜찮은 사회가 되게 하고 싶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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