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예술공간 서울에서 극단 꼴통 with 독소와 극단 행복한 사람들 공동제작, 이장욱 작, 황이선 연출의 <고백의 제왕>을 관람했다.

이장욱(1968~)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다.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3년 시로 제8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받았고, 장편소설 《칼로와 유쾌한 악마들》로 2005년 제3회 문학수첩 작가상, 단편소설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으로 2011년 제2회 젊은 작가상 본상, 단편소설 〈곡란〉으로 2011년 제1회 문지문학상, 단편소설 〈우리 모두의 정귀보〉로 2014년 제8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08~2014)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4~)로 재직 중이다.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 등과,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등이 있다.

황이선은 원래 사회복지사였다. 일반 회사에도 있었고, 정신병원에서도 근무하다가 스물다섯 나이에 서울예대 극작과에 들어갔다. 공산집단 뚱딴지에 들어가 문삼화 연출가의 조연출을 하다가 극작과 연출을 하면서 기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팩토리 왈츠>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비잔틴 레스토랑> <러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봄은 한철이다> <리어> <모든 건 타이밍II> <프로메테우스> <후산부 동구씨> <환영> <대한민국사람> <사팔뜨기 선문답> <이솝우화> <러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소년소녀 전투헌장>을 집필 또는 연출한 건강한 미녀 연출가 겸 작가다. 황이선 연출의 <환영>은 2017년 제4회 서울연극인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연극은 이장욱의 소설 <고백의 제왕> <변희봉> <민지를 위하여> 등 세편을 각색해 만들었다.

<고백의 제왕>이라는 것은 곽의 별명이다. 동아리 신입생 MT때 그 별명이 붙었다. 연극에서는 같은 학과를 다닌 동창생들이 오랜만에 동창 대식이 하는 술집에 모여 과거 곽의 고백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펼쳐간다.

모임의 리더 격인 기석이는 암투병중이고 오랜만에 나타나 주점을 차린 대식의 술집에서 그들은 한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신도시 아파트 이야기, 회비를 갖고는 필리핀으로 이민을 간 동기부부 이야기, 건강 이야기..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대식이가 말한다.

"고백의 제왕을 부르자." 그들의 눈에선 빛이 나기 시작한다. 왕따였고 불쾌한 고백을 일삼던 제왕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씩 꺼내놓는데...그들이 기억하는 고백들은 무엇이었을까? 동기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고백의 제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연극에서는 고백이란 화법을 통해 비존재의 영역이 현실로 파고든다. 금기된 행위를 고백해온 “고백의 제왕” ‘곽’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곽’은 마음속의 어두운 부분을 태연하게 들춰내는 ‘고백의 제왕’이다. 그는 중3때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와 첫 경험을 치른다. 문제는 아주머니가 환갑을 넘기고 폐경 된 여인이라는 점. 금기시되어온 외설은 좌중을 얼어붙게 하는데, 어느 누구도 그에게 ‘진짜냐’고 묻지는 않는다.

‘곽’의 고백의 내용은 동기들에 의해 계속된다. ‘곽’이 어머니를 구타하는 아버지에게 식칼을 들고 찌르고, 죽은 병아리를 보고 비관하는 누이에게 함께 죽어버리라고 해 자살에 이르게 하고, 그리고 남학생들의 연모의 대상이던 한 여학생이 시위도중 경찰에 쫓길 때 함께 여관으로 피신해 임신을 시켰다는 고백 등,

‘곽’의 믿기 어려운 고백에 동료들은 격분을 하고 욕을 하면서도 동시에 은밀한 쾌감을 느낀다. 다들 ‘곽’을 왕따를 시킨 듯싶지만 실제로는 그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곽’을 만나 고백을 교환하고 있었다. “고백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지닌 일종의 마력 때문일까?

극중 <변희봉>이 만기라는 인물과 함께 소개가 된다. 만기는 실패한 인생이다. 나이 40에나 접어들어 연극배우가 자신의 꿈이었다며 연극에 뛰어든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도 그렇지만 누가 봐도 그는 연기에 재능이 없었기에 친구들은 극구 만류하지만 그는 기어코 연극 무대에 선다.

대사 없는 조연도 발을 헛디뎌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배역은 점점 간단해진다. 나무에서 스티로폼 벽까지. 그 사이 빚만 남기고 자신을 고생시켰던 아버지는 죽었다. 그 후 아내와도 이혼한다. 이런 만기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뜬금없게도 밴-히봉을 아느냐고 묻는다.

실제 우리가 아는 변희봉은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경비원으로 분하고, 영화 괴물에서는 송강호의 아버지로 분한다. 그런데. 소설에선 그렇지 않다. 밴히봉? 아- 변희봉? 그게 누군데? 아무도 변희봉을 모른다. 플란다스의 개와 괴물에 나왔던 밴히봉 선생을 모르느냐는 만기의 절규에 가까운 질문은 바로 동료들의 반박으로 이어진다.

플란다스의 개에 나왔던 경비원은 배우 장항선이고, 괴물에서 송강호의 아버지는 배우 김인문이었다고. 병석에서 아버지를 잃고 아내와 이혼한 연극배우 만기는 어느 날부터인가 '대배우' 변희봉을 마주치기 시작한다. 지하철 역, 재래시장, 결혼식장 등 삶 구석구석에서 만기의 일상에 출몰하는 “변희봉” 그때마다 만기는 반가움과 놀라움에 아는 체 하려고 하지만 명배우는 만기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변희봉 선생을 봤느냐고 되묻지만 만기를 미친 사람 취급할 뿐이다. 그때 대식과 보던 야구경기 재방송에서 사라진 야구공이 무대로 날아와 떨어지면서 연극은 <민자를 위하여>와 연결된다.

동료들은 모두 떠나고 만기는 골아 떨어졌다. "네가 불렀니? 내가 나타났니?" 하며 대식이를 괴롭히던 귀여운 여인의 정체가 드디어 드러나는데..

연극 “고백의 제왕” 은 극중 인물 김대식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본래 이장욱 소설가의 원작 소설엔 김대식이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대식은 황이선 연출가가 소설 “고백의 제왕” 에 등장하는 조연과 “변희봉” 의 화자를 합쳐 각색해낸 새로운 인물이다.

김대식이라는 인물을 만든 이유에 대해 황이선 연출가는 “세 에피소드를 하나로 취합할 수 있는 중심적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김대식이 원작 “고백의 제왕” 의 등장인물로서 동창들과 추억을 나누고, 원작 “변희봉” 의 화자로서 단역배우 친구의 경험담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세 번째 에피소드인 <민자를 위하여>에서 김대식은 고뇌하는 소설가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자신의 소설적 영감이 형상화된 “민자” 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 고 화를 내지만, 막상 민자가 사라지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극 후반에 민자가 다시 나타나자 김대식은 기뻐하며 민자와 함께 자신의 작품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민자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글을 써 달라”며 소설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황이선 연출가가 각색해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황이선 연출가는 민자라는 인물을 통해 “앞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해나갈 것” 이라는 약속을 한 셈이라며 “현실에 참여하는 예술” 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대는 김대식의 식당이다. 음식이름을 적은 메뉴가 나란히 붙어있고, 출입문, 냉장고, 탁자와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무대 좌우에 등퇴장 로가 있고, 식기와 술병, 그리고 전축이 소품으로 쓰인다. 변희봉 얼굴 마스크를 쓰고 배우 세 명이 등장한다.

연극은 식당에 우연히 같은 학과의 동창끼리 만날 장소로 정하고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마침 주인이 자리에 없고 귀엽게 생긴 젊은 여인이 주인을 찾으며 밥집 안을 뱅뱅 돌다가 가버리면, 주인이 등장한다. 손님으로 온 동창은 식당주인 김대식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인사를 한다.

남녀 동창이 하나하나 등장을 하고, 술병과 술잔이 오고 가면서 “고백의 제왕”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남녀 동창 각자의 개성이 부각이 되면서 드디어 고백의 제왕이 등장을 하지만 의외로 말 수가 적은 조용한 인물이다. 연극은 필자가 앞에 소개한 내용대로 전개되고, 폭음으로 이어지면서 작태가 연출되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김대식은 집어치웠던 소설쓰기를, 연극의 도입에 등장한 젊고 귀여운 여인의 재차 등장과 함께, 그녀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다시 집필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황경하, 서석규, 박연주, 최지환, 김민석, 주선옥, 황윤희, 김태완, 김진희, 유진영, 한경애, 김채빈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설정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원종철, 무대 김혜지, 조명 박지선, 분장 석필선, 영상 신주호, 그래픽 사진 전진아, 기획 문화나눔공존 ㈜ 문화공감공존, 홍보 마케팅 이세희 백유경 조수나 김성희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꼴통 with 독소와 극단 행복한 사람들 공동제작, 이장욱 작, 황이선 연출의 <고백의 제왕>을 기억에 남을 성곡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공연메모
극단 꼴통 with 독소와 극단 행복한 사람들 공동제작 이장욱 작 황이선 연출의 고백의 제왕
- 공연명 고백의 제왕
- 공연단체 극단 꼴통 with 독소&극단 행복한 사람들
- 작가 이장욱
- 각색 연출 황이선
- 공연기간 2017년 12월 20일~31일
- 공연장소 예술공간 서울
- 관람일시 12월 31일 오후 3시

 

[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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